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달달한 수식어가 어울리는 꿈의 섬
둥둥... 가볍게 흔들거리는 바포레토 위에서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넋을 놓은 지 한참이 지났다. 파란 하늘과 또 파란 바다 사이 크지도 않은 섬 위에 작은 집들이 꽃잎처럼 떠있다. 내가 꾸는 꿈보다 더 예쁜, 꿈같은 풍경은 계속해서 펼쳐졌고 그렇게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수 놓인 창밖을 보며 알 수 없는 나른함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갈 즈음 마침내 부라노가 눈앞에 나타났다.
부라노는 엄밀히 말하면 베네치아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베네치아에 머물면서 떠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여행지였다. 모든 도시를 떠나면서 언제나 나는 그곳을 기약 없이 떠나야 했지만, 오늘 베네치아를 떠나는 것은 '잠시 다녀올게' 하는 마음이었다. 괜히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매력으로 치면 빠질 것 없는 무라노도 있었지만 굳이 부라노를 선택한 것은 단지 조금 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좀 더 여행 같은 느낌이 드니까.
청량한 햇볕이 감싸는 완벽한 오후. 부라노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몇 시간쯤이다. 섬에 두 발을 올려놓는 순간부터 마음의 모래시계에서 모래알이 스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초록의 잔디 너머로 얼핏 보이는 내 기억 속 환상의 마을을 마주하고서 멍하게 서있는 동안 뒷줄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를 추월하며 앞서 나간다. 그때 내 앞을 지나던 한 여행자의 긴 머리칼이 깃발처럼 찰랑거리며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고, 그 리듬을 따라 나도 신나게 섬 안으로 향했다.
아담한 운하의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슬쩍 웃음이 난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어?'
부라노를 처음 눈에 담는 순간이면 누구나 이런 마음이 들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부라노를 사진으로 처음 봤을 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얼굴을 갖다 대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렇게 외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분명히 이곳의 존재를 몰랐던 것은 아닌 셈인데 그래도 실제로 만나니 역시 너무나 아름다운 충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나중을 기약하며 마음속에 꼭꼭 접어놓았던 종이비행기 같은 로망을 꺼내 바로 그곳의 하늘 위로 날려 보내는 순간은 참으로 짜릿했다. 간절히 소망하던 과거의 반쪽짜리 순간이 오늘 두근거리는 실현의 순간과 이어져 완전해지는 느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소망들의 짝을 찾아주며 살아가고 싶다.
부라노 사람들은 안개가 짙은 날 바다에서 돌아와서도 자신의 집을 쉽게 알아보기 위해 집집마다 다른 색으로 페인트를 칠했다. 어디 사는지 물어보면 ‘운하 끝 레몬색 집에 산다’ 고 말하거나, ‘광장 앞 애플그린색 집이 우리 집이야’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컬러들은 다 누가 정한 걸까. 정말이지 예쁘게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 고맙게도.
집들은 모여있어 더욱 아름답다.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기자기한 집들과 베네치아에 비하면 미니어처 같은 조그마한 물가를 따라 길이 난 방향으로 무작정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섬은 고요하고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새소리처럼 들려온다.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쉬이 볼 수 없고 관광객들만이 거리에 가득하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저마다의 '인생사진'을 남기고자 신이 난 기분들이 내 어깨에까지 날아와 앉는 것 같다.
꿈속의 꿈. 베네치아라는 꿈에서 또다시 꿀 수 있는 꿈, 부라노. 나는 걷는 동안에도 꿈을 꾸는 듯했다.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부라노 섬은 청순하면서도 유혹적이다. 너무나 작은 섬이라 이 그림 속을 헤매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는 곳이지만, 그 한 가지가 너무나 강렬하여 잊혀지지 앉는 곳이다.
일단 다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수로를 따라 걷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걸어가며 눈앞을 채우는 알록달록 상큼한 색깔들의 벽을 보고 또 보고 있으면 롤리팝 막대사탕이 손에 쥐어진 아이처럼 기분이 달콤해진다. 그러는 동안 이 집 저 집 창가에 놓인 다소곳한 화분들도 구경하고, 오늘 아침 빨아서 널어놓았을 법한 펄럭이는 빨래도 구경한다.
이들에게도 일상이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것일 수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고 - 낙원은 존재한다고 - 대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할 것 같아서 차라리 묻지 않는 쪽을 택한다. 그렇게 나는 이기적으로 환상을 남겨둔다. 살면서 가끔씩 시선을 향할만한 밝은 곳 하나쯤은 마음에 갖고 싶기 때문에.
