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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by 제이티

김서윤



누군가 힘들다 말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자신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이고 따라서 객관화된 지표가 없으면 실체를 알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깨닫게 하는 것은 항상 타인이었다. 우리에게는 직감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 뱀처럼 몸 안에 물체의 열을 감지하는 기관을 내장할 필요가 없었고 황조롱이처럼 하늘을 둘러봐야 할 이유도 없었다. 또한 박쥐처럼 음파를 통해 세상을 팍악할 이유마저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하나의 네크워크를 형성하며 마치 하나의 뇌처럼 집단 지성으로 긴밀하게 연결된다.따라서 하나의 개인이 과하게 이 세상을 감지하고 이해할 필요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을 발전시켜온 이 집단지성은 오히려 이제는 하나의 제약으로 다가오고는 한다.

사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 다른 나라의 행복이 당연한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불행도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실 자신들이 불행한 줄도 모르고 산다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번 사람들만을 부러워하고 견제 할 뿐 이 세상의 존재 자체에 모순이 있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옆에 사람 그것이 문제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을 것이다. 잘못을 하면 다시 살아날 기회는 없으니 더욱 열심히 임해야 하고 내가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이 문제의 영역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회하며 관심을 나에게로 돌리는데에 급급하다. 자살확률 일등이라는 굴욕적인 타이틀을 가졌음에도 한국 사람들이 나약하다는것에 있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며 어느센가 자기 마음속에서는 넓고 평탄하고 메마른 흙덩이 위에서 채찍질 당하는 자신이 펼쳐지게 된다.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내제되어있는 불행이기에 이 세상의 누구도 안타까운 자신에게 소리쳐줄 수도 없다. 닿지 않는 목소리에 옆사람을 보며 그저 묵묵히 나아간다. 행복을 박탈당하고 자유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알바생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모두가 그러니까 당연한 건줄로만 알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의 오류는 사람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게 된다. 어느날 보았던 한국에 대한 동영상에서는 한국을 우울한 나라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가 담은 우리의 세상은 회색 돌들과 검은색 사람들 보이지 않는 그들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우울했다. 나는 내 세상이 그렇게 우울한 세계로 찍힌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너무 암울하다. 라는 걸 받아들이기는 힘든 것 같다. 알바생의 웃음이 괴리감이 느껴질 만큼 말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알바생들마저도 웃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고야 마는 것이다. 목소리를 박탈당하고 채찍을 내면화하며 쇠고랑을 차기를 자처하는 우리가 노예와 다를 바가 어디 있는가 사실상 껍데기 뿐인 민주주의이다. 우리가 행한 민주주의는 병들었다. 아이들의 꿈은 우주비행사도 요리사도 아닌 건물주이다. 어떻게 아이들의 꿈이 건물주일 수가 있으며 재일 많았던 회사원이 말해주었듯이 우리는 불행을 자처하는 세대이다. 어쨋든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만 국제 사회는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 기겁하였다. 미국의 51번째 주라며 비난하거나 이상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고 오히려 사람들은 소라게처럼 갈수록 자신의 껍질 안으로 숨어들기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탓하고 청년 세대는 갈수록 무너져 간다. 우리나라 청년은 화려한 껍데기를 두르는 부서져가는 자아라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나가는 것이 아닌 동그란 껍데기를 두르고 그것이 자신이라 믿어버리는 이상한 사회가 온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름이 앞에 오고 그 뒤가 자신의 성이 오지만 우리는 정 반대의 순서를 따른다. 성부터 이름까지 우린 공동체를 중시하며 자신을 들어내는 것을 잊어버린다. 이러한 약한 자아 이드는 자신이 주체가 되기보다는 따라가고 끌려다닌다. 따라서 오늘날의 대한민국 학생들은 자기 추제성을 잃어버렸고 가방을 네셔널 지오그래피로 맞추는 지경에 다다른다. 불행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붉은색 푸른색

그사이 삼초 짧은 시간

노란색 빛을 내는 저기 저 신호등이

내 머리 속을 텅 비워버려

내가 빠른지도

느린지도 모르겠어

그저 눈앞이 샛노랄 뿐이야


신호등


우리에게는 확답이 필요하다. 이러한 두루뭉실한 노란색 답이 아닌 내가 보았던 사람들의 우울한 표정처럼 확실하고 간결한 답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만 보아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정말 불행하고 비인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이상한 사회에 살고 있음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이상한 일이다. 세상은 잘못되었다. 우리가 바라볼 것은 돼지라 욕먹는 김정은 대통령이 아닌 우리 사회를 정비하고 완전한 정책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일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되면 두번의 정권 교체도 유명 무실해지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흥선대원군의 무역 금지가 풀리고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을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 시아를 넓혀 나갔듯이 우리도 이러한 세상의 진실을 기억하며 이 세상 모든 것이 내탓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며 숨지 말고 나 자신이 주체로써 이 세상의 고통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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