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한치앞도 모른다

You Can't See Even an Inch Ahead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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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앞도 모른다'는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여기서 말하는 '치'는 길이의 단위로 한 자의 10분의 1, 약 3.03cm에 해당합니다. 3cm 앞도 모른다니, 정말 눈앞의 일조차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겠네요.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영상들을 보면 1-2초 앞에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지 못해 안타까운 일을 당하거나, 반대로 운 좋게 사고를 피하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인생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늘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제 자신조차도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죠. 지금도 가족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지하철 6호선으로 출퇴근하던 2010년 전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날은 외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아니면 그날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하고 있었어요.

시간은 오후 3-4시경이었을까요. 퇴근하는 지하철 안은 평소 퇴근시간과는 달리 매우 한산했습니다. 여유 있게 자리에 앉아서 집으로 가고 있었죠.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로운 지하철 시간이었습니다.


멍하니 그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고 있던 저는 우연히 옆에서 재잘거리는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에게 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큰소리로 떠드는 것도 아니었고 눈에 띄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특이한 점은 이 아이들이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대여섯 명 중에 세 명 정도는 꼬부라진 발음으로 매우 유창하게 영어를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한국 아이들은 또 한국말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구요. 누가 봐도 TV에서 보던 교포 아이들이었습니다. 미국 회사 물 좀 먹었다고 귀를 기울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려 했지만 제 영어로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더군요. 그저 이상함과 부러움에 아이들 재잘거리는 걸 계속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상월곡역에 도착하자 영어로 떠들던 네 명이 우르르 내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어요. 한국말이 어눌할 줄 알았던 교포일 줄 알았던 그 아이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한국말로 다른 아이들에게 인사하며 내리는 거였습니다.

정확하게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선생님이 어쩌고 톡이 어쩌고 여느 그 나이 때 여자아이들이 헤어질 때처럼 하하호호 웃으며 아쉬워하는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였어요. 방금 전까지 쏼라쏼라 영어로 떠들던 아이들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저 아이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저 나이에 유창한 바이링궐이 되었을까. 생각을 거듭해보니 상월곡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있는 것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그렇구나, 얘들은 그 학교 교수들의 자제인가 보다. 외국에 유학을 가서 거기서 나고 자라서 영어를 자연스레 익히고, 그러면서도 집에서는 한국어 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았겠지.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버지 어머니는 교수님인 데다가 본인은 바이링궐이니 얼마나 스스로 자신감이 넘칠까 싶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인생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동시에 당시엔 아직 어렸던 우리 아이들이 이 아이들과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에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봐도 아내는 뭐 그런 걸 가지고 이런 생각까지 하냐며 별일 아닌 듯 웃으며 날 나무랐지만, 저는 왜 그리 아쉽고 미안한지 몰랐습니다.


사실 그 즈음에 미국에 10년 넘게 유학 중이던 누나와 매형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자랑스럽게도 매형은 한 명문 사립대의 교수님으로 임용이 되신 거죠. 둘 사이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조카가 있었고, 지금은 누가 봐도 토종 한국인이지만 막 한국에 들어왔던 그때는 한국말도 잘 못하고 엄마 아빠랑 영어로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또 이상하게 느낀 적도 있었죠. 그런데 조카를 볼 때도 제 스스로 아마 조카가 부러웠나 봅니다. 내 아이들도 아빠가 공부를 잘하고 능력이 있었더라면 미국에서 자라고 학교 다니고 많은 경험을 하고 영어도 쏼라쏼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제 마음 깊숙히 있었나 봅니다.


이런 경험으로 저는 이민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를 실제로 합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호주 이민을 준비하기도 했었고, 캐나다에 가면 아이들 우유값을 준다길래 캐나다 이민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민 설명회에도 몇 번 다녀왔고, 영어 시험 준비도 해보고, 필요한 서류들도 알아봤죠. 아이들 미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비자가 잘 나오지 않고, 필요한 영어시험 준비도 녹록치 않아서 결국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 바뀌었습니다. 10년이 훌쩍 지난 시간입니다.

그간 막내 아들녀석이 태어나고,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 아이들은 싱가포르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상월곡역의 아이들이나 조카처럼 미국에서 태어나지는 못했으나, 어린 나이에 이곳으로 와 공부를 하고 있고 현지 사람들이나 현지의 외국인들과도 매우 자연스럽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이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여기서 친구를 사귀고 학교를 가고 또 직장을 잡고 인생을 살아야 해." 하루 종일 재잘거리고 놀다 잠든 아이들을 보며 되뇌이던 가장의 미안했던 현실과는 달리, 지금 현실은 180도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거죠.

햇볕 쨍한 시드니의 한 단독주택에, 혹은 온 세상이 하얀 눈에 덮인 토론토의 삶을 꿈꾸며 아내와 이민공사를 수년간 쫓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계획하지 않았던 인생의 길이 지금의 삶으로 가족들을 또 이끌었고, 거기서 복작거리면서 나름대로 의미있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모릅니다. 아이들의 인생이 어디서 더 펼쳐질지.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꿈을 펼칠지, 아니면 더 큰 나라로 가서 더 큰 포텐셜을 터뜨릴지, 그것도 아니면 아빠처럼 엄마처럼 아이 낳고 직장 다니며 그렇게 평범하게 살지요.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순간들이 모여 인생이 됩니다. 그 예측 불가능함이 때로는 불안하고 두렵지만, 돌이켜보면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하고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This essay explores the Korean proverb "Han-chi-apdo moreunda" (한치앞도 모른다), which literally means "you can't see even one 'chi' ahead" - where 'chi' is a traditional unit of measurement equivalent to about 3cm. The saying captures life's fundamental unpredictability: we cannot foresee what lies just inches in front of us, let alone our distant future.


The author recounts a pivotal moment from around 2010 while commuting on Seoul's subway line 6. Observing a group of teenage girls seamlessly switching between fluent English and natural Korean, he initially assumed they were Korean-American students. When they disembarked at Sangwolgok station near KIST (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their perfect Korean revealed them to be bilingual children of professors - embodying the international opportunities he desperately wanted for his own children.


This encounter triggered years of serious immigration planning. The author invested significant money and effort pursuing opportunities in Australia and Canada, driven by a father's guilt and ambition to provide better global experiences for his family.


Yet a decade later, through completely unplanned circumstances, his children now study in Singapore, achieving the very international education he had dreamed of - just not through the path he had meticulously planned. The essay beautifully illustrates how life's most meaningful developments often emerge from unexpected directions, reminding us that our inability to predict the future can be both unsettling and wonderfully surpri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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