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내가 느껴본 가장 행복한 흔들림
아른아른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흘러가는 물결들.
산타루치아 역을 빠져나와 하얀 햇살 아래 맞이한 베네치아의 첫 광경 앞에서 나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에메랄드 빛 아스팔트를 본 것 마냥 두 눈을 깜박거렸다. 일렁이는 그 멈추지 않는 흐름을 따라 시선은 내달리고 내달리다 저도 모르게 미소를 불러내는 그런 곳. 물결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고향은 이곳이 틀림없다.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게 느낀다. 자신은 이곳에 살고 있고 이곳은 바로 환상적인 흔들림의 세계라고 말하는 물결의 말에 어리둥절 낯을 가리긴 했지만 곧 거부할 수 없는 자유분방한 아름다움이 나를 설렘으로 물들였다.
자동차가 없는 베네치아의 대중교통은 다양한 노선을 가진 수상버스, '바포레토(Vaporetto)'다. 시속 11Km가 최대속도인 바포레토는 매우 느린 편에 속한다. 하지만 대체로 역과 역 사이가 멀지 않으니 빠른 속도를 낼 일도 없거니와, 차선도 없는 물의 도로 위에서 곤돌라와 수상택시, 개인 보트들과 어우러져 사고 없이 다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물결이 너무 심해지면 수상 건물들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느리게 춤추듯이 나아가야 한다. 하긴 이렇게 아름다움이 도처에 떠다니는 섬에서 그리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기다리던 바포레토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하나둘 승선을 시작한다. 모두들 상기된 표정으로, '나는 지금 베네치아에 있어!'라고 외치는 듯 들떠있다. 이제 갓 피어난 설렘을 한가득 싣고 출발하는 바포레토. 출렁출렁. 물결들의 리듬을 따라 기분 좋게 흔들리며 선체가 나아가자 이번엔 바람의 부드러운 샤워가 얼굴과 머리칼을 휘어 감싼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베네치아의 순간이 비누거품처럼 부풀어 오른다.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스피커에서 무언가 활기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한껏 멋과 여유를 부리며 유머러스하게 쏟아놓는 이야기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격하게 환영한다는 뜻인 것 같다. 이탈리아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의 웃음에 나도 반박자 늦게 따라 웃는다. 안내방송의 마무리로 'Thank you'가 포함된 세계 각 나라의 언어로 감사하다는 말을 날려주시는 센스가 모든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사이, 한국어가 나올지 어떨지 궁금한 내 귀가 쫑긋쫑긋 거린다. 마침내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에서 만난 내 가방처럼 반갑게 튀어나온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 입꼬리가 참을 수 없이 스르르 올라간다.
노란색 띠로 표시되어 있는 정차역 박스가 가까워지면 두 명의 바포레토맨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의 눈망울을 어깨에 짊어진 채 굵직한 밧줄을 준비하고 있다가 배가 멈춰 서면 잽싸면서도 신나게 나서서 쇠로 만들어진 말뚝에 야무지게 매듭을 묶는다. 매일 하는 반복된 일일 텐데도 '오늘도 또'라는 지긋지긋한 기색은커녕 한 줌의 지루함도 찾아볼 수 없다. 대단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 모든 몸짓과 표정 그 자체. 여행을 하다 보면 세계 반대편의 일상적인 사람들로부터 뜻밖의 위로를 받는다. 새로운 하루에 미소 짓기 위해서는 어쩌면 어제를 잊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물결 위로 흘려보내 주어야 할지도.
날렵한 곤돌라가 지나는 운하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물 위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하나의 거대한 무대 같아 보인다. 열정적인 사랑을 추구하고 현재를 즐기는 이탈리아인들은 모두 그들 스스로가 배우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무대는 주어져 있을 것이다. 다만 잊고 사는 것이 태반인 나날들, 방치된 듯 불투명한 나의 무대는 어떻게 생겼었는지 먼지를 털어내는 데에 한동안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렇게 어떤 의미에서든 인생이 한 편의 연극과 같다면 나는 - 늘 바라 왔듯 - 단지 훌륭한 배우이기보다는 평범할지언정 배우이자 또 감독이고 싶다. 흥행을 보장할 순 없겠지만 후회 없는 연출이 될 것은 어렴풋이 믿을 수 있기에.
