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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Mar 31. 2020

[월간 주방장 2020] 3월호

한국와인은 처음이라, 주방장양조장 한국와인 시음회 이야기

한국술의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볼 수 있을까요?

탁주, 약주, 증류주만이 한국술일까요? 한국술이라 하면 전통주만 해당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한국에서 만드는 맥주와 와인은 한국술이라고 부를 수 없을까요? 한국에서 생산되는 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셨던 분이라면 이 어려운 질문에 맞닥뜨립니다. 애매함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주방장은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나서 자란 원료를 이용해서 정성스럽게 빚은 결실이라면 우리 한국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술에 국가 타이틀을 붙이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논의를 하기 전에, 다양한 주류 문화를 즐기고 생산해낼 수 있는 점을 중요하게 여기고 싶습니다. 구분 짓기보다는 포용적인 태도로 한국 안에서 만들어지는 술을 환영하고 색다른 시도를 응원하며 부흥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와인’은 주방장이 꼭 소개하고 싶었던 분야의 또 다른 ‘한국술’입니다.


와인은 익숙하지만, 한국와인이라 하면 낯설게 느껴집니다. 멋있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친구처럼 느껴진달까요. 한국산 맥주는 마이크로 브루어리나 대형 수제 맥주 펍들이 생기면서 친숙해졌지만, 아직 한국산 와인에게는 묘한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정말 한국에서 와인을 만들 수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하고, 와이너리라 하면 큰 오크통들이 저장고에 수없이 쌓여있고,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한국에서 그런 생산 환경이 불가능할 것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을 뿐이지 한국 와인 시장은 조용하고 강하게 성장중입니다. 특히 한국산 과일을 이용한 독특한 시도들이 돋보이는데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 자랄 수 있는 여러 과일들을 술로 재탄생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죠. 포도뿐만 아니라 참다래, 복숭아, 딸기, 사과를 와인으로 만들어냅니다. 물론 전 세계를 주름잡는 와인 시장에서 아직 초기 기반을 닦고 있는 단계지만, 한국 와인의 성장세나 기발한 시도, 그리고 한국에서만 재현할 수 있는 맛과 향을 쌓아가고 있기에 한국술 시장의 큰 손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와인은 한편으로 참 부러운 주종이에요. 수백 년을 거쳐 쌓여온 명성과 와인 애호가들의 일편단심 때문입니다. 더불어 대중성과 고급시장까지 폭넓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와인 자체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로 인해 특별한 ‘분위기’까지 만들어내죠. 투명한 와인 글라스에 멋들어지게 따르고 청아한 짠 소리와 함께 건배하고 마신다면, 특별하려고 하지 않아도 시간과 공기가 남달라 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특별한 자리를 기획하던 중,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과 달콤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술을 찾다 보니 한국와인만큼 딱 어울리는 술이 없었습니다. 와인이 지닌 특수한 분위기와 의미가 사랑을 속삭이는 발렌타인데이를 사랑스럽게 만들 수도 있고요. 그리하여 2020년 3월 <월간 주방장>에서는 지난 발렌타인데이에 열렸던 달콤한 <한국와인 시음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만찬주나 약주 시음회와는 조금 다르게 와인과 곁들이기 좋은 핑거푸드들을 준비했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사람들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낯설지만 달콤했던 <한국와인은 처음이라,> 와인 시음회 현장을 소개합니다.


이번 시음회의 한국와인 선정 기준은 ‘다양성’입니다. 꼭 포도로만 만든 와인이 아니라 키위, 복숭아, 사과, 샹그리아까지. 한국에 이런 와인도 있다는 사실을 함께 공유하며 마시고 싶었어요. 알게 되면 찾게 되고, 자주 찾게 되면 한국와인 시장의 주요한 소비자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죠.