부라노는 4개의 자그마한 섬이 서로 손을 잡고 퍼즐처럼 모여 있는 지역이다. 이웃 섬으로 가려면 가까운 아담한 다리 위로 몇 걸음만 옮기면 된다. 마침 다리가 나타났다는 핑계로 나는 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방향을 바꾸어본다. 어디로 이어질지 모른 채 마음 놓고 헤맬 수 있을 만큼 너무나도 작은 섬이라 괜히 내가 더 용기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어디에서나 골목은 그곳만의 평범한 장면들을 품고 있다. 성당과 종탑이 보인다는 건 광장이 가까이 있고 중심지역이란 뜻이니 제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 기념품 가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고 밀집되어 있는 레스토랑들 앞은 이미 자리를 잡고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방금 구워져 나온 피자가 테이블로 배달되고 까만 먹물 파스타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포크 위에 걸쳐있다.
부라노의 특산품인 레이스도 여기저기 진열되어 있다. 무려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부라노 섬 여인들의 레이스 공예는 유럽 전역으로 수출되면서 '부라노 레이스'라는 명성을 떨친 빛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현재의 부라노 레이스는 그저 관광 상품에 가까워 보인다. 거의 모든 기념품 가게에서 다양한 레이스 장식의 옷가지와 스카프, 양산, 패브릭 소품 등을 판매하고 있긴 해도 기계로 제작한 것이나 수입해서 파는 것이 섞여 있다고 하니 잘 살펴야 할 것 같다. 광장 근처에는 레이스 박물관도 있었는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다만 중세시대 이탈리아의 의복이나 생활습관을 떠올려보면 레이스가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을 듯싶다.
다시 골목 안쪽을 향해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갔다. 마침 어느 집 대문이 열리고 한 할머니께서 문밖으로 나오시길래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할머니는 몸에 밴 리듬과 호흡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비둘기들에게 - 비둘기들을 위해 - 모이를 뿌리기 시작하셨다. 그 모습은 마치 그분의 하루 일과 중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일인 듯했고, 비둘기들은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비둘기들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외따로 떨어진 섬에서는 의지하는 습성이 본능일 것 같았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다시 운하가 나타났고, 불과 몇십 미터 건너편에서 두 남성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라노 사람들의 주된 생계 수단은 여전히 어업이기에 그 모습이 내겐 아주 소중하게 느껴졌고 알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가장 부라노다운 모습이란 생각도 들었다. 타인의 일상이 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면 곧 그 뜨거움이 나 자신을 향하곤 한다. 내가 제대로 보아주지 못했던 나의 일상에게로 마음의 시선이 향한다. ‘네 것도 소중한 거야’라고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하며 깊숙이 파고든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이고, 나는 또 당신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며 살아간다.
아침부터 오늘은 부라노에서 점심을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괜히 소풍날처럼 들떠 있었다.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거리에 도착해서 적당해 보이는 한 곳을 정한 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는 먹물 파스타와 갈등하며 고심 끝에 결정한 프라이드 깔라마리. 샐러드를 추가하고 기본으로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빵과 함께 레몬 소다까지 그럭저럭 구색을 갖추었다. 깔라마리는 오징어란 뜻으로 맛을 보아도 결국 오징어 튀김인데 다만 튀김옷에 처음 맛보는 짭조름한 시즈닝이 가미되어 있다. 좀 허탈한 웃음이 나는 - 얼마 후 코르토나에서 만나게 되는 포르치니 버섯도 마찬가지 - 요리지만 어쨌거나 부라노의 깔라마리인 것이다.
너무나 심플한 조리법이지만 내가 다시 재현해낼 수는 없다. 그날 그 자리에서 내 목덜미를 감싸주었던 부라노의 햇살, 툭 하고 접시를 가져다 놓으며 혼자 중얼대던 서버의 투덜거림, 테이블 위에 무심히 올려져 있던 올리브유와 발사믹으로 긴가민가 드레싱을 만들었던 낯선 시도 그리고 그날 내 곁에 있던 이웃 테이블 사람들과 공유했던 여행의 분위기. 나는 그 모든 것을 먹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먹는 식사는 음식 그 이상을 먹는 일이다.