창문을 열면 비릿한 베네치아의 체취가 방 안으로 달려들지만 천년 동안 이 섬을 위협하고 또 지탱해온 것은 또한 '물의 도시'라는 정체성이다. 수면 가까이에 위태롭게 피어오른 거뭇한 흔적들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난 가슴 한쪽이 아릿해오는 걸 느꼈다. 영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못난 걱정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은 베네치아의 천년 넘은 수상가옥보다 더 불안한 내 마음 탓일 뿐이다. 진흙 위에 말뚝을 박고 시작했던 그들의 도전. 발이 푹푹 빠지는 도저히 어쩌지 못할 것 같은 기반 위에서도 - 아니 태생적으로 그랬기 때문에 - 이토록 예술적인 도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발목을 잡는 부족한 환경이 꼭 미래를 절망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렇게 사라질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까닭은 또한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소멸되어 간다는 그 느낌을 차분히 안고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베네치아는 도시 전체가 비밀스럽다. 미로인 듯 엮여있는 골목들 사이로 졸졸 따라다니는 꼬리 같은 수로는 모든 이야기를 삼킨 채 아무 말이 없다.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으면 물결은 은빛으로 반짝거리며 흘러가는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고요한 길목 한가운데 그렇게 혼자 있노라면 아무 곳도 아닌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된다.
베네치아에는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나 자전거도 찾아볼 수 없다. 촘촘히 박혀있는 건물들 사이로 한 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디좁은 골목과 계단들이 대부분이라 여의치가 않다. 안 그래도 조심히 다루어야 할 지반을 폭주족이 부르릉거리며 밀고 다닌다고 상상하니 절대 안 될 일이 확실하다. 덕분에 베네치아의 골목은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오래된 골목길의 사연을 읽어 내다가 어느 순간 길을 잃었을 땐 바닥을 두리번거리거나 담벼락을 올려다보면 된다. 화살표로 그려진 아날로그 이정표가 낭만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이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마음 놓고 길을 잃는 편이 낫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툭 하고 산 마르코 광장이나 어느 물길이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미로는 언제나 이어져 있고 우리의 발길을 이끌어주는 본능을 믿는다면 언젠가 그렇게 만나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다다르고 싶어 하는 바로 그곳도.
산마르코 광장은 넓고 낡고 아름다웠다. 화재와 홍수 그리고 시간 그 자체의 모진 고난을 겪은 듯한 처절한 흉터들을 숨기지도 않은 채 당당하게 빛나고 있었다. 줄지어 늘어선 기둥과 아치를 따라 시선은 한달음에 달려가 매달리지만 걸음은 한참을 종종거려야 겨우 광장의 중간쯤 다다른다.
명성이 자자한 그 비둘기들. 나폴레옹이 극찬한 이 응접실 한가운데는 비둘기들의 회합장이다. 걸어 다니는 비둘기, 뛰어가는 비둘기, 먹이를 쪼아대느라 정신없는 비둘기, 싸우는 비둘기 하지만 결코 날아오르지 않는 이상한 살찐 비둘기들. 아무도 이들을 쫓아내는 이는 없다. 누구도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만나러 온 듯 추억을 남긴다. 그렇게 하나의 작은 쇼를 마치고 비둘기들은 생존해간다. 문득 궁금하다. 이곳에서 태어나 한평생 이곳에서 살다가 이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죽은, 아드리아해를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한 비둘기도 있는 건 아닌지.
다음 날 부라노 섬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리알토 다리를 찾았다. 보수가 한창이라 가려놓은 부분도 많고 시야도 많이 제한된 상태였지만 여전히 인파로 북적였다. 가면을 비롯한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보석 상점이 즐비해서 여기저기서 빠르게 굴러가는 이탈리아어가 들려온다.
16세기까지 나무다리만 이용하다 최초로 만들게 된 돌다리를 무려 대리석으로 이렇게나 아름답게 지어놓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편리한 직선의 디자인과 빠른 건축, 경제적인 자재와는 정반대의 것들로 이루어진 리알토 다리는 그 자체로 이곳 사람들을 대변한다. 미를 추구하고, 좀 느리면 어떠냐는 느긋함과 동시에 존재하는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신. 우리도 때로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들 속에서 우리를 발견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풍경이 되며 우리와 함께 머무른다. 누가 뭐라 해도 그것들은 소중하다. 우리 자신만큼. 그러니 찬찬히 살펴보고 예뻐해 주자. 모자란 곳은 보수해주자. 여기가 약점이라고 덕지덕지 흉하게 드러나도 상관없다. 당당하게 그렇게 하자.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하는 행위이니까.
부라노 섬으로 가는 바포레토를 타기 위해 이름도 어려운 F.te Nove "A"역을 향해 걷는다. (부라노 섬 이야기는 다음 편에 연재 예정입니다) 나에게는 특별하고 그들에겐 평범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파스텔톤의 낡은 담벼락과 덧문, 빨래를 말리는 방법과 진열되어 있는 과일들과 값을 표기하는 방식, 나무의 종류와 카페에서 앉는 방향. 지극히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안심한다. 햇볕이 쨍쨍하니 빨래를 말려야 한다는 일상적인 신념, 가족을 위해 장을 보고 요리조리 식재료를 고르는 까다로움, 한적한 오후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게으름, 혼자 있을 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본능. 그런 그들의 모습이 나와 같다는 사실에.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가장 특별한 것 같아서.
