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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ith Sep 03. 2024

미국에서 살아남기 2:
여유와 혼돈 그 사이 어딘가

미국 한 달 후기, 이전 편에 이어서...

 저번 이야기는 감사한 스토리지만, 이번은 불맛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인생이 해피만 있을 수 없는 법. 그럼에도 나에겐 상당한 불맛이었다..



July 10, 2024. : 오피스 건물 앞 나무에 자두 걸렸네.

 이런 친환경적인 학교캠퍼스를 보았는가. 건물 앞에 있는 벤치와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만들어낸 예쁜 햇살 풍경이 종종 힐링 스팟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 나무가 자두나무였던 것.

 여기까지는 신기하다 느낌이었는데, 또 알고 보니 여기 사람들은 이 시기에 직접 자두를 따먹는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연구 파트너와 그 동료가 보여준다며 따라오라고 한 그들의 손에는 돌돌 말려진 학회 포스터가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능숙하게 자두를 따주고 1-2일 정도 숙성하면 더 달다는 팁까지 친절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 날, 그들은 무슨 시골 소년들처럼 여기저기 좋은 자두를 골라가며 자두 따기 삼매경에 빠졌다.

 추천해 준 대로 숙성 후 먹은 자두는 정말이지 세상 달고 맛났다. 여름철마다 이 맛난걸 항상 먹을 수 있다니..


July 11, 2024. : 햇반 12개입이 정체불명 시리얼로 바뀐 아마존 매직.

 미국에서의 생활이 행복하게 적응될 때쯤, 인생은 항상 이럴 때 이벤트가 하나씩 터진다.

 첫날 H마트에서 사 온 햇반이 다 떨어져 밥이 먹고 싶을 감정이 올라올 때쯤, 아마존에서 햇반을 주문했다. 원래 햇반 아닌 즉석밥을 먹어본 적이 없지만, 가격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가장 저렴한 비비고 즉석밥을 시켰다. 기대감을 안고 배송날까지 기다리다가 퇴근 후 행복하게 택배 상자를 들었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분명 12개입의 밥을 시켰는데 비정상적으로 가벼웠던 것이다. 아니 처음에는 내가 힘이 세졌나 싶었고 빨리 박스 뜯어서 라면에 밥 말아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바로 상자를 뜯었으나, 내 눈에 들어온 건 중국어였다.

아직도 그때의 어이없음을 잊지 못한다. 택배가 오배송일 수도 없이, 겉상자는 비비고 즉석밥 상자였지만, 그 속은 정체 모를 중국어가 적힌 빨간 라벨이 붙여진 시리얼 3 봉지였다.

 하루종일 생각했던 라면+밥 식사가 무너져서 기분이 매우 안 좋았는데, 이걸 해결하고자 연락할 아마존 고객센터 연락수단이 채팅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채팅을 여러 번 시도해도 AI가 이 물품은 교환/반품이 안된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당장 1시간 뒤에 한국 그룹미팅 줌접속을 해야 하는데 밥도 못 먹고 울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하나. 해결될 것은 없기에, 구글, 유튜브에 검색해서 나와 같은 상황을 찾았고 결국 유튜브에 있는 어떤 남성분의 경험담으로 무사히 환불 절차를 밟았다.


July 17, 2024. : 이게 맞나 당황 가득한 미국랩실 적응기.

 사실 첫날부터 가볍게 투어 했던 이곳의 랩실은 정말 모든 영역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배수구가 막혀있는 sink, chamber 없이 밖에 오픈되어 있는 사이클러, 무슨 폐시약인지 모를 수많은 통들. 이밖에도 놀라운 포인트가 아주 많았지만, (그래도 청결, 안전 관련한 사항은 지금 완전히 개과천선했다. 타랩의 탈바꿈을 도와줄 줄이야..) 가장 놀라웠던 것은 Cu washing 법을 배울 때였다. 전극으로 사용 전, 1 M HCl> Ethanol> Acetone 순서의 washing 후 사용한다고 해서 처음 해보는 나를 위해 파트너가 같이 도와줬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과정에 사용되는 액체를 sink에 버리는 그를 보고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내 표정과, 이게 괜찮은 거냐는 당황스러운 나의 질문에, 그의 대답은 더욱 환상적이었다. 소량이고 고농도가 아니니 괜찮다. 아니 수 ml도 아니고 둘 다 합쳐서 세 가지 액체량이 족히 100 ml는 될 텐데, 그리고 누가 염산을 sink에 바로 버리느냔 말이다..