1. 샤또미소랑 Chateau Miso

샤또미소랑 : 화이트스위트 / 12% / 750ml / 충북 영동 도란원 / 청포랑&청수

샤또미소랑은 충북 영동의 특산물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한국 와인시장의 큰 손 ‘도란원’의 화이트 와인입니다. 도란원의 유명한 샤또미소 레드와인 시리즈가 아닌 화이트 와인 ‘샤또 미소 랑’을 선택한 이유는 밸런스에 있습니다. 보통 대다수가 달달한 한국 화이트 와인 시장에서 산미와 쌉싸름함을 잡고 은은한 단맛까지 구현했기에 밸런스가 안정적으로 잡힌 화이트 와인입니다. 옥천 포도연구소와 농촌 진흥청에서 개발한 포도 품종 '청포랑과 청수'를 이용했기에 상큼한 싱그러움이 돋보입니다. 특히 청수 품종의 특징인 산미가 톡 치고 올라와 질리지 않고 다음 잔을 또 부를 수 있고요. 하얀 라벨에 은방울 꽃이 처연하게 피어있는 샤또 미소랑은 잘 익은 포도의 성숙함이 깔끔하게 피어오르는 와인입니다. 모스카토보단 덜 달아 리슬링과 비슷한 느낌을 내는 샤또미소랑은 식전주로 시작을 열기에 좋습니다. 어느 음식과 페어링해도 튀지 않기에 잔잔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다가도, 마실수록 차분한 매력을 뽐내서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2. 7004S

7004S : 참다래와인 / 18% / 750ml / 경남 사천 오름주가 / 참다래

다래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토종 열매이고, 참다래는 국내산 키위를 뜻한다는 사실! 아셨나요? 키위는 보통 ‘참다래’ 혹은 ‘양다래’라고 불리는데, 이에 비해 토종 다래보다는 알이 크고 껍질이 단단한 편입니다. 키위 산지로 뉴질랜드를 많이 떠올리는데, 우리나라 경남 사천 역시 기후가 키위 재배에 적합해 참다래 농가가 많다고 합니다. 과일이 많이 나는 지역엔 와이너리가 자연스럽게 발전하곤 하는데 그런이유로 사천의 오름주가에서는 키위를 와인으로 만들어냈습니다. 키위와인이라 하면 키위향이 확 강할 것 같지만, 향을 처음 맡고 한 모금 넘기면 ‘어? 이게 다래로 만든 와인이라고?’ 의문이 듭니다.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참다래 풍미에 가벼운 새콤함과 떫떠름함이 뒤이어 느껴져 예상할 수 있는 맛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오히려 예상을 빗겨나간 와인이기에 더 매력적인 이 술은 일반 화이트 와인보다 조금 더 노란 빛깔을 띠고 깔끔하게 끝납니다. 맛과 향이 개성이 강한 편이라 단독으로 즐기거나 마일드한 치즈와 함께하길 추천합니다.




3. 고도리 복숭아 GODORI Peach Wine

고도리 복숭아와인 : 복숭아와인 / 6.5% / 750ml / 경북 영천 고도리와이너리 / 천도복숭아+털복숭아

복숭아 와인이라는 첫인상부터 강렬한데, 와인 이름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듭니다. 고도리라니! 화투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지만, 고도리는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에 있는 마을 이름입니다. 고촌천이라는 강이 흐르고 천변 주위에 과수원이 많아 복숭아나 포도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고 해요. 와인 이름의 비화를 듣고 나니 마을 이름을 딴 복숭아 와인인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친근해집니다. 고도리 복숭아 와인은 두 번 놀라는 와인입니다. 인공적인 복숭아 향이 아니라 정말 하얗고 통통한 백도 향이 처음 마음을 빼앗고, 새콤달콤한 천도복숭아를 그대로 으깨서 마시는 것 같은 농밀한 당도에 또 놀라죠. 사실 시중 와인 중에 가장 ‘단’ 와인일 수도 있습니다. 천도복숭아와 털복숭아로 만들었지만, 단 맛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당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디저트 와인으로는 완벽하지만 사실 음식과 함께 즐기기엔 강한 복숭아 풍미가 강력해 지배적이어서 단독으로 즐기길 권합니다. 750ml 한 병을 오픈했을 때, 여러 번 나누어서 마시기 좋으며 단 맛이 부담스럽다면 약간의 탄산수와 혼합해 스파클링 복숭아 와인처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마시는 방법에 정답이 없듯이 좋은 와인은 즐기고 싶은 방식대로 음미하면 그게 정답입니다.




