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피는 물보다 진하다

Blood is Thicker than Water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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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 터울의 누나가 있습니다. 사고뭉치던 여동생이나 저와 달리 누나는 어릴 적부터 말썽 하나 안 부리고 엄마 아빠 말 잘 듣는 그런 맏딸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런 누나를 늘 자랑스러워하셨죠. 어느 집이 그렇듯 첫아이는 많은 기대와 사랑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누나는 학교 성적도 늘 상위권을 유지했었고, 그렇지 못한 두 동생들에 비해 언제나 안정적이고 큰 기복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여실히 느끼지만 저와는 너무 다른 성격 탓도 있겠지만, 틈만 나면 부모님께 혼날 짓만 골라 하던 저와는 결이 매우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나와 저는 어릴 적 교류가 매우 적었습니다. 두 살 터울이니 같이 어울려 놀 법도 한데, 오히려 누나는 여동생하고 둘이 놀았습니다. 저는 남동생이라고 문을 걸어 잠그고 노는 것이 일쑤였습니다. 어릴 때는 나를 따돌렸던 누이들이 속으로 밉고 마음도 많이 상했었습니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매우 데면데면한 관계였던 누나와 나는 그 후로도 특별히 가까워질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성인이 되면서도 누나는 본가 광주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했었고 저는 집을 떠나 서울로 가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접점이 줄어들고 있었죠.


제가 군 제대 후 1-2년쯤 지났을까요. 누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매형과 결혼을 해 미국에 유학하러 훌쩍 가버렸습니다. 힘들고 바빴을 유학생활에, 저는 저대로 바쁜 복학생활을 보내며 그렇게 심심 남매는 슬슬 서로의 기억과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솔깃한 제안을 하나 하십니다.


"아야, 요즘 대학생 애기들이 어학연수를 많이 간다매?"

"어 근다고 하더라고"

"니도 영어 공부하러 한번 가면 어찌냐"

"아니 뭔 집에 돈도 없으면서 어학연수요? 어디 미국이라도 보내줄라고?"

"그려 엄마가 미국 보내주께, 이모한테도 말해본게, 니 얼릉 보내란다"

"뭐? 미국? 엄마 진짠가? 진짜 보내줄란가?"

"그려, 보내준다니깐? 간김에 의정이도 좀 들러서 보고 오고"


말미에 누나한테 들르라는 게 썩 내키지 않고 귀찮기도 했지만, 나중에 알았습니다. 제 영어공부를 위하는 명분 속에는 저 멀리 이역만리에 있는 딸자식이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저를 대신 보내 살펴보고 오라고 하신 것이었죠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별다른 수입이 없었던 우리 집에 어머니의 통 큰 결정으로 드디어 저는 이모가 계시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매일 1시간씩 통근기차 타고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영어 학원으로 출퇴근을 하며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누나와 매형은 함께 학비 전액을 제공받을 수 있는 솔트레이크 시티에 있는 한 학교에서 유학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유타 솔트레이크 시티는 몇 년 후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는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시골 깡촌 같은 느낌의 도시였죠.


어머니가 다녀오라고 하는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저는 도메스틱 비행기 표를 끊었습니다. 당시 대한항공만 타본 저는 미국인들만 잔뜩 들어차 있는 비행기를 타는 것도 사실 스트레스였습니다. 미국 공항 체계도 잘 알지 못해 사실 혼자 하는 여행이 매우 부담스러웠습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누나하고 약속을 잡고, 그렇게 저는 물어물어 솔트레이크 시티 공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어색하게 누나, 매형과 인사를 나누고 일주일 정도를 그렇게 누나 집에서 함께 머물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머무는 학생 아파트에 도착했고 그제야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눈에 들어 왔습니다. 방이 하나뿐인 원베드 소형 아파트에, 세탁기도 외부에서 코인을 사용해야 하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저층 아파트였습니다. 동양인 이웃들도 몇몇이 주변에 보이는, 전형적인 생계형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누나 부부 역시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울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알콩달콩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을 일구어 나가는 모습이 예뻐 보이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누나는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굉장히 저를 챙겨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지만 사실 기분 좋았죠. 당시 누나는 요리라고는 몇 개 하지도 못했을 때인데도, 집에서 몇 개 음식을 해 준 것도 같은데 모양은 그럴싸 했지만 솔직히 맛은 별로여서 서로 웃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제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식당을 데려가려고 하는 모습들이 매우 고마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도 평소에는 갈 엄두를 못 낼 그런 식당이었을 텐데 저를 위해 그렇게 해주었던 거죠. 낡은 차였지만, 저를 태우고 돌아다니며 이곳은 어디며 또 저곳은 어디며, 그들도 온 지 얼마 안 된 초보 유학생들이면서, 어떻게든 제게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애를 써주는 모습이 참 고마웠죠.


그렇게 어색하지만 기분 좋았던, 뭔가 불편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고마웠던 일주일이 지나고, 시카고로 다시 돌아가는 날이 왔습니다. 아침에 짐을 챙기고 누나 부부는 저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게이트로 들어가기 직전 가겠다고 매형과 인사를 나누고, 누나에게도 간다고 말하는 순간, 제 눈앞이 갑자기 뿌얘졌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크는 동안 별다른 접점 없이 데면데면하기만 했던, 별다른 정이 없다고 느꼈던 누나 때문에 제 눈에 눈물이 맺히다니, 너무 당황스럽고 창피했습니다. 말을 하는 둥 마는 둥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뒤돌아 가면서도 주책없이 눈물은 계속 흘렀습니다. 들킬까 봐 한번 더 돌아볼 법도 했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눈물의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일주일 내내 절 위해 신경 써준 고마움에 대한 눈물이었을까요 아니면 서툰 미국생활이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나 꿋꿋이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려고 하는 안쓰러움이 보여서였을까요. 아니면 별다른 즐거움 없이 학교 집만 반복되는 일상에 데면데면 하긴 하지만 그래도 핏줄이라고 만나서 반가워하는 모습에 숨겨진 외로움을 느껴서였을까요.


아직도 눈물의 연유를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실감한 수십 년 전의 기억입니다.



This personal essay explores the Korean proverb "피는 물보다 진하다" (Blood is thicker than water), which emphasizes that family bonds transcend all other relationships. In Korean culture, this saying reflects the deep-rooted Confucian values that prioritize family loyalty and kinship ties, often suggesting that blood relatives will ultimately support each other despite conflicts or distance.


The author reflects on his relationship with his older sister, two years his senior, who was the model child while he was the troublemaker. Growing up, they maintained a distant, formal relationship with little interaction or emotional connection. This distance persisted into adulthood as they pursued separate paths – she remained in their hometown of Gwangju for university, while he moved to Seoul.


The turning point came during an unexpected visit to his sister in Salt Lake City, where she was studying with her husband as international students living in modest conditions. For the first time, she showed genuine care and affection, cooking for him, taking him to restaurants they could barely afford, and trying to make his week-long stay memorable.


The essay's climax occurs at the airport departure, when the author unexpectedly finds himself crying – a moment that catches him completely off guard. This emotional response surprises him because he believed he felt no special connection to his sister. The tears reveal the profound truth of the Korean proverb: despite years of distance and indifference, the fundamental bond between siblings remained intact.


Through this intimate narrative, the author discovers that family connections run deeper than conscious awareness, emerging in moments of separation and vulnerability. The essay ultimately affirms the timeless wisdom embedded in the Korean saying, suggesting that blood relationships possess an inherent strength that transcends surface-level interactions and geographical d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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