쇼핑이란 글자만 보면 쇼팽으로 읽히던 그 시절. 쇼팽 때문에 처음으로 클래식에 빠지게 되었던 나는 '바르카롤(뱃노래)'을 들을 때마다 언젠가는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면서 이곡을 들어봐야지 하고 꿈꾸곤 했다. 꿈처럼 베네치아에 도착했던 그날. 짐을 싸며 잊지 않고 넣어둔 'Chopin Barcarolle Op.60'을 스마트폰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누른 순간. 심장을 쿵하고 내려앉게 만드는 도입부에 이어 눈앞의 물결인지 귓가의 선율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떨림이 둥둥 하늘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한 쇼팽의 멜로디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춤을 추며 공기의 흐름과 하나가 되었다. 나는 마치 샤갈 그림의 주인공처럼 베네치아의 풍경 속으로 날아오를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곤돌리에가 노를 저으며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배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지금껏 내가 느껴본 가장 행복한 흔들림. 흔들려도 괜찮다고 원래 그런 거라고 대신 가라앉지 않을 만큼만 흔들리자며 춤을 추며 앞서 간다. 그날 그 물결의 노래가 그러했다.
곤돌라를 굳이 타지 않아도 행복했다. 며칠의 밥값 또는 하루 이틀쯤의 숙박비를 선뜻 낼만큼 간절히 타고 싶은 건 아니었다. 곤돌라만 보이면 시선을 빼앗긴 건 사실이지만 그저 그 풍경이 보기 좋았다. 큰 맘먹고 비싼 곤돌라를 타기로 한 승객들의 반짝이는 설렘도 끊임없이 노를 저어 가는 곤돌리에의 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들의 실루엣조차도 아름다웠다. 베네치아는 정말 사랑스러운 구석이 많은 도시다. 오래 머물면서 카메라 같은 것은 집에 무심히 뒹굴게 놓아두고 요리하다 떨어진 설탕 사러 나가듯 걸어 다니고 싶은 도시. 이곳이 이토록 나를 붙잡는 것인지 내가 이곳을 붙잡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것이라고 우기고 싶은 곳. 그리고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아져도 괜찮으니 오래오래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곳.
해 질 녘 산마르코 광장에서 두칼레 궁전 쪽으로 걸어가면 흔들리는 물결 너머로 노을을 바라볼 수 있다. 넓은 하늘과 그만큼 똑같이 넓은 호수가 맞닿은 그곳은 하루를 차분히 개어 시간의 서랍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다 구겨진 마음들을 한 장 한 장 다리고 펴서 소중한 것만 남게 해준다. 산책을 나온 많은 사람들 틈에서 우린 서로에게 이방인일 뿐이지만 그저 함께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같은 다림질을 받으며 모두 다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속으로만 바라는 가녀린 희망들을 하늘 끝자락까지 흩뿌리며 하늘조차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다 그렇게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모기 날갯짓만큼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베네치아의 밤. 생각에 잠긴 밤은 대답이 없다. 어두컴컴한 낡은 골목을 겨우 어렴풋한 방향감각으로 주춤주춤 걸어가는 것은 스산한 일이지만 괜한 어지러움일 뿐이리라.
밤이 오는 것이 좋은 사람과 밤이 오는 것이 싫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밤이 오는 것이 좋다. 하루치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 같아서 좋다. 그 무게를 덜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는 날에는 눅눅한 밤의 냄새를 베개 삼아도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밤이 고맙다.
흔들려도 괜찮다는 말
내가 베네치아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잡지 한 귀퉁이에서 발견한 - 누구나 한번 보기만 하면 잊을 수 없을 - 한 장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영화 '투어리스트'에서 조니 뎁이 서있어도 초점은 온통 그가 가리고 있는 베네치아에 빠져있었다. 베네치아는 어디까지나 비현실적 환상으로 나를 기쁘게 해주기에 적절한 그런 곳이었고 언젠가 가봤으면 하고 꿈으로써만 끌어안고 있어도 그 자체로 무언가가 되어주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하며 거짓말처럼 나의 현실로 살갗에 느껴지는 베네치아라니! 나는 이제 꿈같은 추억을 안고 살게 생겼다. 낯설은 물결의 노래도 습습한 바람의 춤도 고요한 담벼락의 낡은 속삭임과 밤의 침묵의 위로도 모두 진흙처럼 뭉글뭉글한 내 가슴속에 말뚝이 되어 박혀 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통해 하나의 말뚝을 더하고 조금 더 단단해지는가 보다. 흔들려도 괜찮다는 말. 나는 이제 한동안 그 말에 기대어 나아갈 것 같다. 흔들림의 두려움이 아닌 리듬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