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완료)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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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딱 봐도 우리나라에서 유래된 말은 아니겠죠? 어릴 적 영어책에서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라는 문구를 공부한 게 기억나는 걸 보면 서양 유래 격언인 듯합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사용하는 관용구입니다.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개미들의 군집생활을 자주 접합니다. 그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수많은 개미들이 저마다 열심히 왔다 갔다 거리며 무언가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움직임이 매우 규칙적이고 일관적이어서 누가 봐도 어떤 규범에 의해 움직이고 있겠거니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체계적이죠.


미물인 개미들도 저들만의 규칙과 규범이 있을 텐데, 하물며 인간들이 구성하는 여러 사회에도 그들만의 독특한 규칙과 규범이 있겠죠. 이번 글에서는 저의 군대 시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군대는 누구나 잘 알듯 철저한 계급사회입니다. 장병들 사이의 위계가 무너지면 기강이 무너지고 나아가 결국 국가의 안보가 무너질 수 있는 그런 곳이죠. 사실 처음 입대했을 때 마주치는 일병, 상병, 병장, 심지어 내일 모레 제대하는 말년병장까지, 신병은 그 고참들을 쳐다보기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속된 말로 그들의 경력과 계급을 군대에서는 '짬밥'이라는 말로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부분 스무 살 스물한 살 남짓한 젊은이들이 2년 2개월을 함께 복무하기 때문에 고참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자기 나이 또래의 동년배인 경우가 많습니다. 군이라는 곳을 제외하면 사실 친구 먹고 말 놓으며 지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동년배들인 거죠. 그렇지만 군이라는 울타리에만 들어가게 되면 그 특성상, 한 달만 더 일찍 군대를 와도 제 나이를 다 떠나 고참으로, 선배로 대접하고 그들의 짬밥을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매우 독특한 곳입니다.


그 군대 이야기 중에서도 저는 보다 더 특별한 경험을 한 가지 더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군병원에 대한 경험입니다. 아마도 군생활 당시 저처럼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다쳐서 군병원에 입원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가 어떤 얘기를 들려드릴지 바로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만큼 군병원에는 그들만의 매우 특별한 규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약밥 문화'입니다. 달달한 약밥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병원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약을 먹었는지, 즉 병원생활을 얼마나 오래했는지가 그곳에서의 계급인 약밥의 높고 낮음을 결정짓는다는 것이죠.


봄쯤이었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4월에 자대배치를 받고 2박3일 중대 훈련을 나갔다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이었습니다. 행군 중에 빗물에 미끄러져 저는 그만 무릎이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급히 의무대로 실려왔지만 엑스레이를 찍어보자는 군의관의 판단으로 저는 군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검사 결과 '좌측 슬관절 반월상 연골파열'이라는 겁이 덜컥 나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검사만 하고 부대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진료는 급작스레 입원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저는 예상치 못하게 바로 춘천에 있던 군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약 4개월간의 제 군병원 생활이 시작됩니다. 어차피 이등병이었기에 군기는 바짝 들어 있었지만 군병원의 문화를 모르는 제게 이곳의 모습은 사실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약밥이 높은, 그러니까 조금 심각한 부상을 입고 꽤 오랜 기간 치료를 받고 있는 군인들 중에는 본 계급이 이병, 일병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대에서의 일반적인 하위 계급이 아니라 마치 상병 병장처럼 병실 내에서는 큰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었습니다. 바로 오래된 입원 경력 때문이죠. 저랑 같이 입원하게 된 한 상병 병사는, 오자마자 계급이 낮아 보이는 환자들에게 격의없이 대하다 소리소문없이 끌려가서 안 좋은 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몸이 아파 처음 입원하게 된 병사들은 마치 이등병이 처음 자대에 배치받듯 본인 계급에 관계없이 신병 취급을 받았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참 병사들에게는 얼차려나 폭행 등도 암암리에 벌어지곤 했었죠. 무슨 병으로 입원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약밥이 매우 높았던 일병 환자는 마치 일반 내무반의 최고참 병장마냥 병실의 우두머리 행세를 하고 있었고,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군의관이나 간호 장교들마저 이러한 그들의 약밥 문화를 모른 척 눈감아주거나 외려 그들에게 병실 내 질서를 기대기도 했다는 것이죠.


한심했습니다. 몸이 아파 치료하기 위해 온 병원에서조차 유치한 계급 놀이라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억울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할 법도 했습니다. 잃을 것 없는 이등병인 저는 큰 불만 없이 적응하며 잘 지냈지만, 수술을 받고 퇴원 무렵에는 제게도 그들이 누리던 특권 같은 것들이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병실 청소를 빼준다거나, 회진 시에 베개에 기대고 있을 수 있다거나 하는 유치한 것들이죠. 이후 저는 곧 자대로 복귀했지만 이렇듯 이상했던 병원생활은 제게는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머무는 이 나라에도 이들만의 독특한 규범이 있습니다. 껌을 씹는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거나, 대중교통 이용 시 음식물 취식도 매우 강하게 금지하고 있죠. 지하철 안에는 두리안을 먹지 말라는 문구가 명확하게 붙어있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볼수 없는 독특한 이들만의 모습이죠. 게다가 실제로 매질을 하는 태형이 아직까지 존재한다고 합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사회를 경험하면서 살아갑니다. 내가 보기엔 터무니없고, 타인의 시선으로는 결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들만의 규범들. 하지만 어쩌면 그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 끝에 형성된 매우 신중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동갑내기들끼리 서열을 매기는 듯한 군대 내 계급도 징병제 국가에서 짧은 기간 동안 군기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고, 군병원의 약밥 문화 역시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치료를 우선하기 위한 나름의 방책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로마에 가지 않으면 로마법을 이해조차 못하듯이 말입니다.



This personal essay explores the universal wisdom embedded in the ancient adage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through the lens of a uniquely Korean military experience. The author reflects on his unexpected four-month stay in a military hospital following a knee injury during training, where he encountered a fascinating subculture governed by "yakbap" (약밥) – literally meaning "medicine rice," referring to the unofficial hierarchy based on the length of one's hospital stay rather than military rank.


In South Korea's mandatory military service system, this hospital culture creates a paradoxical world where a lower-ranking soldier with extensive medical experience can command respect from higher-ranking newcomers. The essay vividly describes the culture shock of witnessing established military hierarchies being overturned by this alternative power structure, where medical officers tacitly acknowledge and even rely on the "yakbap" system to maintain order among patients.


The narrative extends beyond military life to examine how different societies develop their own seemingly arbitrary yet functionally necessary rules – from Singapore's strict gum-chewing prohibition to Korea's complex age-based social hierarchies. Through personal anecdotes and thoughtful reflection, the author suggests that what appears irrational to outsiders often serves crucial social functions within specific contexts.


This essay offers readers insight into Korean military culture while delivering a universal message about cultural adaptation, social norms, and the wisdom of understanding before judging unfamiliar cust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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