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마술사 마티스

by 제이티

카메라의 발전과 보급은 화가들에게 위기인가 동시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카메라의 도전을 “빛”으로 맞섰고, 이를 더 발전시킨 신인상주의는 강렬한 원색 색채의 분할 “점묘법”을 탄생시켰다. 또 이를 뛰어넘은 고흐와 고갱은 화려한 원색에서 화가의 감정을 표현했다.


세잔은 이를 더 끌어올려 대상을 화가가 보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자유를 선물했다. 또한 카메라의 약점은 한 시점만 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서 “다 시점”을 시도해서 카메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경이로운 미술을 만들어 낸다.


이제 카메라 이후 시대는 누가 얼마나 정확하게 잘 그리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마치 지금 시대에 지식을 달달 암기하는 시대가 갔듯이 말이다.


이제 화가들의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앞서 세잔이 제공했다.


이제 화가들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마티스는 “색채”에서 그 답을 찾았다.

<마티스 부인의 초상> 실제 이 작품을 내놓았을 때 마티스는 자기 부인에게도 공개를 못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고 가만히 있었을까? 평론가들의 비판보다 자기 부인이 더 겁이 났나 보다. 왜냐하면, 예쁘게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는 고객의 입맛에 맞게 예쁘게 그리는 게 기존의 통념이자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룰이다. 그런데 마티스 부인의 초상은 아름다움은커녕 떡볶이 소스 범벅에 붓질이 도드라지고 뒤에 배경 또한 짖고 알 수 없는 원색이 보인다.


사람들은 마치 야수 같다고 조롱하기 시작해서 마티스는 야수파라고 불리게 된다.


그렇다면 마티스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왜냐하면, 카메라가 더 발달해서 이미 초상화는 주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도 초상화보다는 사진을 찍듯이 이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색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메라가 하지 못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예를 들어 사진은 파란 하늘을 분홍색으로 찍을 수 없다. 다 찍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고치기 전에는 말이다. 사진은 세잔 아내의 목을 원통형으로 나타낼 수 없듯이 마티스도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어떻게 아내를 그렇게 그릴 수 있느냐고 야유를 퍼부을 때 마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난 아내를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것이다.’


마치 야수처럼 화려한 원색으로 아무런 구애나 편견 없이 자유롭게 색을 표현한다. 기존의 인상주의자들도 형태가 무너지긴 했으나, 노란색과 하늘색을 그대로 표현하긴 했었다. 모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색이 시시각각 달라지긴 하나, 빛의 반사를 담으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고흐도 <별이 빛나는 밤>에서 하늘을 파란색 가깝게 나타다.


하지만 마티스는 이러한 “빛”의 색채를 완전히 무시한다.

<붉은 방>에서 볼 수 있듯이 벽지도 식탁보도 온 통 빨간색으로 덧칠한다. 실제 이런 집은 없겠지만 말이다. 뒤에 보이는 창문도 초록색으로 칠해버린다. 완전히 빛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화려한 색을 단순화해서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한다.

그래서 마티스의 그림에는 빛은 없다.


대신 그의 그림에는 강렬한 풍경이 있다.


바로 마티스 자신의 마음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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