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블 라이딩 7인조
우리는 백두대간으로 향했다. 만항재를 시작으로 운탄고도를 달리는 라이딩 코스.
로드바이크로는 종종 들렀던 만항재였지만, 이번에는 그래블 라이딩 코스이기에 만항재 코스를 제외하면 새로운 코스로 라이딩을 하게 된다.
그리고 멤버 역시 아주 특별한 분들로 이루어졌다.
김상협 님. 조영남 님, 최지원 님, 김지인 님 , 김우람 님, 이정민 님, 그리고 나. (직급을 나열하며 쓰자니 친구라서 어색하고 모두 직급을 쓰자니 영 딱딱해서 그냥 이름만 작성하였다. 하지만 아래의 글부터는 원래 부르던 대로 자연스럽게 작성될 예정이다.)
모두 자전거 업계에 있거나 적지 않은 관계에 있는 분들이지만, 무엇보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모여 운탄고도를 달리기로 했다.
2019년 2월 25일 월요일 am09:00 고한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자차로 카풀을 하여 3대의 차량이 움직였다.
식사를 하지 않아서 근처 편의점에서 출발 전에 간단히 보급을 했다.
나는 참깨라면과 참치 삼각김밥을 먹었고 다른 분들은 각자의 취향대로 보급을 했다.
그리고 서둘러 출발.
평소 같으면 이런 그림이 좀 어색했을 텐데, 코스가 코스인 만큼, MTB와 그래블 바이크가 함께 어우러져 달려도 어색하지 않았다. 이유는 우리의 라이딩 코스 역시 그런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이클, 아니 더 넓은 의미로 자전거라는 게 쉽다면 쉽지만 깊게 파고들면 너무 어렵고 모호한 것들이 많다. 알면 알수록 정답이 없어지는 것이랄까?
그것도 맞지만, 이것도 맞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맞고 틀리고 가 아니라, 그냥 이 자전거 문화를 온전히 즐기고 더 건강한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 모르겠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멋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장비를 사용하는가를 떠나서, 어떤 자세로 어떻게 즐기는지, 그게 제대로 보이면 그 자체로 멋있게 보인다. 이 라이딩 코스에 클래식 사이클을 투어링으로 세팅하여 참여한 자세. 이 태도가 굉장히 멋지게 느껴졌다.
장갑은 끼지 않아도 될 만큼 기온이 올랐다. 물론 나중에 산속으로 진입하게 되면 아마 기온이 좀 떨어지고 장갑은 다시 착용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천천히 각자의 페이스에 맞게 만항재를 올랐다. 이곳은 말 그대로 라이딩을 시작하기 위해 출발지로 함께 이동하는 개념이랄까?
엄밀히 말하자면, 라이딩 중이지만, 아직 라이딩이 시작된 건 아니다. 우린 그래블 라이딩을 하러 왔으니까.
만항재는 로드바이크로는 몇 번 왔지만, 그래블 바이크로는 처음이다. 아마 로드바이크로 왔을 때보다 더 늦게 올라왔겠지만, 시간을 비교하지 않는 이상 그런 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둘 다 힘들다.
요즘은 카메라 없이 아이폰으로 모든 촬영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쓸만하다. 물론 카메라와 비교해서 확대해보면 다르겠지만, 그래도 라이딩 중 간편하게 그날의 기록을 남기기는 충분하다.
만항재 정상에 도착해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제부터 진짜 라이딩이 시작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라이딩을 출발했는데
그래블 코스에 진입하면서부터는 눈길이 시작되었다. 이전에 차량이 지나간 타이어 자국으로 인해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서 노면이 더 불규칙해졌다. 자전거는 제멋대로 얼음 길을 따라 달렸다. 행여나 핸들을 급하게 틀어보려 하면 타이어는 금방 슬립이 나버릴 테니, 잠자코 얼음 길을 따라 달렸다.
이런 라이딩은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시작부터 이런데 라이딩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기 시작하기도 했지만 점차 코스에 적응했다.
한 번의 낙차로 얼음 길을 달리는 스킬을 배운 것일까? 이렇게도 안 넘어지기도 하네?라며 스스로 굉장히 놀랐다.
곳곳에 눈이 녹아 빙판길을 만들었고 도저히 주행이 불가능한 코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자전거의 장르가 바로 이런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 모든 경험을 즐기는 것, 그게 바로 그래블 라이딩인 것 같다.
완전한 빙판길에서는 MTB도 방도가 없다.
길의 가장자리에 온전한 눈을 밟아 내려오면 주행은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규칙한 지면과 나무들로 인해 쉽지 않았다.
그래블 라이딩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감이 바로 이런 색감이다. 황토와 자갈. 숲, 마른 땅.
그래블 라이딩은, 단순히 자전거만 바뀐 게 아니라 환경이 바뀌고 그에 따라 경험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다.
오르막 빙판길에는 정말 답이 없다.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가야 하는 코스. 도시 라이딩이었다면 코스를 변경해서 돌아가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게 없다. 라이딩이 목적지를 두고 달리는 개념이라기 보다 라이딩을 하는 과정의 경험을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도 라이딩에 감동을 받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데, 이곳 운탄고도를 달릴 때는 정말 감동이었다. 굳이 해외 투어를 떠나지 않다도 충분히 이색적인 라이딩 경험을 하게 만드는 곳이었고, 그래블 이라는 장르 자체가 주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렇게 신나게 자갈길을 달리다 보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더 자유롭고, 더 진한 라이딩을 느낄 수 있었다.
라이딩은 정말 힘들었다. 로드바이크를 탈 때처럼 심박이 올라 숨을 헐떡이는 것과는 다르게 라이딩 순간순간 긴장의 연속이었고 업힐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경사도였다. 포장된 도로와 다르게 비포장길을 달릴 때면 크고 작은 돌과 자갈을 타이어로 밟고 넘어야 하는데, 그 돌과 자갈의 생김새에 따라서 5cm~ 10cm 짜리의 업힐이 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자전거로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난 이곳을 평생 보지 못했을 것 같다. 블로그에는 자전거로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그다지 활동적인 편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자전거를 타지 않는 시간에는 대부분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나에게 자전거는 "또 하나의 세상"이다. 나의 "또 다른 삶"이고 또 "다른 나"이다.
그리고 함께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래블이라는 장르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특별한 경험에 대한 가치가 소비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그래블 바이크는 분명 매력적인 장르이다. 산에 진입하게 되면 도심에서 라이딩하는 경험과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눈치 볼 것이 없다. 차량, 신호, 보행자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며 라이딩해야 하는 로드 사이클과 기타 다른 장르와 다르게, MTB나 그래블 바이크는 온전히 라이딩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자연을 느끼고, 라이딩을 느끼는 것.
아무리 설명해도 설명이 부족한 감성적 영역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나는 그래서 그래블 라이딩이 좋다.
<2019년 2월 25일 운탄고도 라이딩을 떠올리며>
금개구리의 즐거운 스트레스 발췌 : 조금 더 사적인 원문은 아래의 링크에...
http://jty40.blog.me/221522012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