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 밖으로 나간 첫 번째 여행, Solvang
미국 오기 전, 생활적으로 가장 큰 걱정은 교통수단이었다. 한국의 세상 좋은 대중교통 인프라에 익숙한 나는, 면허도 없고, 심지어 자전거 같은 이동수단도 못 타는 순수한 '뚜벅이'였다.
차 없이 미국에서 생활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면허를 따는 건 불가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 보험적으로(?) 랩실 언니들에게 자전거 단기 속성과외를 받았지만 그마저도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언니들 미안;;) 사실상 '뚜벅이' 정체성은 유지된 상태로 미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막상 초기의 삶에서는 차 없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이게 가능했던 것은, 일단 내가 여기서 어딜 놀러 갈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점과(정말 학교-집, 교회만 다님), 초반에 장을 볼 땐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 라이드를 해주셔서 '차의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교수님과 함께 단둘이서 장도 보고 이케아도 가본 대학원생 나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왜 면허가 없을까라는 후회가 극심하게 들기 시작했다.
처음 불편함을 느낀 건 식자재 장을 볼 때였다. 물론 초반에는 교수님께서 도와주셨지만, 언제까지나 도와주실 수는 없으시니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배달 서비스도 있었지만 사실 없는 것이라 생각해야 할 정도로 비싼 배달비+팁 때문에 무조건 걸어서 장을 봐야 했다. 문제는 집으로 돌아올 때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최소 15 분 걸어가야 했는데, 가벼운 짐들은 괜찮았지만 물같이 무거운 물건들은 정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 몇 주 지나니 웬만한 무게 정도는 가뿐히 들고 다닐 정도로 성장해 버렸다. 하지만 모든 것에 예외는 있다. 그리고 그 예외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솟아나곤 한다.
내 이전 미국생활 글에서 공통적으로 얘기했듯이, 이곳 삶에서 가장 급변한 것은 '자유시간'이었다. 주말은 물론이고 심지어 평일에도 시간이 너무 남아돌았다. 평일은 그나마 저녁 또는 다음날 도시락 준비로 얼추 시간을 보낸다 해도 주말은 차원이 달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구는 것도 내 성격상 지겹고 시간낭비 하는 것 같아 못 버틸 것 같고, 그래서 내린 결론은 밖에 나가 사진을 찍자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는데, 사진 찍는 것까진 좋았으나 여긴 미국이란 걸 잊고 있었다는 거다. 난 새로운 풍경(바다라거나,,)을 보고 싶고, 내 기준 사진 산책은 편도 최대 1시간 거리인데, 문제는 1시간을 걸어도 내가 아는 풍경(출퇴근거리)이라는 거였다. 아니 뭔 이렇게 땅이 넓은 건지,, 사진을 찍으려면 무조건 대중교통을 타고 최소 50분 이상 가야 했다. 세상에 내가 여기서 놀러 다니는 게 불편해 무면허를 후회할 거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심지어 이 후회는 샌디 밖을 벗어난 순간 더더욱 커져버렸다.
어느 날 랩실 분께서 샌디 근교에 있는 지역(Solvang) 와이너리에 놀러 갈 건데 같이 가자고 제안해 주셔서 덕분에 처음으로 샌디 밖 놀러 가기를 하게 됐다. 나는 당연히,, 차가 없었기 때문에 그분께서 라이드를 해주셨는데, 출발해서 다시 집으로 오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나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의 느낌이 들게 했다. 뭔가 '내 마음대로', '자유'라는 걸 겪은 느낌이었는데, 가장 강렬했던 건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가서 원하는 걸 보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여행이든 뭐든 어떤 목적지를 갈 때는 무조건 대중교통을 타고 갔으니, 오고 가는 시간 동안은 단순한 '이동시간'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고 가는 길 모든 순간이 다 목적지 같았다. 풍경이 너무 새롭고 예뻐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속에서 계속 생각했던 건 이것 하나였다.
'만약에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었으면, 이렇게 다니다가 랜덤 하게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사진 찍고 감상했을 텐데..'
어쩌면 그 드넓은 땅, 그 끝없이 쭉 뻗은 도로와 양옆의 푸른 자연들이, 나에게 '자유로움'이라는 신비한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느낌이, 면허의 필요성, 아니 더 나아가 이동 스킬(?) 확장성의 필요를 떠오르게 해 준 게 아닐까.
물론 뚜벅이도 가고 싶은 곳을 잘 갈 수 있다. 하지만 한 방식이 모든 경우를 다 커버할 순 없다. 좀 더 효율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때로는 '방식의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배울 것이 많은 건 그 때문이지 않을까.
사진: Solvang, CA.
*사진을 통한, 순간을 담은 기록: INSTAGRAM @judi_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