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암 치료를 위해
회사에 병가를 신청하고, 치료에 전념을 했다.
나는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여러 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약물치료도 병행하였다.
방사선 치료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었다.
치료가 잘 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지만
장기화되면서 나는 결국 회사를 휴직해야 했고,
아르바이트 또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가 불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마침내 2여 년 만에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다.
내 건강 상태는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갔고,
더 이상의 수입이 없어,
생활비마저 바닥을 보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경제적 부족으로 인해 거주하던 아파트를 팔고,
혼자 살 수 있는 작은 빌라에 전세로 이사를 했다.
민종이가 유학을 가고 3년이 가까웠을 무렵
아내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오빠, 잘 지내죠?
제가 그동안 너무 연락을 못했죠?
우리는 오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이제는 적응이 되었는지 아내의 목소리는
지난번보다 힘이 있고 밝게 느껴졌다.
“응.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있고,
신입 직원들이 들어왔는데 볼 때마다 민종이가 생각났어.
여보도 잘 지내지? 어디 아픈 곳은 없고?”
나는 밝은 목소리의 아내에게 아프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재의 상황을 얘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반대로 선의 거짓말을 했다.
“오빠, 정말 미안한데 우리 3년만 더 연장해서
민종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으로 들어가면 어떨까요?
이제 자리 잡고 있는데 지금 들어간다면
한국에서 또다시 시작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오빠만 허락해 준다면 우린 연장하고 싶은데요.”
“그래, 여보 얘기 들어보니 그게 맞는 것 같네.
여보가 생각한 것처럼 진행하고 여긴 걱정하지 마.”
아내의 말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한국으로 들어온다면 나의 아픔도 알게 될 거고,
지금 아파트를 팔고 작은 빌라로 이사 왔기에
우리 가족 3명이 살기에는 좁게 느껴질 것 같았다.
계획한 2~3년이 거의 다 되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연장한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빠, 매번 힘들 텐데 이렇게 잘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우리도 열심히 잘 살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 보답할게요.
오빠, 정말 고마워요. 나중에 또 전화드릴게요.”
“알겠어. 여보도 잘 지내.
아프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다음에 또 봐.”
우리는 이렇게 짧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유학 연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통화를 마쳤다.
나는 매달 말에 아내에게 유학 및 생활비를 보내고 있었다.
이번 달에도 아파트 판매금액에서 빌라 전세금을 제외하고
남은 잔액에서 매번 보냈던 일정금액을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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