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 옛날 시골 할머니가 싸주시는 참기름일까.
혹은 들기름?
둘 다 틀렸다.
커피다.
더치커피 원액이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형이 손수 내려준 커피이다.
조금 더 예쁜 병에 담지 않고 본인이 아마 혼술을 통해 비워냈던 소주병 안에 커피를 담아 온 것.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형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우리 형다운 선물이다.
형은 올해 마흔다섯, 그리고 나는 올해 서른여덟이지만 7년이라는 터울은 언제나 큰 형과 막내로 역할이 정해져 있으니 나는 아직도 형 앞에서는 막냇동생일 뿐이다.
형은 늘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덧 같다.
처음 형 손을 붙잡고 갔던 미아사거리에 있던 대지극장에서 터미네이터 2를 보던 기억.
크리스마스 때 신문 배달해서 받은 월급으로 나에게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해줬던 기억.
동네 공터에서 개들에게 물려 울면서 집에 들어오면 형이 다시 내 손을 붙잡고 따지러 갔던 기억.
그리고 38살 먹은 동생 먹으라고 45세 형이 소주병에 커피를 담아오는 지금.
어떤 대한 존재로써가 아니라 그저 어린 동생의 형으로써 조용히 사탕을 건네는 것 같은 우리 형이다.
특히나 감정표현에 서툰 우리 가족 중에서도 제일 서툰 형의 직접적인 표현이다.
이것마저도 "커피 가져왔으니 먹으려면 먹고, 먹기 싫으면 내가 먹고"라는 말을 하며 냉장고에 넣어놓고 본인 집으로 돌아간다.
예전 같으면 “안 먹어~ 형이나 먹어”라고 할법하지만, 요즘은 일부러 먹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다 먹고 버리지 않은 빈병을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게 서툰 감정표현을 가진 우리 가족의 표현방법이다.
가족은 너무 소중하다.
<2019년 5월 13일 소주병 커피를 마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