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ccording to one's fate
누구나 자기 팔자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사람들이 많이들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태어난 날과 출생 시각으로 사주팔자를 보기도 하죠. 저는 천성적으로 이런 것들을 잘 믿지 않아 사주를 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제가 태어난 시가 헷갈려 어머니께 물어보기도 하죠.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 태어난 시가 "유시"라고 알려주시긴 하셨지만, 재미나게도 어머니의 기억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오래전 어느 해, 한 TV 프로그램에서 전직 대통령과 사주팔자가 똑같은 한 일반인을 찾아 인터뷰 한 것이 기억납니다. 두 사주가 한 글자도 다름이 없는 똑같은 여덟 글자인데 살아온 인생과 성격, 그리고 주변 환경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맹신하는 사주팔자가 반드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풍자하던 인터뷰였죠.
하지만 성격이나 성향이라고 그 의미를 조금 바꿔보면, '팔자대로 산다'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태어난 날과 시는 같아도 주어진 환경과 시대, 그리고 경험하는 교육에 따라 사람의 인격은 제각기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길러진 그 사람만의 성품과 의지대로 세상을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
어린 시절 주변에서 장래희망을 물으면 저는 '사업가', '사장님' 이런 단어로 대답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아마 아버지가 사업을 하셔서 그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큰 불편함 없이 지냈던 그 시절이 어린 저는 편안하고 행복했나 봅니다. 어린 나이에 사업이 무엇인지 알 리는 없었겠지만, 어렴풋이 아빠처럼 좋은 차를 타고 부족한 것 없이 여유 있게 사는 것을 동경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어린시절의 꿈처럼 그럴듯한 사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직장 생활을 하며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가족을 이루고 잊지못할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겪고 지내면서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성격과 가치관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제각각 너무도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한 아이도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죠. 어느 정도 아이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가 상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큰아이는 매사가 정확하고 깔끔한 성격입니다. 심지어 인간관계도 맺고 끊음이 분명한 편이죠. 본인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면 어떻게든 하는 편이지만, 반대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음속에 담아두지 못하고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면도 있습니다. 반면 세상을 바라볼 때 깊게 탐구하거나 다양한 시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스타일이죠. 이런 면은 저를 닮은 것 같기도 해요. 큰아이는 정해진 틀 안에서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할 수 있는 환경이면 행복하게 그 역할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막연하게 군인이나 경찰같은 직업이 아이에게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죠.
둘째는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한가득입니다. 엉뚱한 생각으로 가족들을 웃기기도 하고, 쓸데없는 상상으로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큰아이와는 반대로 제한되고 정해진 틀을 싫어하며 자유롭게 생활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이들을 제치고 싶어 하는 경쟁심보다는 본인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편이죠. 그래서 노력도 많이 합니다. 저는 둘째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엉뚱한 생각들이 결국 다른 이들을 돕고 스스로도 만족하는 방향으로 발전될수 있다면, 이 아이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막내는 좀 다릅니다. 누나들과 달리 아들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천성이 세상 느긋합니다. 이녀석은 절대로 급한 것이 없습니다. 되고자 하거나 이루고자 하는 것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한 녀석이죠.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 하지도 않고, 평범하게 보통으로 사는 게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시각으로는 걱정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사실 세 아이 중에 막내가 가장 걱정이 없습니다. 이 아이는 그냥 행복하거든요. 우리 집에 태어나서 행복하고, 엄마 아빠가 있어 행복하고, 하루하루가 즐겁고 좋다고 말합니다. 녀석은 나중에 무슨 일을 하든 보통의 일상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아이입니다. 저는 막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아이만의 긍정적이고 행복한 기운이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함께 전해지면 좋겠거든요.
그 옛날 아버지는 사업가가 되겠다는 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땐 별말씀 없으셨지만 "사업? 에라 이놈아, 택도 없다"고 하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린 저를 보시면서 어떤 미래를 생각하셨을까요? "이 녀석은 나중에 직장생활은 열심히 잘 하겠네" 하셨을까요? 과연 저는 아버지의 생각처럼 그렇게 예상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요?
항간에는 '제 팔자 제가 꼰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이 말도 역설적으로 '팔자대로 산다'는 말과 똑같이 들립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든, 어떤 역경과 고난이 있든지, 인생은 자신이 가진 성향대로 가치관대로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안계셔서 물어볼순 없지만 아버지가 저를 보고 생각하셨듯이 그렇게 제가 인생을 살아왔을 것이고, 내 아이들 역시 내가 본대로 그렇게 살아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Living according to one's fate" is a traditional Korean saying originally referring to destiny predetermined by cosmic forces at birth, known as "saju-palja" (四柱八字) - the four pillars and eight characters used in Korean fortune-telling. This deeply personal essay reinterprets this ancient concept through a modern father's lens, transforming it from superstition into profound wisdom about human nature.
The author begins by sharing his skepticism toward traditional fortune-telling, recounting a television program featuring ordinary citizens with identical birth charts to former presidents, yet completely different life paths. This sets the stage for redefining "fate" as inherent personality traits rather than predetermined cosmic destiny.
The essay's heart lies in the author's intimate observations of his three children, each possessing distinctly different temperaments despite growing up in the same household. Through tender portraits, he describes his eldest daughter's methodical nature, his second daughter's creative imagination, and his youngest son's contentedly simple approach to happiness. These observations lead to a profound realization: while we cannot predict specific life events, we can glimpse how someone will navigate the world based on their fundamental character.
The essay bridges generational perspectives as the author reflects on how his own father might have observed similar patterns in him during childhood. This adds depth to his philosophical conclusion that regardless of external circumstances, people naturally gravitate toward living according to their core personality traits and values. The universal message celebrates the beautiful diversity of human temperament while acknowledging the continuity of character across gener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