류호림
21세기 인간인 내게 동물이란, 노릇노릇 구워진 채 식탁에 올라오는 고기, 동물원 속 철창 안무기력하게 앉아있는 구경거리, 아무런 소리없이 사료를 먹고 있는 이모의 도마뱀,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로드킬당한 사슴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외에는 특별히 동물을 볼 기회가 없기도 하다. 초원 속 마음껏 뛰어다니는 얼룩말들, 토끼를 사냥하는 호랑이, 정글 속 호수에 몸을 담군 악어는 그저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희귀한 광경이 되었다. 고기, 애완동물, 동물원, 이제 동물이란 생명체는, 자연 속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이 아닌, 인간의 목적과 편의를 위한 도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솔직히 말해, 동물 실험이라던지, 채식주의자라던지, 동물 학대라던지, 학교에서 그러한 동영상들을 접할 때마다 동물들이 안쓰럽다, 불쌍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나는 오늘도 동물 실험으로 보장이 된 수분크림을 피부에 톡톡 두드리며, 접시 위에 먹음직스럽게 놓여진 고기를, 우걱우걱 씹어먹는다.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동물이 수단화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들을 모두 누리며 살아왔고, 따라서 고기를 이빨로 한 번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풍부한 육즙은, 내 머릿속에서 영상 속 동물들의 울음과, 눈빛을, 한 순간에 잊게 만들었다.
며칠 전, 한 영상을 보았다. 예방주사를 맞으러 간 강아지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고, 한 영상에선 주인이 마사지를 해주자, 강아지가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활짝 올리고 있었다. 산책하다 발견한 고양이는 내가 두려운지 매서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고, <긴긴밤>이라는 책에선 코뿔소가 인간이 자신의 가족을 죽이자 엄청난 슬픔과 고통에 시달렸다. 표현을 못했기에, 말을 못했기에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도축장에서 소와 돼지가 자신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지 못했기에, 칼이 자신을 찌를 때 아프다고 소리치지 못했기에. 동물원 속 사자가 자신을 해방시켜 달라고 호통치지 못했기에, 강아지 공장 속 암컷 개가 자신의 아이를 데려가지 말라고 울부짖지 못했기에. 동물에게 또한 감정이 있음을 느낀다. 그들도 행복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고, 공허함을 느낀다. 만약 우리가 동물을 이용해도 되는 이유가 그들에겐 언어와 문명이 없고, 야만적이기 때문이라면, 도대체 문명과 야만의 차이는 무엇이길래. 문명과 야만의 기준은 약자에 대한 태도가 아니던가? 야만은 생존을 중시하는 반면에, 문명은 협력을 중시한다. 따라서, 야만의 호랑이는 사냥감이 어리던, 늙던 상관없이 잡아먹지만, 문명의 인간은 노약자와 어린이를 배려하는 법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과연 문명적인 사회이던가? TV 속 개그 프로그램에선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들이 자신의 무식을 뽐내지 않던가, 세계 곳곳에 버려진 난민에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를 물으면, 지구온난화라고 답하는 핀란드의 학생들과 달리, 우리는 직업, 대학, 어떻게 먹고 살지, 즉 생존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는다. 얼굴이 까맣다는 이유로 총을 맞고 사망하며, 가난하다고 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 문명적이라도 볼 수도 없는 민족이, 야만인 민족이 과연 동물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것일까, 뒤늦게 죄책감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은 인간을 위해 쓰임이 존재하고, 동물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식량으로 존재하지만, 인간만큼은 그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며 목적론선 사고를 가진다. 즉, 동물은 모두 인간을 위한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 목적을 다하는 게 맞다며 인간 중심주의 사상을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 이기주의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만약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면,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는 유일한 생명체라면, 우리는 지구를 가꾸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내가 이 집의 주인이라면, 집을 매일매일 깨끗이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며,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것처럼, 인간 또한 자연을 유지시키고, 갈곳을 잃는 동물들을 괴롭혀선 안된다. 고기같이 인간이 필수적으로 얻어야 하는 영양소는 몰라도, 모피코트와 애완동물이 결코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은 인간과 같은 시간 같은 시대에서 함께 공존하는 생명체일 뿐, 인간의 사치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진정으로 문명적이고, 교양 있는, 생각하는 생명체라면, 동물의 쾌락과 고통을 교려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