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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Jul 23. 2019

시큼하지만 괜찮아!

울릉도에는 보다 특별한 막걸리가 있다. 바로 <울릉도 호박 생막걸리>

[숨겨져 있던 '양조장' 이야기 vol.2 : 울릉도 호박 생막걸리]



전국에 탁주를 만드는 양조장은 800여 곳.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지정된 곳만 해도 38곳으로, 한 달에 1~2개의 양조장만 다녀도 3년은 족히 걸린다. 이렇게 전국에 양조장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찾아간 양조장은 마음먹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배를 타고 세 시간에 걸쳐 들어가야 하며, 기상 상황에 따라서만 입도할 수 있는 곳이다. 연중 맑은 날은 60일에 불과하고 동해의 파도가 거센 편이기 때문에 기상 조건에 따라서 여객선은 잦은 결항이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숙박지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교통/날씨/숙박 이 삼박자가 충족되야만 방문할 수 있는 이 곳. 바로 '울릉도' 다.



(좌)울릉도 천부항, (우)저동 촛대암 ⓒ주방장



아름다운 신비의 섬이라고도 불리는 울릉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독도이며 외에도 명이나물, 오징어, 마가목, 호박엿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든, 그게 설령 섬이라고 할지라도 그곳엘 가면 그곳만의 막걸리가 존재한다. (요즘엔 지역마다 그 지역 특산물이 들어있거나 특징을 살린 빵이 많지만 ex. 대게빵, 오징어빵, 보리빵 등) 술을 좋아하는 여러분이라면 바로 '호박 막걸리'를 떠올렸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이번에 울릉도를 방문한 이유도 바로 이 막걸리 때문인데, 흔하게 알고 있는 막걸리와 비교하면 분명히 다르다. 제목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보다 시큼하지만 특별한 호박 막걸리를 소개해보려 한다.





다른 호박 막걸리는 병이랑 물만 노랗고 일반 생수로만 빚는데, 나는 다르지. 
울릉도의 유명한 칡, 우슬, 마가목에다가 헛개, 치자까지 넣어 우린 물로 끓여다가 식혀 술 빚는다. 살 때도 한 번 마셔보고 맛있으면 사라고 하지, 그냥은 안 판다.

한 번 맛보면 잊지 못할 '원조 울릉도 호박 생막걸리'를 만드시는 이송옥 할머니 ⓒ주방장


언젠가 가양주연구소 수업 때 류인수 소장님이 울릉도 할머니의 호박 막걸리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울릉도 할머니의 호박 막걸리는 단양주의 표본이자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기에 울릉도엘 간다면 꼭 한 번 방문해보길 권했다. 울릉도에서 만들어지고 이 섬을 대표하는 막걸리임에도 불구하고, 도내에서는 마시기도, 찾아보기도 어려운 이 막걸리. 심지어는 입소문으로 아는 사람들만 마실 수 있어서 더 유명한 원조 <울릉도 호박 생막걸리> 양조장에 직접 찾아가 보았다. 


보다 편견 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가지는 않았다. 사실 찾아봐도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연락드리고 방문했다. 울릉도 저동에서 도동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울릉군 도동 정류소'에 내렸다. 쉬엄쉬엄 구경하며 독도관리 사무소 방면으로 걷기를 5분. 멀리 알록달록 벽에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송옥 할머니께서는 마침 볕이 좋아 바깥에 미역을 말리고 계셨다.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크기는 작지만 양조에 필요한 모든 도구가 알차게 갖추어진, 손때 묻은 정겨운 양조장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단양주 맛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놀라운 막걸리 맛.


자리에 앉기 무섭게 냉장고에서 호박 막걸리 한 병과 직접 담그신 명이나물 장아찌를 내오셨다. 울릉도 인심 사납다는 말 무색하게 한 잔 가득 따라주신다. 쿰쿰한 누룩 향과 함께 은은하지만 달지 않은 늙은 호박의 향이 함께 올라온다. 끝으로 단양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건강한 신 향이 느껴졌다. 그래서 단양주 맛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이 막걸리가 너무 시큼하고 상한게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모금 한 모금마다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확실히 감미료를 넣은 술들과 크게 다른 점 중 하나는 자연스러운 신맛이, 보다 다양한 향을 이끌어내고 부드러운 맛을 낸다는 것이다. 이어서 호박 향은 아니었지만 약재와 같은 맛이 느껴졌다. 


