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잔 선생님 여기 손등에 있는 점 두 개만 칠하면 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가볍게 색칠해주시면 제가 가져갈게요.”
세잔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아무 색이나 칠하면 나면 그 색에 맞춰 그 주변으로 시작해 전체 그림의 색을 모두 손봐야 하는데 그래도 되겠소?”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세잔은 그림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 있었다.
그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봤을 때 인상주의도 역시 ‘눈에 보이는 대로 잘 그리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또 한 인상주의는 기법적 특성으로 형태가 무너지고 퍼진 느낌을 주는데 아쉬움을 토했다.
“제대로 된 화가라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선 안 된다. 자기 머릿속에서 새롭게 구성한 자연을 그려야 한다. 그래서 난 원통과 구 같은 모습으로 자연을 다룬다.”
그래야만 고전 미술의 견고함과 조화를 살리면서 고전 미술이 보여준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라 믿었다.
놀라운 급진적인 발상이었다. 인상주의도 이해하기 어려운 시절에 이런 생각을 이해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 놀라운 생각은 이후 미술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빅투아르산>을 보면 인상주의의 색채 기법과 산, 집, 나무, 바위 등 사물을 마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처럼 입체감을 느낄 수가 있다. 인상주의에서 사물은 반짝이는 그저 빛이었으나 세잔은 한발 더 나아가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사물을 원통 구체 원뿔이라는 기하하적으로 단순화해서 표현한다.
가까운 곳은 따뜻한 색을 멀리 있는 곳은 차가운 색을 칠함으로써 색채로 원근법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시 한번 작품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산이 아니라 또 작가가 “보고 싶은” 산을 그렸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로써 마치 눈으로 보는 그림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촉각’처럼 느끼게 하는 새로운 회화의 시도가 펼쳐진 것이다.
사실 인간의 눈은 사진기의 렌즈처럼 혹은 평면 위에 입체를 표현한 원근법처럼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느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뒤에 있는 학생이 머리가 크면 크게 보이지 뒤에 있다고 작게 보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진이나 그림에서는 뒤로 가면 작게 보이는 왜곡된 현상이 발생한다. 바로 이점을 세잔은 극복하고자 한다. 바로 #체험적 원근법이라 일컫는 기법으로 다수의 시점으로 사물을 본질을 완벽하게 나타낸다. 이집트 미술처럼 다수 시점이며 종전의 르네상스의 한 가지 시점 즉 소실점 원근법을 극복해 낸다.
<정물화> 그림을 보면 앞에서 보는 사과와 옆에서 보는 과일 위에서 보는 물병 등 다양한 시점이 있지만, 전혀 어지럽거나 불균형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식탁보 등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사과를 완벽하게 그리기 위해서는 사과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카메라의 시점은 한 곳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을 따라가지 못한다. 세잔은 카메라가 범람하고 일자리를 뺐어가는 시기에서 절대 카메라가 하지 못하는 점을 찾은 것이다.
대상을 묘사하는 것으로는 사진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화가 세잔은 현실을 냉정히 인식하고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대상을 화폭에 ‘재현’하는 것이 사진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면 사진이 할 수 없는 것을 화폭에 그리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그것을 ‘표현’이라고 보았다.
이는 화가의 내면에서 꺼내 화폭에 담은 생각, 의도, 감정과 같은 것이다. 이제 눈에 보이는 대로의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자연을 그리는 것’이다. 세잔의 <대수 욕도>와 같은 그림을 통해 사진이 따라올 수 없는 회화만의 영역을 개척했다.
그림이 존재한 이래 그 오랜 시간 그림의 목표는 무언가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고전 미술이 시작된 이래 화가들은 이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측면에 보자면 그림을 사진처럼 그렸던 화가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모네 세잔 고흐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말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그들은 변해야 할 때 그러지 못했다.
변화는 두렵고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다시 정리하면 세잔은 기존의 원근법을 극복하고, 사물을 본질 그대로 표현하려고 한다. 대상을 원뿔 구 등으로 단순화해서 화가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했다. 이러한 시도는 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또한 고전주의의 장점을 이었고 동시에 후에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거만하고 콧대 높은 피카소도 세잔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졌다고 하니 이미 말 다 한 것이다.
그래서 세잔은 인상주의 색채와 고전주의 형태를 동시 잡은 위대한 아버지 화가다. 또 한 서양미술의 방향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입체파의 피카소는 세잔에게 원근법 파괴를 배웠고, 야수파의 마티스는 자유로운 색채, 선과 면과 몇몇 색으로 이루어진 추상화를 그린 몬드리안은 세잔으로부터 사물을 단순하게 보고 그리는 법을 배운 셈이다.
마지막 고전주의이자 이의 새로운 시도는 최초의 현대 화가라는 두 가지 타이틀 이 그를 설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