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
The Incarnation of Youth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은 다양합니다. 《건축학개론》의 서연처럼 순수하고 풋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상처받기 쉬우면서도 센 척하는 어설픈 젊은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또 밤을 새워 무대 위를 꿈꾸며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연습생,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공부하는 고3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친구들과 함께 축구, 농구, 달리기를 하며 땀과 열기, 거친 호흡을 함께 나누던 운동장의 풍경 또한 빼놓을 수 없겠죠. 하지만 나에게 청춘의 화신은 그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너무나 지겹고 벗어나고 싶었지만 끝내 벗어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여드름'. 이놈이 나에겐 기분 나쁘게 기억되는 청춘의 화신이었습니다. 빛나야 할 자리 한가운데 떡 하니 박혀 있던 그 여드름들이 내 청춘의 대부분의 표정이자 흔적이었던 셈이죠.
열여섯쯤 되었을까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좁쌀처럼 조그맣게 생기던 여드름들이 고등학교에 가면서 얼굴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외모에 신경을 쓰고 지나가는 여고생들도 수줍게 쳐다볼 그 나이에 나날이 커져만 가는 여드름은 제겐 정말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 놀려대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화도 짜증도 밀려오곤 했었죠.
한번은 너무도 심해지는 여드름에 스트레스를 받아, 당시 아이들 사이에 떠돌던, 깨끗한 소주로 여드름 부위를 세안하면 소독이 되어서 여드름 피부가 진정된다더라, 라이터로 젓가락을 뜨겁게 달궈서 소독한 뒤에, 마치 수술하듯이 달궈진 젓가락으로 여드름을 짜면 완전히 낫는다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당시 얼굴에 자행하기도 했었죠. 당시 기숙사를 같이 쓰던 친구들은 미친 거 아니냐고 적당히 하라고 걱정을 했지만 제 귀엔 들리지 않았고 결국 여드름을 과하게 짜대던 통에 지금도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가득합니다. 뜨거운 젓가락에 생겼던 큰 딱지와 흉터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당시 어리석었던 하지만 동시에 매우 절실했던 제 마음을 보여주는 상처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호르몬 분비가 많아지는 나이대인지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여드름을 달고 살았던 것도 같은데 왜 나는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늘 움츠려 살았나 싶기도 하네요.
광주 집에 가면 고등학교 시절 사진이 몇 개 없습니다. 수학여행 때 종곤이 현종이와 찍었던 사진들도 몇 장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집에서 가족들하고 찍었던 사진들도 몇 장 남아 있을 법도 한데 아마 어느 날 날 잡아서 다 찢어서 버린 모양입니다. 울긋불긋 붉은 여드름으로 가득 찬 얼굴이 사진으로 남는 건 더욱 싫었을 테니까요.
두 살 터울의 누나도 여드름이 많았지만 누나는 여자여서 그런지 어머니가 피부과도 수시로 데리고 다녔고 나름 관리를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나는 몇 년 지나지 않아 깨끗한 피부를 가질 수 있었지만 저는 남자라는 이유로 그냥 그냥 호르몬이 넘쳐나던 청춘의 시기만이 지나가기만 바라고 있었죠.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내 피부는 그렇게 자국 투성이 그리고 여전히 관리하지 않으면 울퉁불퉁 튀어오르는 얼굴이 되고 말았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들의 깨끗하고 맑은 피부가 좋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기에 언젠가는 여드름이 얼굴을 뒤덮을 거라는 걱정이 저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여드름 같은 건 없는 깨끗한 얼굴로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조금만 절충이 된다면 나 같지는 않겠구나 하는 희망도 있었죠.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큰아이가 중학교에 진학을 하고 얼굴에 하나 둘 꽃이 피더니, 어느덧 제 중고등학교 시절 얼굴을 꼭 빼닮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여드름쟁이 학생이었던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큰애는 아빠한테 나쁜 유전자를 받아서 자기 얼굴이 이렇다며 짜증을 내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다른 걸 해줄 수도 없어서 미안하기만 했었습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아이도 밖에 나가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고 온갖 신경이 피부에만 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피부 관련해서 뭐라도 한소리라도 할 때면 매우 민감해져 동생들이나 엄마 아빠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이기 일쑤였고 남일 같지 않아 어떻게든 고쳐주고 싶었습니다.
