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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Apr 06. 2021

낙원

-플라톤 이데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눈 감기 전에 이불속에서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라고 생각하며 잠이 든 날이 며칠이나 될까? 실로 나란 인간은 간사해서 아침에 눈 뜬 순간 뇌에 떠도는 고민과 알 수 없는 잔상의 고통을 뒤로한 채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시작한다. 마치 어제의 실수와 잘못은 까맣게 잊은 채로 말이다. 늘 머릿속에는 어제와 다른 오늘 그리고 근사한 날이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의 귀중한 시간을 좀 먹었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어릴 적 내가 바라고 꿈꾸던 모습이 지금과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예전 무르팍 도사 '비'편을 보다가 문득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잠을 안 자면 꿈을 이룬다."


어린 나이에 그 말은 가슴팍에 묘한 뜨거움을 안겨다 주었다. 당시 비는 월드스타에 할리우드를 점령한 독보적인 셀럽이었다. 가난한 시절과 끈질긴 노력으로 댄스가수를 넘어 배우까지 그야말로 자수성가의 아이콘이었으니까. 다큐멘터리와 예능은 그가 어떻게 노력했고 성공을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려온 시간들을 보여주었다. 그때의 비는 완벽에 가까운 남자 다시 말해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어떤 점 때문에 마음이 끌렸을까? 실력과 외모 끈기 그런 것 보다 목표를 두고 전진하고 도전하는 열정적인 모습 다른 가수들과 다르게 땀에 흠뻑 젖도록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고, 비록 음역대는 다양하지는 않지만 목이 터져라 춤추면서 라이브 하는 그의 무대는 확실히 달랐다. 며칠을 굶은 듯한 야수의 눈빛을 가진 그를 보면 그가 이룬 성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는 어느새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미운 오리 새끼의 현실판이 아마 그가 아니었을까?


나는 진심을 응원했고, 어느새 그 대상이 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짐한 게 나도 뭐든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춤을 좋아하기도 했고 때마침 그때가 한참 임용 공부 중인 수험생 신분이었기에 동기부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나에게 작은 돌멩이를 던졌고 나는 이전과 같을 수가 없었다.


대학교 3학년, 학생회장 총학 투쟁 아.. 등록금 투쟁 서울 상경 투쟁 동맹휴학 회의 분열 마찰 갈라서기 등등.. 자세히 저 피곤한 단어를 열거하기도 싫은 그때. 인간 자체에 혐오감이 들었던 그때의 그 시절은 나에게 가장 불행한 시기이자 얼굴의 웃음기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람은 역시 믿을게 못되고 어른들의 세계는 야비하고 계산적이라 생각했다. 그런 인간들을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만나기는 싫었다. 그들이 없는 곳을 향해 나는 '타 지역'에 시험을 응시했고, 그곳은 분명 여기와 다를 거야라는 마음으로 책과 시름을 했다. 그곳과 다른 여기 아니 그때는 여기와 다른 '그곳'은 더 나은 곳임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다고 생각했으니까.. 이곳은 충분히 나에게 슬픔을 주는 곳이니까 적어도 저기는 슬픔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도망치듯이 떠나간 후 홀가 분과 후련함만 남을 거라 기대했지만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타지.. 다시 말해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 연고도 없는 곳으로 와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해야만 했다. 당연히 사람 사는 곳은 똑같고 학교처럼 새내기의 마음으로 얼마든지 친구를 사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학교와 사회는 분명 다르다는 그 말이 와 닿을 정도로 아는 사람과 동료는 생겼지만 그들도 나도 서로 친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이상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그전까지는 항상 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학교 인싸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분명 학교와 사회는 그 글자만큼이나 확실히 달랐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가 떠나온 곳의 기억이 간사하게도 나쁜 것은 사라지고 마음껏 웃고 취하고 함께 연습하고, 사랑했던 그 거리가 생각이 난다. 싫다고 진절머리가 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사진처럼 기억은 아름다운 순간만 포장하는 잔기술이 있나 보다. 조pd 친구여 가사처럼 이젠 뭘 하더라도 그때와 같은 순 없을 거라며.. 그렇게 나를 또 속인다.  나는 대체 이곳에 아무도 없는 곳에 왜 온 것일까? 내가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아니고 아니고 굳이 먹고살자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까지 올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오징어 잡이 배의 노란 불빛에 현혹된 오징어처럼 낚시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 동안 헛되고 허망하고 그리고 한없이 외로웠다.

이제 떠나온 곳이 다시 이데아가 되었다.


하지만 돌이킬 순 없지 않은가? 애써 괜찮은 척해야 한다. 그렇기에 난 남들과 달라야 하고, 뭐든 고기를 잡으러 떠났으니 뭐라도 들어 올려야 한다. 교사를 넘어서 무언가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여기저기 강의도 들어오고, 바쁜 날이 많아졌다. 친구들의 연락이나 모임은 디저트처럼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아니었다. 매일 강의 준비에 강박적으로 책을 읽어나갔고, 혼자 있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점점 통장의 잔고가 두둑해지자 떠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 '특별'했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비처럼 '예외'는 아니었다.


예전의 한 친구가 꿈이 클수록 불행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꿈을 이룬 사람은 그만큼 이루기 전의 불행을 감내했기 때문일까? 그들은 이제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루지 못한 것이 꿈이라면 그것은 항상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다. 어제도 오늘도 항상 내일을 위한 준비이자 지나쳐 버리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순간의 기록을 삭제해버렸다. 어째서 쉬는 건 낭비라고 생각했을까?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는다. 이제는 사랑하는 단계지만 술자리가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나를 위해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심지어 소설책도 낭비라고 생각했었던 나니까. 이제 나의 신체의 성장은 이미 끝났다. 이제는 흰머리도 나고, 얼굴에 안보이던 주름도 보인다. 몸은 서서히 죽어갈 준비를 하는데, 언제 나는 놀아야 할까?. 그런데 아직 성공이라고 부를만한 꼴이 아닌데 말이다.


코로나 덕분에 술집이 빨리 닫자 졸지에 우리 집은 '아지트'가 되었다. 거짐 일주일 간격으로 술판이 열린다. 이제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고맙게도 밤새 퍼마시고, 치우지도 않고 홀연히 가버린다. 그래서 눈물 나게 고맙다.


행복을 찾아 지금과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난 사람들이 있다.

여기가 싫어서 떠난 사람은 저기도 싫어하게 된다. 나처럼.. 왜냐면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낙원은 분명히 있다. 밤하늘에 분명히 떠있는 북극성은 만질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그걸 보고 시를 짓거나 노래를 부르고 뱃사공은 방향을 찾는다. 만질 수 없다고 없는 게 아니다. 이 세상 아무 곳에도 없는 게 낙원이라 해도 그래도 있다고 믿고 사는 게 현명하다. 적어도 별을 보는 사람의 눈은 아이처럼 해맑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멋지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기보다 어제와 다른 '나'가 되고 싶다.


그것이 꼭 폼나지 않더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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