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금이야 옥이야

(완료)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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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gold or jade

"아가, 저그 밖에 좀 봐라, 우리 아들 탯자리 지나가네."


지난 봄,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산소에 가는 길에, 차창 밖을 보시던 어머니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네셨습니다. 이미 반백이 넘은 아들에게 우습게도 어머니는 가끔 아가라고 부르시곤 합니다.


"탯자리? 그게 먼 말이당가?"


탯줄을 묻은 자리라는 뜻으로 주로 태어난 곳을 의미하는 옛말이라고 합니다.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이라고 하는데, 상당히 인상적인 표현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모가 운전하던 차가 지나던 곳은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리, 충견인 '오수의 개'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이곳이 바로 제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자란 곳, 탯자리인 셈이죠. 유치원 다닐 즈음 전주로 가족이 이사를 갔으니 어머니의 말씀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많은 기억은 없지만 키우던 강아지들이며, 같이 놀던 옆집 아이, 그리고 집 뒤로 커다랗게 있던 포도밭까지 몇몇 기억은 생생할 만큼 아직도 또렷합니다.


동생과 연년생인 저는 동생이 태어나고 1-2년 후 잠시 남원 외갓집으로 보내진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년생 갓난아이를 어머니 혼자서 돌보기가 매우 벅찼겠죠. 외갓집에서 저를 당분간 돌봐주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맏딸이셨는데, 밑으로 두 명의 남동생과 네 명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모들과 외삼촌들이죠. 당시 외할아버지는 남원 시내에서 큰 주유소를 운영하실 정도로 가세는 매우 여유가 있었고, 가족들이 살던 집도 널직한 정원이 있는 매우 커다란 집이었습니다.


정말이지 그시절 저는 외갓집에서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습니다.


당시 막내 삼촌이 입고 다니던 시커먼 고등학교 교복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나머지 이모들이나 삼촌들은 당시 모두 20대 처녀 총각들이라 죄다 밖으로만 쏘다닐 때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도 다 커버린 자식들로 휑한 집에 뽀송뽀송한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다니니 얼마나 예뻤을까요? 게다가 전 집안의 첫 손자였으니 그 관심과 사랑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였죠. 당시 할머니의 연세도 아마 환갑이 되기 전이라, 언제나 에너지도 넘치시고 흥도 많으시던 외할머니는 그렇게 저를, 불면 날아갈까 건드리면 깨질까, 애지중지하게 키우셨죠.

시간이 흘러 외할머니 집에 갈 때면 할머니가 늘 말씀하시는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니를 내가 포대기에 싸서 업고 나가면 말이여, 보는 아짐들마다 '다들 어디서 이런 미남을 업고 왔소' 했쌌다."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 니는 어렸을 때 영화배우 이영하를 똑 닮았어야."

"니를 업고 광한루에 가면 애기 잘생겼다고 너는 보트도 공짜로 태워주고 했어. 원래 한 번 탈라면 100원씩 내야 혀."

"우리 손주는 어릴 때 내가 녹용을 먹여서 감기 한 번 안 걸린 것이여. 내가 좋은 것은 다 해다 먹였지. 그래서 안 아프고 이쁘게 잘 컸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아침마다 할아버지가 챙겨 드시는 보약을 할머니는 조금 덜어서 제게 주셨고, 써서 먹기 싫었지만 어서 들이키라는 할머니 눈빛에 꾹 참고 들이켰던 기억도 있습니다. 사실 말씀대로 그 보약 덕인지 자라오면서 저는 별다른 잔병치레 없이 무난하게 잘 크기도 했죠.


당시 외가 옆집의 누나들에게도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요, 당시 중고생들이었던 누나들은 제게 노래도 알려주고 숨바꼭질이나 얼음땡처럼 함께 놀아주기도 하는 고마운 누나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누나들과 함께 뛰어 놀다 마루에서 미끄러져 꽈당 넘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크게 다친 것도 아니지만 으레 아이들이 그렇듯 와앙 울음을 터뜨렸고, 저만치 계시던 할머니는 깜짝 놀라 손살같이 달려와 다짜고짜 누나들 등짝을 때리며 혼을 내셨죠.