피부과에 가서 호르몬 주사 치료를 받으면 얼굴이 깨끗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내는 시간 지나고 호르몬 분비가 정상화될 나이가 되면 저절로 없어질 텐데 굳이 그런 데 돈을 써야 하냐고, 그리고 호르몬 주사가 오히려 몸에 좋지 않다며 반대를 했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달랐죠. 저 나이에 가져볼 수 없었던 자신감도 나는 얘가 가졌으면 했고, 여드름을 빼면 정말 예쁜 얼굴인데 여드름 때문에 외모로 스트레스받아 하는 아이가 가슴이 아팠습니다.
'여보, 당신은 경험이 없어서 모르지만 나는 얘 기분을 잘 알거든. 난 고등학교 때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내 얼굴이 싫었었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싫었고 짜도 짜도 더 커지는 내 얼굴이 얼마나 스트레스였는지 몰라. 알아보니 병원에서 안전하게 처방을 잘 받으면 호르몬 부작용 없이 얼굴 깨끗해질 수 있대.'
오랜 대화 끝에 아내도 동의를 했고 결국 아이를 데리고 피부과에 갔습니다. 1년여쯤 치료를 받았을까요, 아이 얼굴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얼굴에 그득했던 여드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하얗고 깨끗한 피부로 돌아왔습니다. 매일 거울을 보며 행복해하는 표정을 짓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나가고, 스스로 본인이 제일 예쁘다며 자화자찬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전의 우울하고 칙칙하던, 그리고 밖으로 안 나가고 집에서만 있으려고 하던 우리만 알던 어두웠던 모습은 지금은 사라지고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적당한 처방에 호르몬 문제 없이 예쁘고 깨끗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죠.
누군가에게 청춘은 꽃처럼 피어나고, 누군가에게는 가슴 뛰는 설렘으로 기억될지 몰라도, 나에게 청춘은 울긋불긋한 여드름으로 뒤덮인 얼굴로 찾아왔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닮은 내 아이도 같은 경험을 했죠. 우리에겐 이런 청춘의 화신이 전혀 달갑지 않았고 괴롭기만 했습니다. 아빠가 경험했기에 이제 충분했습니다. 내 아이는 다른 모습의 아름다운 젊음으로, 알콩달콩 그리고 열정적인 그것으로 훗날 자신의 청춘의 화신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This essay redefines the romanticized notion of youth by sharing a deeply personal and relatable struggle with acne during adolescence. While popular culture often portrays youth through rose-colored lenses - pure first love, passionate dreams, and athletic vigor - the author presents a more honest and vulnerable perspective of his teenage years.
The author's youth was defined not by beautiful moments but by severe acne that began in middle school and worsened throughout high school. In an age before proper skincare knowledge was widespread, he resorted to dangerous home remedies like washing his face with soju and using heated chopsticks to extract pimples, leaving permanent scars that remain today.
The essay poignantly describes how acne affected his self-esteem and social life. He destroyed most photos from his high school years, unable to bear seeing his face covered in red bumps. While his sister received proper dermatological care, he was left to endure his condition alone, simply waiting for hormones to settle with age.
The narrative takes a touching turn when his eldest child develops the same severe acne, inheriting the author's genetic predisposition. Despite his wife's initial reluctance, the author insists on hormone treatment for their daughter, drawing from his own painful experience. He refuses to let his child suffer the same isolation and self-consciousness that defined his youth.
The successful treatment transforms not only his daughter's skin but her entire demeanor - from a withdrawn, self-conscious teenager to a confident young woman who enjoys looking in mirrors and socializing. The essay concludes with the author's heartfelt wish that his children experience a different kind of youth - one filled with sweet romance and passion rather than the physical and emotional struggles that marked his own coming-of-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