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더도 말고 덜도 말고

neither more nor less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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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그 적당한 상태 그대로를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입니다. 특히 추석 명절 같은 경우에는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놓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풍족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을 즐기고 또 가족 친지들의 무병을 기원할 때도 많이 쓰이곤 합니다. 언뜻 보면 소박해 보이는 정겨운 말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래도 이만큼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뜻으로도 읽혀지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녀석들을 모아 놓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너희가 학교에 가면 딱 중간만 했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간 말이야."

"아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너희 반 친구들이 20명이라고 하면, 시험을 보더라도 딱 10등만 하자는 거지. 뭐 더 잘하면 좋고."


이런 얘기 듣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기어코 이유를 덧붙이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 정도 하는 게 즐겁고 편하더라고. 아빠가 좀 살아보니까 너무 잘해도 피곤하고, 또 너무 못하면 사람들이 또 무시하더라고."


당시 초등학교는 등수를 매기는 시험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아이들은 그냥 그러려니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도 제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이든 싱가포르이든 너희들이 공부하는 반에서 중간만 하라는 것이 일관된 제 생각이었죠.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대부분 상위권이어서 크게 떨어진 적도 없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다름 아닌 부러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제법 했다고는 하지만 명문대를 갈 정도는 되지 못했던 저는, 스스로 스트레스에 사로잡혀 지내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성이 뛰어나 주변에 친구들이 많은 편도 아니어서, 몇몇 친구들을 빼면 마음 맞아 어울리는 친구도 많지 않았죠.


"조금만 더하면 SKY 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왜 못할까" 라며 자책을 일삼다가도, "오늘은 좀 공부 때려치우고 어디 가서 신나게 놀고 싶은데 같이 놀 친구가 없네" 하며 재미없는 일상을 한탄하기도 했죠.


당시 예닐곱 명 정도 되던 친구들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부도 적당히 하면서도, 함께 어울려 다니며 공부도 하고, 운동장에서 농구도 하기도 하며, 어떨 때는 옆 학교 여학생들과 미팅도 하는 등 정말 시끌벅적 재미나게 학창 시절을 보내던 친구들이었죠.


녀석들은 학교에서 주목하는 명문대 반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주변에서 손가락질 받던 날라리 학생들도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다른 아이들도, 그리고 심지어는 선생님들까지 모두가 이 무리들을 좋아했습니다. 녀석들은 참 편했고 즐거웠거든요.


녀석들의 푸르름은 참 멋졌습니다. 책 속에 파묻혀서 딱딱하게만 학창 시절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소위 노는 애들처럼 인생 포기한 듯 사는 것도 아니었죠. 엉성하고 떠들석했지만 그때만 가질 수 있던 녀석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또다시 지난날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경쟁, 성과, 그리고 보상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성공'만을 위해 살아갔습니다. 사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실적과 승진에 눈에 불을 켜고 일을 합니다. 높은 성과를 보여 윗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보너스나 인센티브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기도 하죠. 신입사원 시절, 부장님의 눈에 들기 위해 시키지 않아도 주말에도 출근을 했었고, 특별히 할 일이 없어도 야근으로 자리를 지켰습니다. 회식 때마다 인정받기 위해 있는 술 없는 술 마다 않고 다 받아 마셨고, 말 안 듣는 협력업체에도 총대 메고 쓴소리를 자처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피곤해졌습니다. 점차 맞지 않는 옷이라 느껴졌고 사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죠. 고등학교 시절 SKY 반 아이들처럼, 어느 조직이든 큰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고, 그 사람들처럼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에 슬슬 염증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었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고 싶었습니다. 회사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처럼 마음에도 없는 의무감까지 가지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연애를 전보다 더 열심히 하기도 했고, 다양한 취미를 가지려고 이런저런 모임도 나가보기도 했죠. 멋진 몸을 가지려고 운동도 더 열심히 했고, 결혼하고 나서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주말마다 산으로 바다로 놀러 다녔습니다. 회사 일 말고 다른 일로 가까워지는 동료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상하리만큼 업무 성과도 나아졌죠. 회사 생활도 덩달아 즐거워졌습니다. 최고의 성과는 아니지만 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여전히 저는 중간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어딜 가나 무리가 나뉘는 세상입니다. 학교든 회사든 어느 무리의 구성원들은 자연스레 이탈이 되기도 하며, 그들이 평균 이상이 되는 다른 집단을 찾아 다시 또 집단을 이루어갑니다. 문득 문득 고등학교 시절, 어중간하게 공부에 스트레스 받으며 살지 말고 녀석들과 어울려 그 무리에서 재미있게 학교 생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은 중간만 하라는 아빠의 말을 더 이상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고맙게도 자신들의 그룹에서 이미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더 넓게 펼쳐질 남은 인생에서도, 과한 욕심 부리지 말고 자기들만의 적당한 자리를 찾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래 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말입니다.



Deodo malgo deoldo malgo" is a Korean saying meaning "neither more nor less"—expressing contentment with just the right amount.


Traditionally used during Chuseok (Korean Thanksgiving) to wish for continued abundance, this essay explores a father's unexpected life lesson. After spending his youth stressed about grades and his early career chasing recognition, the author reflects on the carefree friends who found joy in being "middle of the pack."


Now, he tells his children to aim for the middle—not from low expectations, but from hard-won wisdom that true happiness lies in balance, not extre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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