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속담입니다.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중학교 시절 한 친구입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친구를 떠올리면 저는 먼저 웃음이 터집니다. 아주 가까웠던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가 준 그 시절 그 추억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의 이름은 서 상범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에서 광주로 이사 온 전학생 친구였죠. 하얀 얼굴에 멀쑥한 모습은 한눈에 봐도 '참 착하고 순진하구나'라고 바로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말투도 서울 말투여서 전라도 촌놈들에게는 모든게 신기한 친구였죠. 그래서 그런지 쉬는 시간이면 상범이 자리 근처는 언제나 시끌시끌했습니다. 다들 몰려들어 말 걸기 바빴죠.
상범이가 입고 다니는 옷은 비싼 메이커 제품이었고, 점심 도시락 반찬에는 언제나 햄 같은, 우리가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신기한 것들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범이는 언제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더 대단했던 건 무척 똑똑하기까지 했다는 점입니다. 전학 온 지 몇 주 되지 않아 중간고사에서 꽤 좋은 성적을 냈었죠. 담임 선생님도 매우 기특해하셨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던 우리 상범이는, 이제 모든 것이 편안하리라 그리 생각했을 겁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요.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매우 웃픈 일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합니다.
볕 좋은 어느 봄날, 점심시간이 막 끝난 5교시 수업시간이었습니다. 공업 시간이었죠. 선생님은 가장 무섭기로 소문난 학생주임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체벌이 매우 일상적이었을 때라, 선생님들 대부분은 교실에 오실 때 회초리를 들고 다니셨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학생주임 선생님은 특히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심하게 편애하는 걸로도 유명 했습니다. 그러나 더 유명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독특한 체벌 스타일이었죠. 회초리로 체벌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려치시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목 빼라잉~" 이라는 소리와 함께, 거북이마냥 아이들은 목을 쭉 빼고 대기해야 했고, 뒤이어 목덜미로 떨어지는 엄청난 충격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몸집이 좋으셨던 선생님의 그것은, 저도 몇 번 맞아보았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날 식곤증이 몰려왔는지, 겁도 없이 상범이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것입니다. 레이더에 이 모습을 포착한 선생님은 조용히 다가가 목 빼라는 말도 없이 상범이의 새하얀 목덜미를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퍽~ 퍽~ 아 그야, 지금 자빠져 자믄 쓰겄냐 안 쓰겄냐~ 퍽~"
"수업시간에 이라고 있으니까 느그들이 공부를 못하는 것이여퍽"
"이놈 자식아, 지난번 시험 몇 점이나 맞았으까? 퍽~ 퍽~"
대답은커녕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선생님의 목덜미 린치는 계속되었고, 보다 못한 친구가 선생님께 제보를 하고 나서야 상황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선생님~ 상범이 공업 백 점인디요~"
어? 백점? 뭐? 하시며 매우 당황하신 선생님은 진작 말하지 그랬냐며 멋쩍어하시며 서둘러 교실을 나가셨지만, 상범이의 시련은 그날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윤리 과목을 담당하셨던 담임 선생님의 수업시간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담임 선생님은 매 수업 때마다 지난 시간 배웠던 내용을 학생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일종의 수업 루틴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대답을 잘하면 곧바로 수업이 진행되지만, 답을 잘 말하지 못하거나 오답을 말하면 나와서 여지없이 종아리를 맞아야 했죠.
틀릴 때마다 매 댓수도 늘어납니다. 맨 처음 걸린 학생은 2대, 그다음은 4대, 8대 이런 식으로 두 배씩 회초리 댓수를 늘려가는 참 가혹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윤리 수업 시작 전이면 아이들은 노트를 달달 외우면서 혹시나 걸릴 위험에 대비하곤 했죠.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날따라 호출된 아이들이 전부 대답을 잘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주번에서 시작한 호출은 아이들의 오답을 거듭하며 어느덧 반장 부반장까지 왔습니다. 매 댓수는 점점 늘어 갔고, 정처 없이 수업시간도 흘러갔습니다. 선생님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셨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멈추지 않으셨고, 회초리를 때리는 선생님의 이마에도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128대까지 갔습니다. 수업 사상 최초였습니다. 선생님의 피로도 극에 달했고 어느덧 수업시간도 다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선생님도 '내가 왜 이 문제를 골랐을까' 매우 후회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버린 이 사단을 어떻게든 끝내고 싶으셨던지, 선생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우리의 브레인을 호출하셨습니다.
"에휴 더 이상 안 되겠다. 상범아! 니가 한번 대답해 봐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범이를 보며 아이들도 선생님도 이제서야 안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처 그의 불안한 눈빛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상범이는 쭈뼛거리며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선생님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뱉은 말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선생님은 약속대로 128대를 모두 때려야 했고, 살면서 그런 정도의 매를 맞아봤을 리 없는 착한 우리 상범이의 비명 소리는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에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선생님의 이상한 회초리 시스템은 자취를 감췄지만, 마지막을 장식한 상범이의 그 고통스런 순간은 이를 계기로 전교생이 모두 알게 되고 말았죠.
당사자에게는 유쾌하지 않았을 일일 텐데 이렇게 기억해내는 것이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속담을 떠올리자마자 생각난 게 우리 상범이인걸요.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가면서 다시 보진 못했지만 나중에 명문 대학에 갔다고도 전해 들었습니다. 여전히 착하고 똑똑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라며, 다시는 녀석의 인생에 그런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은 생기지 않도록 옛 친구의 무운을 빌어봅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A bolt from the blue) describes unexpected misfortune striking without warning. This essay recounts the tragicomic experiences of Sangbeom, a bright transfer student from Seoul who arrived at a rural Gwangju middle school in the 1980s.
Despite his intelligence and gentle nature, he became the unwitting victim of two shocking corporal punishments in an era when teachers wielded absolute authority.
The first time, he was struck for dozing off in class before his perfect test score was revealed. The second, he failed to answer a question when summoned as the class's last hope, receiving an unprecedented 128 strikes. Through humor and nostalgia, the author reflects on how even the most promising beginnings can lead to unforeseen tri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