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싫어도 먼저 하는 게 낫다는 속담이죠. 해야 할 일이 뻔히 보이는데 하기 싫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계속 미적거리는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저는 초등학교 시절 속담 그대로의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후회가 가득했던 한 아이의 아픈 기억입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지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선생님은 저를 포함해 몇몇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요즘 학교와는 달리 당시는 학급 인원이 60여 명이 넘어가던 콩나물 시루 같은 학교였습니다. 어림잡아 열댓 명 정도 불려 나온 걸로 기억하니, 아마도 지각을 했던 학생들이었거나, 아니면 숙제를 해 오지 않은 학생들이었을 겁니다.
불려나간 아이들은 선생님께 한참을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너희가 잘못했으니, 지금부터 허벅지 다섯 대씩 맞는다'고 하시며 죽기보다 싫었던 통보가 이어졌었죠. 손바닥도 엉덩이도 모두 맞아봤지만 허벅지는 정말 극강의 고통을 주는 부위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애들이 잘못했으면 얼마나 잘못했다고 저렇게까지 때리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슬프게도 그때는 그런 일들이 모두에게 당연하게 생각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침통한 표정의 아이들은 꿰어진 굴비 마냥 줄줄이 복도로 끌려 나갔고, 선생님은 우리를 일렬로 세우셨습니다. 매맞을 걸 생각하니 미쳐 죽을 것만 같았던 저는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뒤에 있던 녀석들을 하나씩 앞으로 올려 보내면서 말이죠.
"○○아, 나는 도저히 못 맞겠다. 너 먼저 가라."
"야 임마, 차라리 먼저 맞는 게 낫다니까? 으이구."
겁에 질려 자꾸 뒤로만 가려는 제게 친구들은 흔쾌히 자리를 바꿔주었고, 어느새 저는 맨 끝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매질이 시작되었습니다. 퍽퍽 내려치는 소리, 그리고 연달아 들려오는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도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먼저 해치워 버린 친구들은 호다닥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이내 복도 창문으로 혀를 낼름거리며 남아 있는 아이들을 놀리고 있었죠.
창문에 달라 붙어 웃고 있는 녀석들도 꼴 보기 싫었지만, 가까워지는 매질 소리는 너무 공포스러웠습니다. 점점 뒷줄로 도망간 게 후회 되기 시작했죠.
뒤로 갈수록 선생님은 왠지 더 세게 때리시는 것 같았고, 아이들도 더 힘들어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머지않아 드디더 제 차례도 왔습니다. 마지막이어서 그러셨을까요. 선생님은 유난히 더 번쩍 매를 올리셨고, 드디어 제 허벅지에도 불 같은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아팠습니다. 정말 참을 수 없이 아팠습니다. 어금니를 깨물며 속으로 숫자를 하나 둘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몸은 자꾸 앞으로 꺾여 갔고, 쪽팔렸지만 자동으로 신음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킥킥거리는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뒤로, 그렇게 힘겹게 다섯 대를 모두 맞았습니다.
'아우 씨! 그냥 제일 먼저 맞을걸!'
맞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이었습니다. 허벅지의 고통도 힘들었지만, 기다리는 내내 심장 쫄리게 하던 그 공포가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았습니다. 킥킥대며 놀리던 친구들의 웃음소리도 너무 싫었고요.
속담이 주는 메시지가 매우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제 어린 시절의 기억입니다.
그런데 타의로 가슴속에 새겨졌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나이가 들어서는 조금 자연스럽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제 스스로가 '조금 일찍 시작하는 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남들과는 달라! 아니 오히려 더 낫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혼자 꽤 만족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만족감은 뭔가 하지 못하는 것을 도전했을 때 정말 큰 도움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몇 번을 실패한 적이 있던 '금연'이 바로 그것입니다.
흡연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해봤을 법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매년 해를 마감할 때 스스로에게 하는 금연 다짐이 바로 그것입니다.
"드디어 새해가 밝아온다. 그러니 1월 1일부터는 나도 이 지긋지긋한 담배는 꼭 끊는다."
하지만 다부졌던 바람과는 달리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담배를 집어 들기가 일쑤였고, '그래 아직 건강하니까, 조금만 더 있다 끊지 뭐' 하며 스스로와 타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런 한심한 작심삼일이 매년 계속 반복되니, 가족들도 이젠 그런 제 다짐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었죠.
그런데 정작 담배를 끊었을 무렵의 제 모습은 과거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항상 새해 핑계를 대며, 연말이니 지금은 오히려 마지막을 즐겨야 한다며 다른 사람 개의치 않고 담배를 뻑뻑 피워댔던 제가, 그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 1~2주 일찍 먼저 금연을 시작한 것이었어요. 어디 몸이 안 좋았는지, 별뜻 없이 조금 먼저 한 것뿐인데 느껴지는 마음가짐이 과거와 매우 달랐습니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늘 핑계만 대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지.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하는 게 맞아."
저만 아는 자기애와 만족감은 저를 무척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그때도 새해가 밝았습니다. 금단 증상에 힘들어했던 과거와는 달리 몇 주 일찍 금연을 시작해서 그런지, 몸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 꽤나 상쾌하게 한 해를 시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지긋지긋했던 담배도 마침내 끊을 수가 있었죠.
엉겁결에 신청해 버렸던 마라톤 연습을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나야 했을 때에도, 처음 계획보다 오히려 몇 일 일찍 시작해 보니, 이 역시 마음가짐이 다르다는 게 느껴지기도 했고, 결국 훈련의 효과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대회 당일에도 그렇게 바래왔던 완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어느 누가 그 아픈 매를 먼저 맞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어차피 맞을 거라면, 어짜피 해야만 하는 거라면, 자리 털고 일어나 먼저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떨 때는 크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It's Better to Get Hit First"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is a Korean proverb meaning it's wiser to face inevitable hardship sooner rather than delay.
The author recounts a painful elementary school memory of postponing corporal punishment—only to suffer more from anticipatory dread than the punishment itself. Later in life, this childhood lesson transforms into a personal strength: by starting his smoking cessation a week early before New Year's, he discovers that acting ahead of deadlines brings unexpected satisfaction and success.
The essay bridges the literal pain of a child's experience with the metaphorical application in adult challenges, showing how even harsh lessons can become sources of wisdom and self-empower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