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예술 신고전주의

by 제이티

신대륙 무역과 막강한 상인 자본의 지원에 힘이 막강해진 왕은 이제 교황도 넘보지 못하는 강한 권력을 갖게 된다. 이른바 “절대왕정”이라 불리는 강력한 왕권은 프랑스의 루이 14세에 의해 그 절정기를 달리게 된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건방진 말을 말린 이 왕의 끝으로 절대왕정은 저물기 시작한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불평등한 계급사회의 문제점과 볼테르, 루소 등 계몽사상의 유행, 부르주아의 비약적인 성장은 이내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져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일이 벌어진다. 사상 초유에 왕의 목이 시민들에 의해서 잘리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배고프면 빵 대신 과자를 먹으라는 앙투아네트 역시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드디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이 평등과 자유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밤하늘에 분명히 떠 있지만 직접 만질 수 없는 “북극성” 같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대가 온 것일까?


하지만 혁명의 그림자 또한 만만치 않았다. 새로운 시대는 왔지만 여전히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새로운 나라를 만들까라는 질문에 의견이 갈리면서 급진파와 온건파가 쪼개진다. 급진파의 수장 로베스피에르의 깨끗한 나라를 위해 불도저 같은 공포정치를 펼친다.


이는 곧 반감과 피로를 가져오고 물가가 폭등하고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는 듯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했던 일도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하듯이 말이다. 또한 대외적으로 왕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이 어마어마한 사건은 옆 나라의 왕들에게도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다 준다. 당연히 프랑스를 제외하고 모든 전제군주 나라들은 대 프랑스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쳐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때 당당히 모든 나라와 싸워 이긴 영웅이 등장하는데 바로 나폴레옹이다.


유럽 각국에 혁명이념을 전파하고 자유와 평등 박애 근대적인 사상을 세상에 알린다. 하지만 영웅이었던 나폴레옹은 어느새 왕을 넘어서 황제가 된다. 시민계급의 성장과 함께 싹튼 근대의식, 현대를 예고하는 계몽주의, 또 이를 저지하려는 귀족과 부르주아 세력의 대결, 프랑스 대 유럽 나라들의 전쟁 등으로 인해 이 시대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프랑스혁명으로 드디어 왕이 없는 나라가 된 혁명정부는 이상을 실현해 나갈 새로운 사상과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다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화려하고 사치적인 바로크와 로코코는 당연히 새로운 정권의 입맛과는 맞지 않았다.


나라가 새로 태어나고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이때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잡아줄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때마침 잠들어 있던 고대 로마 도시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바로 고대 도시 폼페이가 발굴이 된다. 이를 계기로 고대에 대한 열광이 다시 불타오르면서 로마로 여행을 가는 그랜드 투어가 대유행을 하면서 다시 로마는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그래서 찾은 미술 사조가 다시 “르네상스”입니다.


조화와 균형, 안정된 형식미, 명확하고 강직한 선 단정하고 모범적인 그런 교복 같은 게 필요했던 시기.

나라를 다시 하나로 만들어 줄 그런 강력한 “상상의 질서”가 필요한 시기.

계급 이념 갈등을 넘어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줄 그런 것 필요한 시기.


그래서 신고전주의라는 새롭지 않은 새로운 미술 사조가 태어난다.


”너무나 정치적인 다비드“


이러한 혼란의 시대에 살아간 다비드는 매우 권력 지향적인 삶을 살았다. 프랑스혁명이 터지자 급진파인 자코뱅파를 지지하고 로베스피에르와 사상을 같이 한다. 프랑스혁명의 이상을 전달하기 위해 <마라의 죽음>, <사비니의 여인의 중재>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등 지금으로 따지면 선전물을 제작한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자, 투옥되었다가 가까스로 사형을 면한다. 그 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이번에는 궁정화가로 고용되어 나폴레옹 대관식과 초상화를 그린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다비드도 추방된다. 마치 ‘꺼삐딴 리’처럼 살다 간 그의 삶을 보면서 그를 닮은 그림이 어땠는지 한 번 살펴보자.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이야기는 로마 건국 신화로 돌아간다. 로마와 알바 두 나라의 지지 부진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두 나라는 세 명의 대표 전사를 싸우게 하여 결판을 내자고 한다. 삼국지의 일기토처럼. 로마에서는 호라티우스 삼 형제가 선출되어서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림에서 슬피 우는 여인은 약혼자가 알바의 대표 가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대성통곡하며 로마를 저주한다. 승리하고 돌아왔는데 격분한 오빠는 저주한 누이동생을 살해한다. 사돈끼리 싸우는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가족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한 이러한 민족중흥, 애국심 가득한 사연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에게 칼을 받고 있는 비장하고 다부진 다리 근육이 돋보인다. 한낮 감정보다는 이성을 중시한 남자들에게 강직하고 분명한 ”선“ 을 나라보다 사랑을 택한 여자들은 작게 표현했다. 뒤를 보면 로마 시대 건축양식은 아치 양식이 보인다. 르네상스의 계승답게 다빈치에서 배운듯한 해부학 공부한 듯한 날카로운 근육 처리가 돋보인다. 또한 한치 오차 없는 좌우 밸런스와 중앙에 칼을 배치함으로써 무엇을 말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사비니 여인의 중재>


기원전 로마 건국 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자가 모자랐던 로마는 옆 나라 사비니 부족 여자를 납치합니다. 3년 후 사비니 군대가 여자들을 되찾기 위해 로마로 쳐들어 왔다. 흰옷을 입고 있는 왼쪽의 남자는 전 남편이고 오른쪽의 남자는 현 남편입니다. 흰옷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몸 자랑을 하고 싶어서인지 전쟁인데 맨몸으로 싸우고 있다. 이렇게 과도한 노출을 했던 이유도 앞서 언급했듯이 해부학적 지식을 맘껏 뽐내고 싶은 경향도 있다.


그런데 왜 중재를 하고 있을까?


왜냐 하면 여자 아래 보이는 자식들은 한 명은 전 남편 또 한 명은 현 남편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이거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남편은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자식 없이는 살 수 없기에. 이러한 비극적인 전쟁을 막기 위해 그녀는 두 손을 뻗어 막고 있다.


그렇다면 왜 프랑스 국민들은 이 그림에 열광을 했을까?


바로 자코뱅파와 지롱드 파로 갈라서 싸우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빗대어 연출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상징인 흰색 옷을 입고서 사비니 여인은 ”화해“ 를 외치고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바로 프랑스 국민들이다. 뒤에 보이는 바시티유 감옥이 괜히 보이는 게 아니다.

이렇듯이 신고전주의는 당시 시대상을 모르면 감상을 할 수 없다.


이렇듯이 신고전주의 다비드의 작품을 보면 실제보다 더 과장되고 더 그럴싸하게 표현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스 로마 고전과 르네상스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혁명이념을 더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강렬한 선과 화려한 색채, 조화와 균형의 형식을 보여준다. 혁명의 예술인만큼 이상적인 느낌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과장이 필수적이다.


미술도 시대의 산물인 만큼 다비드도 거기에서 마냥 자유롭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천재적인 실력에도 불구하고 자의든 타의든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감정과 자유로운 개성을 중시하는 예술의 모습이 사라진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을 보여준다.


‘나’ 보다 ‘전체’를 위하는 삶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신고전주의는 이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나친 이상주의자들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든다. 그만큼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크니까 말이다.


이러한 괴리는 뒤에 ”낭만주의“라는 미술 사조를 잉태하게 한다.



https://youtu.be/00OfOe6WKg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로맨스의 시대 로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