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모두가 꿈꾸는 그런 세상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밤하늘의 무수히 빛나는 별들을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혁명이념을 전파하던 나폴레옹은 공화정에서 다시 왕을 넘어 황제가 되었다. 또한 시대적으로 나폴레옹은 대 프랑스 전쟁에서 패배하고 ”빈 체제“라는 다시 왕정복고 시대가 온다. 한순간의 불장난처럼 혁명은 그렇게 끝난다. 꿈과 책과 힘과 벽 사이를 눈치 보기에 바쁜 어린 시절 소년이 마치 어른이 돼서 그렇게 욕하던 어른이 되어버린 모습과 같다고나 할까. 야망을 가졌지만 좌절된 소년은 더 이상 불가능한 꿈을 좇지 않는다.
이제는 세상을 위해 전체를 위해가 아닌 소확행(소소한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밤하늘의 너무나 밝게 떠 있는 별보다는 지금 여기 바로 ”나 “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전체를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면 비로소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 나를 위한 그림이 시작된다.
작가 개개인의 개성과 상상력이 중시된 진짜 예술의 시대가 온 것이다. 마치 입시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수험생이 시험에 꼭 나오는 책만 읽었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게 된 것처럼 말이다. 드디어 공부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예술도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왜냐 하면 뻔한 그림이 아닌 ”다양한 “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기존의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은 누가 뭐래도 ”소묘“ ”데생“이었다. 학교에서 여는 과학 상상화 그리기, 통일 포스터 등 모든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도 작품성과 내용보다는 ”매끄럽게 “ 혹은 보기 좋은 그림이 상을 받는다. 바로 르네상스 기준처럼 말이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는 기존의 깔끔한 ”라인“에 반기를 든다.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중하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바로 ”감정“ ”내면“ 자체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다.
낭만주의는 기존 회화의 엄격하고 틀에 가두는 ”선“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하고 유동적인 ”색채“로 넘어간다. 왜냐 하면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게 색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의 색채는 후에 인상주의,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화가 개인의 감정과 내면에 충실한 작품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제리코 <메두사 호의 뗏목>“
1816년 과학자 의사 기술자 군인 일꾼 등 400여 명이 탄 배는 프랑스에서 세네갈로 향하는 도중이었다. 배가 갑작스레 모래톱에 걸려 난파 위기에 처하자 선장과 고위 공무원들은 구명정을 탔다. 남겨진 사람들은 뗏목에 몸을 싫고 구명정에 밧줄을 걸었다. 하지만 속도가 느려지자 구명정에 탄 사람들은 그 줄을 끊어버린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제리코의 그림을 보면 지옥을 보는 듯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가슴 아픈 세월호 사건을 떠오르게 해서 한 층 더 참혹하고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살아남기 위한 아비규환 자극적이고 긴박한 상황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실제로 제리코는 시체를 해부했다고 한다. 그림을 보는 순간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하고 격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 했지만 작가가 관찰하고 그린 그림이 아니라 화가 본인의 상상력과 내면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어지러운 대각선 구도와 색채의 대비는 극한 감정을 한 층 더 끌어올린다.
”터너 <노예선>“
빨강과 노랑 흰색 검은색 등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얼핏 보이는 나뭇가지가 난파된 배를 뜻 하는 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출렁이는 파도와 불난 바다를 상징하는듯한 빨간 하늘 아래 물고기 같은 게 보이고 검은 사람의 손 같은 게 보인다. 이제야 그림이 이해가 된다. 사람이 물에 빠져있고 물고기들이 달려야 몸을 뜯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손목에 쇠사슬이 보인다. <노예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노예들이 물에 빠진 걸로 알 수 있다.
실제 있었던 일을 그린 작품으로 1781년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실은 노예선 종호는 자메이카 항구까지 갔다. 하지만 햇볕 한 줌도 들지 못해 노예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거나 병들었다. 그런데 선장은 노예들을 바다로 던져버린다. 노예들이 병들면 제값을 받을 수 없지만 던져버리면 실종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세태와 추악한 문명의 이면을 터너는 고발한다. 소용돌이치는 원색과 어지러운 구도로 당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서술하는 게 아니라 관객에게 분노와 공포와 불안을 안겨준다.
바로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들라쿠르아 <사르다나 팔루스의 죽음>“
침대는 장작더미 위에 있고 왕은 비스듬히 누워서 모든 광경을 바라본다. 자신이 사랑했던 후궁들과 아꼈던 애마들이 끌려오고 무참히 살육을 당한다.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가 사르다나 팔루스에 이르러 허망하게 끝이 난다. 그는 늘 생각했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 뿐이라고 하지만 참혹한 광경은 이내 끝나지 않고 그의 얼굴엔 씁쓸한 웃음만 번진다.
이 그림은 들라크루아가 1827년에 살롱전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신고전주의에 익숙했던 살롱은 당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파리를 불태우려는 작자’ ‘회화의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등 많은 비판을 듣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리타분한 아카데미 회화에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은 열광한다.
구속받지 않은 자유로움과 극적인 감정을 추구했던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삶과 닮은 그림 <사르다나 팔루스의 죽음>에서 이러한 성향을 잘 보여준다. 주제가 자극적이고 강렬한 만큼 그는 ”색채“에 중점에 둔다. 생기를 빼앗는 진부한 회색과 검은색을 멀리하고 자극적인 초록색과 붉은색, 노랑과 파랑 초록과 빨강처럼 보색 관계 색을 연구한다.
보색 관계 색은 섞으면 회색이 되지만 따로 칠하면 강한 생동감과 시각적 자극을 준다. 이러한 ”보색 사랑은 다른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팔레트 위에서 색을 섞지 않고 다른 색을 중첩시켜서 색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최초의 화가다.
이는 이후 전개되는 미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색은 자연을 모방하는 게 아니다”
“색은 화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색은 감정과 상상력에 호소하는 언어이다 “
이러한 들라크루아의 생각은 드디어 화가에게 ”색채의 자유“를 선사한다.
더 이상 보이는 대로 혹은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그림은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그리고 싶은 색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 전의 신고전주의 양식에서 중시되는 조화와 균형과 안정감을 깨는데 과감하게 색채를 사용한다. 신고전주의가 회색 정장에 말끔한 옥스퍼드 구두라면 낭만주의는 찢어진 청바지에 꺾어 신은 빨간색 나이키 슈즈가 되겠다.
군대나 금융 회사의 복장 규정이 신고전주의라면 패션 및 게임 회사의 복장 규정은 낭만주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