"내 술 마셔 봤나. 빚을 줄 안다고 하이 한 잔 따라줄게, 마셔봐라. (꼴꼴꼴)" 
"어떻나 개운하지? 처음에는 입 대보고 시다고 내(려) 놓는다. 근데 설명해주고 마셔보라고 하면 사간 거 다 마시고, 다음 날 골 안 아프다고 집 갈 때 한 박스 사간다."


가득 채워주신 한 잔을 다 비우고 소감을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는 술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셨다. 일반적인 술 빚기 방식으로 늙은 호박을 사용해 빚어보니 4-5일을 채 버티지 못했단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가더라도 꼬박 하루 걸려 잼의 형태로 만들고, 술 빚는 데 사용하신다고 하셨다. 그래서일까 확실히 시중의 호박 막걸리들과는 다르게 색도 더 또렷하고 호박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위에 떠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 술에 들어가는 약물이 있다며 마셔보라고 또 다른 한 잔을 권해주셨다. 말 그대로 건강해지는 느낌 가득의 물이었다. 마가목, 우슬 등 관절에 좋다는 약재 외에도 칡, 치자를 넣고 달인 물이었다. 처음 술 빚는 법은 40년 전 울릉도에 내려와 배웠지만, 약초 끓여 달인 정제수를 넣기 시작한 것은 온전히 할머니 자신의 관절 건강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건강한 이 맛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레시피로 제조면허에 판매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울릉도 촛대바위와 울릉도 호박 생막걸리 ⓒ주방장


하지만 울릉도 호박 생막걸리가 편하고 쉬운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할머니가 만들어낸 고유의 맛을 탐낸 주변에서 탐내 공장화와 상업화를 시도했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한다. 그래서 더 뚝심 있게 호박 생막걸리의 맛을 고집하고 울릉도 소규모 양조장을 지켜내고 계신지도 모른다. 모든 단양주가 신 것은 아니지만 호박 막걸리 만큼은 그 신 맛이 특징이다. 제법 신 맛이 느껴져서 처음 마셔보는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이 신 맛에 어색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두 가지 질문으로 사람들에게 살지 말지 선택권을 넘긴다.


 "내 술 마셔봤는교?" 
"먼저 마셔보고 괜찮으면 사가라"

울릉도민에게 할머니의 호박 생막걸리는 단순히 신 막걸리가 아니다. 비록 몸은 바다 건너 육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막걸리는 그들의 외로움을 견디게 해 주며 단순한 노동주가 아닌 위로주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울릉도의 막걸리는 그저 한 병의 술이 아닌, 살아온 이야기가 담긴 한 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작은 양조장을 찾아 배 타고 바다 건너 긴 여정이었지만, 이송옥 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양조장을 구경하고 강렬한 신맛의 생막걸리까지 마시니 고단함이 싹 가셨다. 비록 3박 4일의 짧다면 짧은 일정이었지만, 매일 푸르렀던 바다와 산뜻하던 바람 그리고 할머니와 술 이야기까지. 오롯이 울릉도를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세 시간만 배를 타고 나가도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여름, 울릉도에서 시큼한 맛과 푸르른 멋을 함께 찾아보시길. 






# <울릉도 호박 생막걸리> 정보

식품유형    탁주

알코올       6%

내용량       750ml

성분          정제수, 쌀, 보리, 호박, 누룩, 물엿, 설탕, 칡, 우슬, 치자, 마가목

양조장       원조 울릉 호박 막걸리

구매처        방문 구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약수터길 18)






*소규모 양조장 방문 및 인터뷰는 주방장이 선정하며 특정 양조장의 지원을 받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This article is not spons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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