"이 썩을년들이 말이여, 뭣한다고 애기를 데려가서 자빠지게 만들고 지랄이여. 어디 아가, 우리 아가 많이 안 다쳤냐? 할머니가 저것들 혼내줬응게 그만 울자잉?"

황당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나때문에 안먹어도 될 욕까지 들어먹은 누나들도, 내가 어디 안 다쳤을까 함께 살펴봐주고, 그렇게 어디에서든 저는 금이야 옥이야 넘치는 사랑을 받고 지내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열 살이 조금 넘었을 때였을까요? 갑자기 할머니의 눈에 이상이 찾아왔습니다. 늘 건강하셨던 할머니에게 몇 해 전부터 당뇨라는 병이 찾아왔고, 그 합병증으로 인해 시력이 차츰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외삼촌은 TV에도 나오던 서울의 유명한 의사를 찾아 할머니를 모시고 진료를 보기도 했지만, 불행히도 점점 나빠지는 시력을 늦출 수는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몇 해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시력은 완전히 사라졌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집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죠.


그러나, 보통 사람이라면 상처를 받고 속상하셨을 법도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좀 남다르셨습니다. 시력을 잃으신 후에도 외가집에 다녀갈 때마다 우리 할머니만이 가진 에너지와 입담은 여전하셨습니다.

좋아하시던 담배도 베란다 한켠에서 당당히 태우시기도 하고, 용돈을 드릴적에도 "니가 돈이 어딨냐" 하시며 고맙다고, 그러시면서도 사양하는 법 없이 야물게 옷섶에 챙기시는 모습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가족들과 식당에 가서 함께 음식을 먹을 때도 맛있게 그리고 행복하게 음식을 드시고, 연신 자식들을, 손주들을, 그렇게 당신을 안쓰러워하는 다른 이들을 그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누구나 무서워하는 병, 당뇨를 앓으셨지만 할머니는 거의 백 세까지 장수를 하셨고, 아프고 불편한 몸이셨지만 연로하신 할머니가 가진 에너지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셨죠. 어쩌면 그 내면의 활력이 할머니의 장수 비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금이야 옥이야'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을 다루는 데 매우 애지중지하여 금이나 옥처럼 귀중히 여김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마치 우리 할머니가 생전에 제게 주셨던 그 사랑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Geumiya okiya" (금이야 옥이야) is a Korean expression meaning "like gold or jade," used to describe how someone treasures and cherishes something or someone with utmost care and affection. The phrase captures the essence of treating someone as precious as the most valuable materials known to traditional Korean culture.


This deeply personal essay explores the author's childhood memories of being raised by his maternal grandmother in Namwon, a city in South Korea's Jeolla Province. When he was just a toddler, his parents, overwhelmed with caring for two young children born close together, temporarily sent him to live with his extended family. There, he became the center of attention as the first grandson in a well-to-do household where his grandfather owned a successful gas station.


The narrative vividly portrays the grandmother's overwhelming love and protection, told through her own words in the regional dialect. She would boast to neighbors about her beautiful grandson, comparing him to famous actors, and would even physically defend him from any perceived slight—even scolding older children in the neighborhood when he fell while playing. The author recalls how she fed him traditional Korean herbal medicines alongside his grandfather, believing this would keep him healthy throughout his life.


The story takes a poignant turn when the grandmother develops diabetes-related complications that gradually rob her of her sight. Despite this devastating loss, she maintains her spirited personality and continues to care for her family with the same warmth and energy, demonstrating remarkable resilience in the face of adversity.


Through this intimate portrait, the essay reflects on the nature of unconditional love and how it shapes us throughout our lives. The author realizes that the true meaning of "like gold or jade" isn't just about how we treat precious objects, but about the transformative power of loving someone so completely that they become as valuable as the rarest treasures. It's a universal story about family bonds that transcends cultural boundaries while remaining deeply rooted in Korean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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