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르가 그린 <베르탱의 초상>이다. 놀랍도록 사실적인 묘사로 주목을 받았다. 거대한 몸집에 무릎에 손을 올린 자세로 당당하게 관객을 쳐다본다. 전체적인 색조를 보면 화려한 색감은 자제하고 은은하다. 회색과 검은색을 주로 쓰여 장엄하고 웅장한 신고전주의적인 느낌을 준다. 당시 파리 화단을 지배한 아카데미 회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균열을 낸 화가가 등장한다. ‘근본 없는’ 화가라고 비아냥을 받았던 그는 바로 들라크루아다. 지배적인 아카데미 회화의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는 무엇을 그림 속에 담아내려 했을까?
<사르다나 팔루스의 죽음> 왕은 비스듬히 누워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태연하게 바라보고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후궁들과 애마, 그리고 보물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하고 있다. 무심하게 바라보는 왕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한때 온 나라를 통치했던 그에게 이제 남은 건 입가의 엷은 미소뿐이다. 이 주제를 어떻게 더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가 생각했던 대안은 ‘색채’다. 그는 전통 아카데미의 회색과 검은색을 멀리했다. 이는 그림에 생기를 빼앗은 진부한 색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살해당하는 여인의 등을 보면 멀리서 보면 회색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초록색과 붉은색이 섞여있다. 팔레트에서 색을 섞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에 따로 칠했다. 색채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른바 색채 표에서 반대에 위치한 “보색”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회색 하나만 칠했을 때보다 훨씬 강한 생동감과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다.
앵그르가 주로 ‘선’으로 은은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나타냈다면, 들라크루아는 과감한 ‘색채’로 격렬한 표현력과 강한 생동감을 나타냈다.
<사자 사냥>에서도 사자의 갈기 사이마다 파란색을 숨겨놓았다. 그렇게 하면 진짜 사자가 포효하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색을 섞지 않고 원색을 배치한 것이 그 비결이다. 다시 말하면 색은 인간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하기에 아주 좋은 도구라는 것이다.
“생명의 영원한 전율을 모방하는 건 오직 색으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소묘가 냉철한 이성을 상징한다면 색채는 격렬한 감정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앵그르와 다비드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에서는 혁명의 분위기에 맞는 ‘이성’이 강조되었다. 냉철한 이성이야 말로 구원이라 믿었으나,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나 나폴레옹 이후 빈 체제까지 다시 혁명이 좌절되면서 사람들은 ‘회의적이고 도피적인’ 시대 성향을 가지게 된다.
또한 이성에 눌려있었던 인간 본연의 감정을 다시 중시하기 시작한다.
그 시작을 알린 화가가 바로 들라크루아다.
수백 년 이어져온 선 중심의 회화에 맞서 색채가 회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보수 화단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역사는 언제나 변두리에서 시작하듯이 그의 불온한 생각은 이후 인상주의와 현대미술의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르네상스부터 신고전주의까지 서양미술은 선중 심의 미술로 전개된다. 원근법 해부학 유화 명암까지
이전까지는 자연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것과 똑같이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바로 미술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관찰을 캔버스로 옮기는 것은 ‘선’ 중심의 소묘에서 가능한 것이지 색채는 선은 보완하는 역할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색채의 반격은 과학에서 시작되었다. 색이 빛으로 이뤄졌음을 알려준 뉴턴이 등장한다. 1704년 <광학 빛의 반사 굴절 색채>를 통해 빛은 빨강부터 보라까지 여러 색으로 분할되며 바로 자연의 색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이후 괴테는 색채에 대한 놀라운 사실 3가지를 발표한다.
첫째, 색은 빛으로 이루어짐
둘째, 우리의 눈이 색을 지각하는 방식
셋째, 색이 우리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효과
이러한 색채에 대한 연구를 실현시킨 이가 바로 들라크루아였다. 브루넬레스키가 선 중심의 회화를 이끌었다면 뉴턴과 괴테는 화가들에게 새로운 혁신의 영감을 제공한 것이다. 이제부터 화가들은 색채의 해방으로 경쟁적으로 원색의 대향연이 펼쳐지게 된다.
모네 <건초더미>를 보면 특유의 짧고 과감한 붓질로 원색을 툭툭 칠해나간 후 밝은 색 물감으로 햇살을 살려낸다.
팔레트에서 색을 섞지 않고 캔버스에서 원색을 툭툭 칠해 보색 대비가 돋보인다. 하지만 인상주의 대가 모네도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그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선을 넘는 녀석이 등장한다. 고갱과 고흐는 색채를 완전히 해방시킨다. 눈에 보이는 색이 아니라 작가가 그리고 싶은 색을 쓰기 시작한다. 색의 결정권이 화가에게 넘어간 것이다.
고갱이 구사한 색을 보면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원색들이 심하게 과장되어 표현되어있고 고흐의 유명한 걸작 <별이 빛나는 밤>은 무엇을 그리는지 알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작가만 알 수 있다. 저기 보이는 게 나무인지 머리카락인지 미역인지 관객이 알게 뭐람.
별을 품은 밤하늘의 대기가 소용돌이치고 흰색 노란색 원색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나무가 검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초록색과 붉은색이 섞여 있다. 무엇을 그렸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원색이 뿜어내는 강한 에너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색채이론(color theory):뉴턴의 광학 이론에 근거해 18-19세기 발전한 이론. 색의 구분 배합 효과 등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시각예술의 근간을 이룬다.
쉽게 말하면 빛과 색이 같다는 것을 밝혀낸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색이 사실 물체가 빛에 반사된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빛을 재현해야 하는데 화가가 가진 것은 물감이다. 빛은 섞을수록 투명해지지만 물감은 탁해진다. 어떻게 이 난관을 해결할 것인가?
들라크루아의 섞지 않는 보색은 화가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철도와 튜브 물감 알라 프리마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해결해 주었다면 ‘광학’은 이제 물감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다시 앵그르의 그림을 보자. 당시 초상화는 대부분 이처럼 은은한 조명이 있는 실내에서 그려졌다. 이런 조명 아래서는 그림자는 짙고 색조는 어둡고 탁해진다. 만약 햇살을 받으며 그려졌다고 가정해보자. 앵그르는 이처럼 생생하게 그릴 수 있을까? 앵그르는 절대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실력이 아니라 물감의 한계 때문이다.
색채 연구자들은 물감을 “섞지 말고 따로 칠하라”라고 말한다.
좋은 재료를 몽땅 넣고 푹 끓이면 몸에 좋지만 보기 좋지 않다. 들라크루아는 재료는 각각 살아있지만 영양은 보장된 음식을 발명한 것이다. 중국음식에 비유하면 전자가 짬뽕이라면 후자는 양장피라 할 수 있겠다.
그 양장피의 달인이 바로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이다.
푸른 하늘과 풀밭 그리고 화가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본다. 인물의 세밀한 묘사보다 빛을 머금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하얀 드레스는 하늘빛을 머금고 솜털 구름은 그녀를 감싼다. 그녀가 들고 있는 양산은 빛을 마음껏 뿜고 있다.
이제 화가들은 밖에서 빛을 잡을 수 있다.
빛의 마술사 인상주의 하지만 미술은 또 다른 길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