내가 사진 속에서 운명처럼 보았던 바로 그 두근거리는 풍경. 그곳이 실재하는지 보고 싶었다.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여행을 꿈꾸게 된 그런 미지의 장소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프랑스 니스와 프로방스, 이탈리아 토스카나, 친퀘테레와 포지타노 그리고 이곳 부라노 등이 바로 그런 곳들이었다.
"보다 달콤한 상태에 있기 위해서는 그곳에 대해 마음대로 꿈을 꾸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 있는 꿈을 꿈으로써 나는 곧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 장 자크 루소,《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중에서
루소의 말처럼 여행이란 평생 얼마든지 재생시킬 수 있는 달콤한 꿈의 장소를 하나씩 가슴속에 담아 가는 일이 다. 상상으로 꾸던 꿈을 현실로 이룬 오늘. 오늘의 꿈같은 현실은 다시 미래의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산책할 수 있는 추억의 꿈이 될 것이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비슷한 곳을 발견한 것 같았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찾아보았다. 빨강, 노랑, 오렌지, 하늘, 연두... 그리고 시선의 끝에 먼 바다가 보이는 그림. 바로 여기다, 여기!
변함없이 그대로다. 사진으로 본 풍경을 실제로 보았을 땐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라노는 그렇지 않았다. 이리 보아도 예쁘고 저리 보아도 예쁜 섬. 아련한 한 장의 사진이 데려다주었던 상상의 세계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아니 그보다 넘치는 현실 속 환상에 취해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좌우에서 강렬한 색채를 뿜어내는 집들의 행렬과 잔잔하고 소박한 운하의 흐름이 비로소 끝나는 지점, 끝없는 하늘과 바다를 향해 드넓은 호수가 마침내 시작되는 지점.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그 묘한 지점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아주 멀리까지 아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부라노의 골목길을 끝까지 걷다 보면 바다 같은 호수가 내다보이는 평화로운 잔디 공원에 다다르게 된다. 싱그러운 잎이 무성한 초록 나무 위에서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가느다란 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풋풋한 대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줄이 끊어진 풍선처럼 떠올랐던 마음을 다시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조용한 공원에 앉아 멀리 보이는 수평선 위에 낮게 깔려 있는 또 다른 섬을 바라보며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유유자적하며 보낸다.
내가 부라노에 갔던 날은 유난히도 햇살이 따듯했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의 화창한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한없이 아름답게만 기억하게 되었다. 그렇게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오후를 보내는 일은 이 작은 여행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었고, 뜨거운 태양볕에 바싹 마른 빨래의 냄새처럼 부라노 여행의 끝은 상쾌했다.
그리울 걸 알면서도 맘껏 싸안고 갈 수 없는 풍경이기에 할 수 없이 나를 더욱 놓아두고 가기로 한다. 내 그리움이 하늘과 호수에, 내 셀렘이 집과 집 사이에, 내 평온이 나뭇가지와 잔디 위에 잔뜩 스며들 때까지 나는 그곳을 얼마간 더 서성거렸다.
작은 섬. 산책은 끝이 났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인데 더 이상 길이 없는 부라노의 끝자락에 그대로 서있다. 무언가의 끝에 서있으면서도 평온한 느낌. 나는 이런 느낌으로 앞으로의 모든 끝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해가 조금 더 낮아지고 햇빛에 따뜻한 색이 감돌기 시작할 무렵, 아쉬운 발걸음으로 선착장을 향했다.
세상의 모든 달달한 수식어가
어울리는 부라노
부라노를 다녀온 것은 한여름의 낮잠 같이 달콤한 일이었다. 그곳은 책을 펼치는 여유는 물론이고 느긋하게 차 한잔을 마실 마음의 틈을 주지 않는 설렘의 섬이었다. 셔터를 잠시도 닫아두기 어려운 아름다운 그림이었고 눈앞에 있어도 자꾸만 현실이 아니라고 우기게 되는 환상의 세계였다.
배는 다시 바다 같은 호수 위에서 작은 항해를 시작했다. 돌아갈 곳이 베네치아라는 것까지도 마음에 드는 여행. 이제 누군가 부라노 얘기를 꺼낸다면 - 그래 아마 누구라도 - 일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겠지. 그 레몬 같았던, 솜사탕 같았던, 딸기우유 같았던, 세상의 모든 달달한 수식어가 어울리는 집들에 대해서, 섬에서 바라보았던 아드리아해의 아득한 수평선에 대해서 그리고 그곳에서 꾸었던 모든 꿈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