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매우 민망한 상황이 그려집니다. 해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미리 넘겨짚어 무엇을 바라거나 ,원하는 것을 다 얻은 것처럼 경솔히 행동할 때 '이 녀석 김칫국 먼저 마시고 있네'라며 비꼬거나 핀잔을 줄 때 많이 사용되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고구마나 감자 같은 퍽퍽한 음식을 먹고 나면 으레 동치미나 김칫국물을 마셨는데, 아마 거기서 유래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다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더우기 어리고 순진할수록 더욱 그런 일이 많을 법도 합니다.
"OO아! 너 이번에 시험 합격하면 아빠가 핸드폰 바꿔줄게. 열심히 한번 해봐."
아들 녀석이 쓰는 핸드폰은 좀 오래된 모델입니다. 다른 가족들이 쓰는 모델보다도 훨씬 이전 세대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죠. 녀석은 평소 성격이 매우 무딘 편이어서 누나들과는 달리 이런 것들에 욕심이 별로 없습니다. 누구 한 명에게 뭘 사주거나 용돈을 주면 자기도 해달라며 난리가 나는 누나들과는 달리, 아들 녀석은 뭘 해주겠다고 해도 딱히 지금은 필요 없다며 나중에 사달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핸드폰도 마찬가지였죠. 작은 화면에 버벅거리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바꿔줄까 말해도 괜찮다며 그냥 쓰겠다던 녀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귀가 쫑긋하는 게 느껴집니다.
"응? 핸드폰? 아빠가 바꿔주면 나는 땡큐지~"
오호, 녀석이 불편하긴 했나 봅니다. 평소와 달리 관심을 보이니 말이에요. 사실 이번 시험은 공립학교 전학을 위한 마지막 도전이었습니다. 물론 열심히 하는 것도 이미 알지만 뭐라도 보상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시험에 상관없이 이미 아내와는 바꿔주기로 얘기를 끝내기도 했었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함께 빈둥거리다 문득 녀석이 말을 꺼냅니다.
"아빠, 근데 어떤 모델로 할까?"
"최신 모델은 너무 비싸던데 아빠 그거 사줄 수 있어?"
"색상은 뭘로 하지? 나는 블랙이 좋을 것 같은데 아빠 생각엔 어때?"
평소에는 시큰둥하기만 하던 녀석이 며칠을 고민한 모양이었습니다. 한껏 들떠 있는 모습이 속으로는 귀엽고, 웃기기까지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핀잔을 줍니다.
"임마, 내가 그냥 사준다고 했냐? '합격하면' 이라는 조건이 있잖아."
"허허, 떡 줄 놈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고 있네 이놈 참!"
예상치 못한 아빠의 핀잔에 조금 머쓱해진 녀석은 그냥 한번 말해본 것뿐이라고,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아빠도 알지 않냐고 되려 큰소리를 칩니다. 그리고 아마 합격할 것 같다며 언제나처럼 너스레를 떱니다.
그러던 녀석은 얼마 후 드디어 원하던 최신 핸드폰을 손에 넣을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아이는 시험에 합격했을까요?
시간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아내를 처음 만나 연애하던 시절입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아내가 저는 첫눈에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쁘고 착해 보이는 외모도 좋았지만, 다소곳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사실 '이 여자다' 싶었습니다. 서로 호감이 생겨 머지않아 사귀기 시작했죠. 하지만 연애 초반 이어서였을까요, 아내는 저와는 달리 결혼 같은 더 발전된 관계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런 아내의 마음을 어떻게든 얻어보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습니다. 평소에는 가보지도 못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식사를 대접 하기도 하고, 기념일이라도 될 때면 나름 신경을 써 꽤 고가의 선물도 하기도 했었죠. 휴가 때면 함께 이곳 저곳을 다니며 좋은 것 보고 비싼 것 먹이며, 아내의 환심을 사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한동안 열심히 물량 공세를 펼쳤지만 결국 제풀에 지쳐 하나씩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신입 사원의 월급으로는 자꾸 불어나는 카드 대금을 메꾸기도 너무 힘들었고, 심지어는 매달 부어야 하는 적금까지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 한 자락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카드빚에 허덕이던 20대, 결국 살인자 신세"
기사를 보자마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습니다. 그 범죄자의 카드 빚이나 그달 제가 갚아야 하는 카드값이나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어라, 이러다 나도 언젠가 한방에 나락가는거 아니야?'
아무리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여도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저는 모든 걸 털어놓고 여차하면 정리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심각한 얼굴로 아내를 만났죠.
"미안하지만 오빠가 할 말이 있어."
"사실 나는 너랑 결혼까지 생각을 하고 있거든. 그래서 네 마음에 들려고 많이 무리를 한 것도 사실이야. 요 몇 달 내가 너무 힘들었어. 이번 달 카드값도 자그마치 OOO만원이야. 지난 달엔 적금도 못 부었어"
"그래서 말인데, 나는 널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렇게는 더이상 어려울 것 같아. 혹시 이런 날 이해를 못한다면, 이쯤에서 정리하는 것이 서로에게 맞는 것 같아."
제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우리가 잘 맞지 않다고 느꼈었어. 그래서 조만간 그만 만나자고 하려고도 했고. 나는 오빠처럼 돈을 물 쓰듯 낭비하는사람을 정말 싫어해요. 분수에 맞지도 않게 비싼 것만 고집하는 것도 사실 너무 불편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얘기해 주니 오빠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이제 진짜 알게 된 것 같아. 비싼 거 안 먹어도 되고, 좋은 데 안 가도 되니까, 먼저 빚부터 갚아요. 적금도 얼른 다시 시작하구요."
솔직한 고백으로 저는 결국 평생의 파트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금껏 아웅다웅 지내고 있죠.
문득, 그때 아내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떠올려봅니다.
"요놈 봐라? 난 너랑 끝내려고 하는데 뭐? 결혼? 김칫국 그만 마시고 이만 정신 차리세요 오빠!"
"Drinking kimchi juice before getting rice cakes" is a Korean proverb warning against premature expectations. The essay unfolds through two contrasting episodes: a son excitedly planning which smartphone to buy before passing his exam, and the author's younger self spending beyond his means to impress his girlfriend, assuming marriage before she reciprocated his feelings.
Ironically, his honest confession about debt—rather than continued extravagance—won her heart. She had been ready to break up over his spending habits, proving that sometimes the "kimchi juice" we drink prematurely teaches us life's most valuable lessons about authenticity over presump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