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가 밝아올 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비장한 각오로 결심을 하곤 합니다.
"올해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해야지."
"이번에는 반드시 술을 끊어서 내 의지를 증명할 거야."
하지만 힘차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굳은 마음을 먹지만,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속담은 사람들이 뭔가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비로소 실천을 옮기기 시작할 때 회자됩니다. 말 그대로 첫 발걸음을 떼어야 멀어 보이는 천리길도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라톤.
사실 저와 별 관련이 없는 운동이었습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나 늘씬하고 키 큰 사람들이나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못한 몸의 저는 별로 관심도 없었습니다.
싱가포르는 워낙 러닝하는 인구가 많은 곳입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러닝 열풍이 불어서 주변에 뛰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저는 주로 헬스장에서 조금 뛸 뿐 마라톤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몇달 전 갑작스런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가 제게 다시 찾아왔었죠. 저는 이 새로운 시작을 무언가 의미 있는 기억으로 기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SNS의 한 마라톤 대회 광고를 보게 됩니다.
"2025 스탠다드 차터드 싱가포르 마라톤"
아직 늦지 않았다며 마감되기 전에 빨리 등록하라는 광고를 보고, 뭔가에 홀린 듯 등록을 하고 맙니다. 그것도 42.195킬로미터를 뛰어야 하는 풀코스 마라톤을 말입니다.
등록비도 적지 않았고, 처음 하는 건데 하프 정도만 신청하지 그랬냐며 아내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종종 시도하고 즐기던 저는 풀코스 마라톤이 이번 변화를 기념하는 데 적격이라 생각했습니다. 천천히 뛰면 된다고 아내를 안심시키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제가 기특하기까지 했습니다.
평소에 헬스장 러닝머신에서 10km 정도는 종종 뛰었고, 한두 번이지만 20km까지도 뛰어본 적이 있어서 내심 믿는 구석도 있었죠.
그런데 제가 신청을 한 시기가 10월 말이었으니 대회가 겨우 두 달도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사실 마라톤은 러닝머신 연습보다는 실제로 밖에서 연습을 해야 하는데, 날씨도 후덥지근하고 몸도 무겁고 도저히 나서지질 않는 겁니다.
'그래도 20km까지는 뛴 몸인데,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절반까지만 뛰면 그다음부터는 으쌰으쌰 사람들 분위기 타면 완주는 하겠지.' 안일한 생각들만 하면서 계속해서 실제 러닝 연습을 미루기만 하고 있었죠.
며칠을 삐둥삐둥대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하루는 아들 녀석을 끌고 드디어 실제 트랙 연습을 하러 나섰습니다. 첫 실전 훈련이니 무리하지 않고 10km만 뛰고 오자는 계획이었죠.
그러나 실제 러닝은 제 생각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10분도 되지 않아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고 몸은 급격히 무거워졌습니다. 어떻게든 더 뛰어보려고 했지만, 결국 7킬로미터를 못 채우고 멈춰야 했습니다.
아내는 쉬고 있는 제게 얼굴빛이 너무 안 좋다며 걱정해 주었지만, 속으로는 창피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무엇을 놓쳤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밤에도 27~28도를 오르내리는 이곳의 기온과 그리고 당연하게도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늘 에어컨이 있는 러닝머신에서만 뛰었으니까요. 페이스 역시 그때 처럼 하려다 보니 당연하게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체력이 바닥나 버렸던 것입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계획을 세웠습니다. 최대한 대회 당일과 비슷하게, 밤이나 새벽에 연습을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페이스 역시 20~30% 느리게 유지해서 최대한 숨이 가빠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연습한 끝에 드디어 10km를 뛸 수가 있었고, 연달아 15km까지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20km를 목표로 연습하던 중 예상치 못하게 16km 지점에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몸의 느낌이 정확히 생각납니다. "이게 진짜 나의 한계인 것 같다."
종아리 통증이 너무 심해 걸음 조차 옮길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 무리하면 안 된다며 아내도 걱정하며 그만하라고 말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원인을 찾기 위해 과정을 하나하나 다시 돌아보았고, 비로소 제가 간과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염분과 영양 공급이었습니다. 종아리에 느껴지던 통증도 몸에 염분이 빠져나가면서 오는 증상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부랴부랴 에너지 젤과 솔트 스틱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영양을 공급해 주고 늦지 않게 염분도 섭취했습니다. 16킬로미터에서 멈췄던 거리는 어느새 28킬로미터까지 늘었습니다.
"오호, 이거 할 수 있겠는데?"
물론 그때도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났고 한두 걸음 옮기기조차 힘이 들었지만, 무언가 손에 잡힐 듯한 느낌은 저를 한껏 흥분시켰죠.
그러나 생각보다 몸의 회복은 더뎠습니다. 결국 더 긴 거리 연습은 하지 못했고, 그 상태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가졌던 불안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흥분과 자신감만이 가슴에서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결국 저의 첫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2025년 12월 7일 싱가포르에서 말입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천리길이 있습니다. 처음 내딛는 한 걸음은 괴롭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걸음이 다음 걸음의 방향을 알려주고,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어느새 그 끝에 다다르게 됩니다.
중요한 건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첫 발을 내딛는 용기입니다. 저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다시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Even a journey of a thousand li begins with a single step" is a Korean proverb that encourages people to start pursuing their grand ambitions, no matter how daunting they may seem. This essay chronicles the author's journey from a sedentary office worker to a full marathon finisher in Singapore.
After losing his job to restructuring but finding new opportunity, he impulsively registered for a 42.195km marathon with only two months to prepare. Through humbling setbacks—collapsing at 7km on his first outdoor run, hitting a wall at 16km—he learned hard lessons about heat adaptation, pacing, and nutrition.
Each failure became a stepping stone. By race day, he had never run beyond 28km in practice, yet crossed the finish line on December 7, 2025, proving that persistent small steps can carry anyone to their seemingly impossible desti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