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밖에 없는 집, 텅 빈 현관문을 닫고 나왔다.
오늘따라 출근길이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하늘이다.
햇빛은 오늘따라 유난히 밝게 느껴진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인데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버스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출근하는 직장인, 등교하는 학생, 가게 문을 여는 상인,
많은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무표정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버스 안 사람들을 살폈다.
꾸벅꾸벅 졸거나 신문을 읽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사람들.
여기도 모습들이 다양하지만 표정은 무표정이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평소에는 주변의 시선을 보지 않았던 내가
오늘은 주변 사람들의 표정까지 유심히 바라본다.
어느덧 버스는 회사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회사 입구부터 보안요원과 인사를 했다.
난 웃으면서 인사를 드렸지만 상대는 무표정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와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드렸는데 여기 직원들 또한 무표정이었다.
왜 그런 걸까? 이상하게 느껴졌다.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는 이 기분은 무엇 때문일까?
오늘의 업무 시작 전 회의가 있어서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회의실에서도 서로 인사는 하는데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나는 오늘 이상하게 표정에만 관심이 많아지고
왜라는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회의에는 집중이 안되고, 사람들의 표정에만
관심을 보이는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회의를 통해 오늘의 업무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최근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회사도 힘든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IMF 이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뉴스를 통해 IMF로 많은 분들이 폐업을 하고,
많은 대기업들도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회사와 아르바이트에만 집중하다 보니
실제로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야 버스를 타고 오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회사의 분위기도 밝지 않은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피곤한 느낌이 들어
바람을 세려고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 올라 하늘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탄탄하다 생각했던 우리 회사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바람을 세러 왔다가 기분이 좋지 않아 사무실로 돌아왔다.
“최 차장님, 소식 들으셨어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의 엘리트 이 대리가 물어본다.
“이 대리님, 어떤 소식이요?”
나는 요즘 아내와 민종이 외에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그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회사가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 때문에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오늘같이 회의시간이거나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회사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우리 회사도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한데요.
고연봉자인 관리자가 1차 대상이라는 말이 돌아요.”
옥상에서 들었던 내용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요? 이 대리님 우리는 누가 대상이에요?”
나도 대상인지 걱정이 되어 물어보았다.
“우리 사무실은 인원이 적어서 1명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10여 명 중 1명이라면 누구든지 본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내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와 민종이에게 돈을 보내야 하는데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적지 않은 나이이고, 주변 회사도 사람들이 퇴직하는
입장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다는 걸 느꼈다.
다행히 현재하고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긴 한데
이곳에서 받는 월급은
지금 회사에 받는 월급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내용이
이제는 나에게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긴장한 모습을 보고 이 대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대화가 없고, 굳은 표정으로 모니터만 바라본다.
고연봉자인 관리자 대상이라는 말이 들리긴 하지만
연구원인 우리 부서가 다른 부서에 비해 중요 자리이고,
이로 인해 월급도 적지 않은 편이다.
관리자를 제외하고 고연봉자라는 말에
모두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내 옆자리에 김 차장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신다.
“최 차장, 오늘 끝나고 시간 되나? 나랑 한잔 할까?”
김 차장님도 걱정이 되셨는지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네, 차장님. 오늘은 시간 괜찮습니다. 같이 한잔 하시죠.”
오늘은 갈빗집이 정기 휴무일이라 아르바이트가 없다.
저녁을 어떻게 해야 하나 출근길에 걱정하면서 왔는데
마침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하셔서 지난번에 거절한 일도
생각나고 죄송한 마음에 긍정적인 대답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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