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가 넘치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흔히 '돌도 씹어먹을 때'라고 합니다. 온종일 밖을 싸돌아 다니며 무리지어 밤늦도록 어울려 다니기도 하고, 금방 밥을 먹고 났는데도 돌아서면 그새 배고파하던 우리네 젊은 시절을 말하기도 합니다.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나 하고 돌아 보면 아련한 기억 속 오래전 친구들과 함께했던 한 여행이 떠오릅니다.
'추억여행'
곧 입대를 앞두고 있던 제게 어느 날 동아리 친구 녀석이 솔깃한 말을 꺼냅니다. 다름 아닌 군대 가기 전 남자들만의 추억여행을 가자는 거였죠. 스스로 입대를 신청하긴 했지만 막상 입대일이 점점 다가오니 마음 한구석이 붕 떠서 아무 의욕이 없던 제게, 녀석이 위로랍시고 말을 꺼낸 거였죠.
"여행? 음, 그럴까? 요즘 딱히 할 것도 없었는데. 근데 누구랑 가냐?"
"OO이는 말하면 바로 간다고 할걸? 내가 연락해볼게."
조금 후 셋은 동아리 방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여행지를 강릉으로 정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강릉은 사람들이 겨울 바다를 보러 가는 꽤 유명한 곳이었거든요. 그리고 서로 가능한 날짜를 맞춰보기 시작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잘 안 맞는 것이었습니다. 두 녀석이 시간이 되면 다른 한 녀석이 시간이 안 되고, 또 다른 둘이 시간이 되면 나머지 하나가 시간이 안 돼서 날짜 맞추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것 참, 왜 이렇게 다들 시간이 안 맞냐. 그럴 거면 그냥 지금 가자."
한 녀석이 푸념을 늘어 놓는 말이 었는데, 어라, 희한하게 모두 오늘 시간이 괜찮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그래 이렇게 된거 지금 가자며 우선 가진 돈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녀석들의 마음만 앞섰는지, 다 모아 봐도 얼마 되지 않았었죠. 아마 10만 원이 좀 넘었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가자, 이거면 돼. 뭐, 여차하면 라면 끓여먹고 오면 되지"
가진 건 쥐뿔도 없는 녀석들이었지만 우리들은 낄낄대며 청량리역으로 향했고, 그렇게 세 남자들의 추억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우선 근처 당구장에서 신나게 당구를 쳤습니다. 돈이 없이 밥도 못사먹고 어묵이며 떡볶이를 길에 서서 먹으면서도 뭐가 그리 행복한지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었죠.
드디더 우리는 강릉행 기차에 올랐고 천천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기차는 달렸습니다. 중간 중간 이름 모를 역에 정차할 때면 함께 내려 바람도 쐬고 군것질도 하고 또 수다도 떨며 우리는 그렇게 강릉에 도착했습니다.
늦은 밤 도착한 강릉의 겨울 바람은 너무 추웠습니다. 우리들은 서둘러 민박집을 찾았죠. 하지만 우리 예상보다 비쌌던 방값을 내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라고는 만 몇천 원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셋이 소주 한잔은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고, 이 돈으로 세명이 어떻게 내일까지 버틸지 갑자기 암담해져 왔죠. 그나마 돌아갈 기차표를 미리 끊어 놓은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풀이 죽어 이불을 둘러 쓰고 있는데 약속이나 한 듯 녀석들의 배가 연신 꼬르륵 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황이 너무 웃겨 녀석들은 또 마주 보며 낄낄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웃다 떠들다 결국 한 녀석이 총대를 메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얘들아, 우리 밥 사먹자 그냥. 인생 뭐 있냐. 배고파 죽겠는데. 내일 좀 참았다가 집에 가서 먹으면 되잖아"
의견 일치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먹자 먹자.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단다." 우리 들은 또 시시덕대며 주인집 식당으로 향했고, 그렇게 남은 돈을 다 털어 동태찌개 2인분을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밥도 한그릇 서비스를 얻어낸 녀석들은 바닥까지 박박 긁어가며 강릉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를 그렇게 훌륭하게 마쳤습니다. 그때 그 동태찌개 국물맛은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뜨끈한 국물이 배로 들어가니 강릉의 추위 따위야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녀석들은 바다 보러 가자며 빨빨거리며 겨울 밤바다를 보러 나갔고, 그렇게 또 뛰고 걸으며 또 히히덕거리며 밤늦도록 바닷가를 누비었습니다.
주머니에는 땡전 한 푼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리고 낭만 있게 소주 한잔도 하지 못했지만, 그날 밤 우리 셋은 밤새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며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었고 그렇게 강릉밤은 흘러갔습니다.
"근데 내일 우리 뭐 먹냐."
"몰라! 어떻게 되겠지! 설마 죽기야 하겠냐?"
"그래, 그냥 자자. 내일 일은 내일 보지 뭐!"
걱정과는 다르게 다음 날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약간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어디서 힘이 났는지 우리들의 에너지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떠들며 노느라 정신이 없었고, 옆자리 아주머니가 나눠 주셨던 사과도 맛있게 나눠 먹으며 그렇게 큰 사고 없이 서울로 돌아올수 있었죠.
세 녀석이 1박 2일로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는 소문이 어느새 동아리 내에 퍼졌습니다.
"이야, 나도 데려가지. 겨울 바다 보면서 회에 소주 한잔 했으면 분위기 죽였겠는데?"
"소주 같은 소리 한다. 돈 다 떨어져서 동태찌개만 먹고 쫄쫄 굶고 왔다 임마."
지금은 엄두도 안 나는 여행입니다. 게다가 이제는 계획형 인간인 저에게는 상상도 못 하는 여행이죠. 그런데 그 무모했던 여행이 그땐 왜 그렇게 좋았을까요. 또 그런 에너지와 객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철없던 친구들 덕분에 저는 군대 가기 전 추억을 확실하게 만들 수 있었고, 제대 이후에도 녀석들과 만나 술자리를 할 때면 그때 그 추억여행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안줏거리가 되곤 했었죠.
그러고 보니 만난 지 한참 된 녀석들, 한 녀석은 오래전 미국으로 건너가 터를 잡고 있고, 또 다른 녀석도 오래전 소식이 끊겼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함께 여행 가보고 싶네요.
친구들아, 그래도 이번엔 계획을 잘 세워서 다녀오자. 이제 우리가 그때 나이가 아니다, 하하하.
The Korean saying "돌도 씹어먹을 나이" — literally "an age when you could chew even rocks" — captures the boundless energy and fearlessness of youth. In Korean culture, it evokes a time when young people act on impulse, fueled more by spirit than sense.
This essay recalls just such a moment: three young men, days before one of them enlists in the military, scraping together whatever cash they have and boarding a train to the winter sea with no real plan and barely enough money for a meal. What unfolds is a night of laughter, hunger, and warmth that no amount of careful planning could have produc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