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일해서 돈 버는 일엔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그냥 아빠 엄마한테 용돈 받으면서 평생 사는 게 좋을 것 같애."
얼마 전 알바 마치고 집에 온 큰애가 하는 말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내와 한참을 웃었습니다.
작년에 대학에 들어간 큰 아이는 몇 달 전부터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정확하게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말은 안 해줘도 그때그때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아마 식당에서 서빙을 하거나 주문을 받는 그런 알바였던 모양입니다. 받는 용돈이 있지만 그 나이의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며 살기에는 여전히 부족할 테니 소소하게라도 용돈벌이는 해야 했을 것입니다.
주문 실수를 두 번이나 해서 사장님에게 혼났네, 정리하다 불에 데였네 하며 매번 투덜투덜 대도 늦이 않게 가서 일하고 오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반대로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언니와는 달리 둘째는 중학교 때부터 이런저런 알바를 해 왔습니다. 프라이드 치킨 체인에서 꽤 오랫동안 카운터 일을 보기도 했고, 간간이 친구들과 하루 이틀씩 서빙 알바를 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번 돈으로 한국 가는 비행기표도 사고, 한국에 계신 할머니들께 멋진 식사도 쏘기도 했죠.
어느 날 오차드 시내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 서빙 알바를 하던 아이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빠, 지금 나 설거지 중인데 여기 양복 입으신 어른들이랑 같이 와인잔 닦고 있어!"
"하하, 세상살이가 다 그렇단다. 남의 돈 벌기가 그렇게 쉽겠냐?"
그래도 하루 만에 거의 한 달 용돈을 벌었다며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아이가 사랑스럽고, 또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알바와는 큰 인연이 없었습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이런저런 일을 구해 용돈도 벌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그랬지만, 저는 딱히 관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군복무 전후로 시간이 좀 남을 때 했던 두 개의 아르바이트가 제가 경험한 아르바이트의 전부입니다.
군대 가기 전 처음으로 했던 일은 바로 비디오테이프 배달이었습니다. 무려 시급 900원짜리 아르바이트였죠. 지금 아이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집집마다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고 보고 싶은 영화 테이프를 대여점에서 빌려와서 보곤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넷플릭스도 처음 시작은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이었습니다.
제가 주로 했던 일은 전화로 테이프 주문이 오면 자전거를 타고 배달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반납 전화가 와도 또 열심히 달려가 가져오기도 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 매장만의 독특한 서비스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1,2월이었으니 자전거 타고 배달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매장에 저 말고도 또래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둘이 쿵짝이 맞아 자주 히히덕거리며 어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보통 이른 저녁을 먹고 매장에 도착하면 6시 정도였습니다. 그때부터 밤 12시까지가 근무 시간이었죠.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다른 직원들과 밀대를 들고 바닥 청소를 끝내야 비로소 일이 끝났습니다. 그리고는 항상 사장님이 차로 집에 데려다 주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6시간씩 한 달을 꼬박 일해서 번 돈이 15만 원이 채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흰 봉투에 넣어서 주시는 첫 월급은 참 기분 좋더군요. 그런데 솔직히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군대 갈 때 따라와 준 친구들, 선배들과 술 마시는 데 썼지 싶습니다.
군 제대 후 아르바이트는 주유소 주유원이었습니다. 총잡이라고 불리는 일이었죠. 기름 넣으러 들어오는 차량들에 큰 소리로 어서오세요를 외치고, 환한 웃음으로 기름을 넣어 주며 사은품도 챙겨 주는 그런 일이었죠.
사실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군대 가기전 알바와는 마음가짐이 크게 달랐습니다. 군 복무 중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집에 수입이 없었습니다. 그저 있는 돈을 까먹고 있는 상황이었죠. 군대 가기 전에는 철없이 술값을 벌려고 알바를 했었다면, 이 때는 집에 손 벌리지 말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집 앞 주유소에서 사람을 구한다기에 간단한 면접을 보고 어렵지 않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손님 맞고, 기름 넣어 주고, 계산 도와주면 끝나는 일이었죠. 그래도 낮 시간대에 차들이 하염없이 밀려 들어오는 때는 땀이 비오듯 흘러 등이 축축해질 정도로 정신 없이 바쁘기도 했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정말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들어오면서부터 반말에 심부름 시키는 몰상식한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았고, 반대로 항상 매너 있게 존댓말을 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값비싼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또래들도 보았고, 엄마 아빠 오빠 동생 네 식구가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와 기름을 넣는 모습도 봤습니다. 저는 마음에 드는 손님들에게는 제 마음대로 화장지도 물도 두세 개씩 팍팍 드리기도 했었답니다.
스스로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사장님이 정식 직원으로 일하지 않겠냐고 제의를 하셔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직원들보다 믿음이 간다나 어쩐다나. 정중히 사양했지만, 나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었죠.
그때 그시절 시급 900원짜리, 1,700원짜리 일들도, 우리 아이들이 서빙을 하고 설거지하며 또 치킨을 튀기며 번 돈들도, 지나고 보면 모두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셨죠.
"땅을 파봐라, 천 원 한 장 나오나. 남의 돈 버는 거? 그거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Is Earning Someone Else's Money Easy?" is a Korean saying that captures the universal truth that honest labor is never simple. In Korean culture, this phrase is often spoken by elders to remind the young that every wage earned carries the weight of effort, humility, and endurance.
In this essay, the author reflects on the part-time jobs of his two daughters in Singapore—one complaining that she has no talent for work, the other cheerfully washing wine glasses beside suited adults at a hotel wedding. Their small struggles unlock memories of his own first jobs: delivering video tapes by bicycle in freezing January for 900 won an hour, and pumping gas at a neighborhood station after losing his father. Across generations, the lesson remains the same—just as his mother always said, no one ever dug a thousand-won bill out of the g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