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스케치한 낙서조차 마치 보물처럼 대접받는 이 남자.
살아생전 3천 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한 작품당 10억만 잡아도 대략 30조의 부를 가진 남자.
아마 인간의 노동으로 벌 수 있는 금액 중 최고 금액을 찍은 남자가 피카소가 되겠다. 그만큼 미술을 모르는 사람도 피카소란 이름을 들어봤고 그의 작품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면 ‘뭐야 이거?’라는 절로 나온다. 그림 이란 게 이럴 수도 있구나 정도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왜 피카소의 그림들이 왜 그토록 훌륭하다는 건지 다들 왜 천재라고 하는지 잘 모른다
그렇다면 왜 피카소는 왜 피카소일까?
<게르니카> 그림을 보면 스페인 내전 당시 무차별 폭격을 당해 삽시간에 몇 천 명이 죽는 사건을 접하고 분노에 차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여기에서 보이는 황소는 나치와 군인들이다. 그런데 100여 년 전 비슷한 그림 들라크루아의 그림과 비교해 볼 때 달라진 점이 많이 보인다. 둘 다 공통점은 처참하게 당하는 잔혹한 장면을 연출한다는 점. 하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무언가 난해하면서 섬찟하다. 마치 대상을 다 갈기갈기 찢어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뒤에 배경은 어두운 회색과 검은색이 보이며, 인물의 표정은 마치 수학 시간 도형 같은 이미지를 준다. 또 한 원근법과 빛의 색채도 모두 무시되어 있다.
바로 “입체파” 큐비즘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종전의 서양 그림은 입체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용해서 실제처럼 보이게 말이다. 그러나 카메라의 보급과 더불어 세잔 고갱 마티스 등으로 이어져 오면서 그러한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피카소는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게 된다.
어차피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캔버스로 옮기기에는 불가능하다. 마티스는 그래서 색채의 해방을 통해서 자기 마음대로 표현했다면, 피카소는 어떻게 하면 2차원의 화면에 담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 답은 바로 모든 대상의 해체와 분해.
우유갑을 보면 여섯 개의 면이 있다. 하지만 카메라의 한 시점으로는 한 면밖에 볼 수가 없다. 바로 이점이 카메라의 한계이자 세잔이 고뇌했던 부분이다. 피카소는 어떻게 하면 우유갑의 본질과 대상을 완전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끝에 우유갑을 펼치기 시작한다.
수학 시간에 배우는 바로 “전개도”가 되겠다. 그러면 6개의 면을 모두 볼 수 있으니깐. 우리의 눈은 카메라와 다르게 한 시점도 아니고 왜곡된 원근법도 아니다. 세잔은 구와 원통형으로 나타냈다면 피카소는 완전히 펼친 다음에 잘라서 붙이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래서 게르니카의 그림을 보면 눈과 얼굴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다.
맨 처음에 배운 이집트 미술과 비교해 봤을 때 피카소의 그림은 비슷한 점이 보인다.
다시점을 사용해 사물의 본질을 나타내려 했다는 점.
피카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한 우리는 사물의 어떤 부분만 볼 수 있을 뿐 전체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물은 우리가 보든, 보지 못하든 여러 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부분을 그림 속으로 끌어왔다.
이는 카메라가 절대 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피카소의 다시 점과 입체주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세잔이 아는 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사물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했다면 피카소는 우리에게 과연 우리는 보이는 대로 혹은 아는 대로 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카메라가 한 면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눈은 적어도 3면까지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적어도 우유갑의 앞, 옆, 윗면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사람이나 대상을 바라볼 때 카메라처럼 보고 있지는 않는가? 사람을 대할 때 3면을 보려고 하는지 그 사람의 겉모습 혹은 들리는 소문만 듣고 한숨에 판단해 버리지는 않는지 생각이 든다.
마치 카메라 앞에 웃고 있는 TV 속 화려한 연예인들의 겉모습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사생활이 그렇게 화려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보고 싶은 대로 화려한 면만 쫓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겉모습과 단면만 보고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게 아닌지, 피카소는 이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