4. 애플시드르/샹그리아 APPLE CIDER/SANGRIA

출처 : 애플리즈 샹그리아
애피소드 애플 : 사과와인 / 3.5% / 330ml / 경북 의성 애플리즈 / 애플사이더
애피소드 샹그리아 : 포도와인 / 3.5% / 330 ml / 경북 의성 애플리즈 / 샹그리아

애피소드 양조장의 가벼운 두 술을 준비했습니다. 얼핏 보기엔 작은 보틀의 맥주 같지만 이래 봬도 애플 사이더와 샹그리아입니다. 사과를 발효해 만든 시큼시큼한 애플시더보다는 단 맛과 탄산을 더 강조한 술입니다. 써머스비와 같은 결의 탄산주로, 편하게 갈증을 풀 수 있는 가벼운 술이에요. 샹그리아 역시 무거운 느낌이 아닌 적당히 탄산도 있고 적당히 달콤 새콤한 음료수 같이 느껴집니다. 애플리즈 양조장은 특이하게 오크통이 아닌 옹기 항아리에서 과실을 발효한다고 합니다. 좀 더 개성이 있게 맛과 향이 진했더라면 훨씬 더 매력적인 술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5. 샤또 소백 (소백산향기와인) Chateau SOBAEK

샤또 소백 : 레드와인 / 12% / 750ml / 경북 영주 산내들와인 / 켐벨얼리

이번 와인 시음회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와인은 샤또 소백입니다. 캠벨 포도 100% 레드와인인 소백산향기와인은 라이트한 레드 와인으로 카베르네쇼비뇽과 같은 느낌의 풍미를 자랑합니다. 이름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소백산 자락에서 자란 캠벨 포도로 만든 이 와인은 소백산 지리의 이점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해발 600미터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포도밭 경작지의 경사가 가파르고 지대가 높아 기온 차이가 크다고 합니다. 와인에서 떼루아가 중요한 만큼, 배수가 잘되고 기온차가 크면 포도의 색과 향, 당도가 높아진다고 하는데 소백산의 기후와 지형이 바로 이렇습니다. 2대째 거친 양조장 경험으로 조용하게 강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산내들 와이너리는 캠벨 포도의 단 맛과 라이트하고 가벼운 향을 최대한 끌어올려 와인병에 담았습니다. 산지가 많은 한국 지형은 꼭 캠벨 포도뿐만 아니라 와인만을 위한 품종의 포도를 생산하고 개발해 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6. 오놀로그 레드 Oenologue Vin Rouge

오놀로그 레드 : 레드와인 / 12.5% / 750ml / 경기도 화성 오노피아 / 송산 캠벨포도


오놀로그는 오노피아라는 양조장에서 나오는 레드와인입니다. 샤또소백이 까쇼 같았다면 오놀로그 레드는 메를로처럼 깊고 농밀한 포도맛을 자랑합니다. 와인 양조학(오놀로지)의 유토피아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은 양조장 오노피아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화성 송산 지역의 캠벨포도를 이용해 와인을 생산합니다. 또한 프랑스에서 직접 주문한 오크통에서 숙성하기 때문에 농밀한 포도 향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오놀로그는 거칠고 강렬한 레드와인입니다. 마시기 전 한 시간 정도 먼저 디캔팅을 해서 공기와 접촉을 늘려 부드럽게 즐긴다면 맛과 향이 아지랑이처럼 잔잔히 퍼집니다. 오놀로그는 예전 박람회에서 한 번 접한 이후로 인상적이어서 잊지 않고 꼭 소개해드리고 싶은 레드와인이었어요. 시중 대부분의 한국 와인들이 단 맛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획일적인 포도 품종을 이용하여 개성있는 와인이 부족한 편이라 항상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놀로그처럼 자신감 있게 추구하는 와인의 맛을 지키는 와이너리들에겐 더 박수와 응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가진 와인 시음회 <한국와인은 처음이라,>에서는 주방장의 핑거 푸드들과 함께 와인을 스펙트럼 넓게 즐겨봤습니다. 이번 시음회는 보다 와인 자체에 집중했기에 맛과 향을 방해하지 않는 가벼운 페어링 푸드들을 준비했어요.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도 향긋하고 달콤한 시간을 보내셨길 바랍니다. 생각보다 한국 와인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셔서 앵콜 시음회를 기획하고 있어요. 어서 사태가 안정되고 모두가 편안해졌을 때, 새로운 자리를 준비해 찾아뵙도록 할게요. 다가오는 4월에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염원하며 2020년 3월 월간주방장 마무리합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아프지말고 건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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