정말 가끔이지만 워프능력으로 실험할 때만 한국에 순간이동해서 하고 여기서는 일상만 즐기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게 바로 미국 랩실이라면 기꺼이 적응하면 되니까. 이러고 한국 돌아가서 내가 저러면 정말 코미디겠다.


July 19, 2024. : 개미 침공. 이 이상 설명은..

 그래. 사실 아마존 오배송은 아무것도 아닌 이벤트였다. 그날은 내가 스트레스로 오랜만에 통곡한 날이었다.

룸메가 남친과 미국 서부여행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난 발견했다. 내 방 모서리를 둘러 행진하는 개미떼를. 그 행진은 방 입구에서 내 침대 뒤의 벽을 지나 방 전체 둘레를 장악했으며, 모험심 강한 여러 개미들은 행렬을 벗어나 내 책상, 옷장, 가방, 침대까지 점령했다.

 개미들의 영역이 하루가 갈수록 커지는걸 현실부정하며 있었다. 아니 사실 대체 왜 갑자기 개미떼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머리가 굳었던 것 같다. 그러다 내 침대까지 개미가 올라오는 걸 보는 순간, 난 결국 울었다. 정말 이 집에 나 혼자고, 당일 LA보다 먼 Solvang 당일치기 후 늦은 밤이라 도와줄 사람도 없어 이모와 보이스톡을 하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어렸을 적 태국여행에서 개미가 내 몸을 기어간 뒤로 트라우마가 생겼는데, 그 개미가 또다시 내 사지를 기어오르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모는 무조건 단 음식 같은 원인 스팟이 있을 거다라고 했지만, 정말 집 모든 구석에 음식이라곤 전혀 없었기에 환장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일단 잠을 자야 해서 룸메방에 신세를 지려고 들어간 순간, 눈앞에 수십, 과장해서 거의 백 마리 이상의 개미떼로 뒤덮인 초콜릿쿠키 같은 것이 펼쳐졌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천장을 본 순간, 이곳이 시작점이며, 이 성실한 일개미들은 쿠키를 가지고 집에 돌아갈 출구로 내 방을 선택했던 것이다. 천장을 타고 거실을 지나 내방까지 이어진 그 행렬의 처음과 끝을 보았을 때, 나는 정말 오랜만에 육성으로 욕이 나왔다.

 룸메에게 역대급으로 화가 나서 룸메와 집주인에게 문자로 증거 사진, 영상을 다 보내며 쏘아붙인 뒤, 들었던 생각은 주님 왜 제게 이런 시련을, 하지만 그럼에도 원인을 찾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이 순간이 감사하기도 했다. 해결하는 과정도 정말 덜덜거리면서 쿠키를 치우고 약을 뿌렸고 모든 경로마다 약을 뿌려 무슨 결계를 치는 것처럼 필사적이었다. 그 후로는 감사하게 개미가 나오지 않았지만, 정말이지 인생 최악의 경험이었다.



 어쩌다 보니 시간순이 앞에서는 여유를, 뒤에서는 혼돈(+공포)을 느꼈지만, 사실 그 혼돈도 끝에는 여유로 마무리를 내렸다.(심지어 개미마저도.. 개미퇴치 방법의 배움을 느끼며) 그 혼돈에서도 평소 같으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된 스트레스로 생각했을 내가, 여기에선 정말로 받아들이고 넘기는 생활을 하고 있다. 

 어쩌면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어서, 내가 생각보다 주변에 영향을 쉽게 받는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님 현실적으로 이렇게 살지 않으면 과도 스트레스로 쓰러질 수 있어 본능적으로 이렇게 변화했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오랜만에 변화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감사히 생활하고 있는, 미국 한 달 생이었다.


과연 앞으로 남은 6개월은 또 무슨 배움을 얻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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