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스카니의 태양 아래 빛나는 언덕 위의 작은 마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Firenze S. M. Novella) 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1시간 반을 달려 카뮤시아 코르토나(Camucia-Cortona) 역에 도착한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승객들이 플랫폼으로 내려섰다. 몇 분간 숨을 고른 기차는 다시 레일을 따라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다. 고요한 이탈리아의 시골 역. 머리 위로 펼쳐진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출구로 향한다.
역내 편의점에서 버스 티켓을 사고 바깥으로 나오니 버스정류장 앞에 열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귀에 꽂힌 이어폰을 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엿듣는다. 아이들은 지루해서 무언가 자꾸만 투정을 부리고, 어른들은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캐리어를 챙기며 무언가 확인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한참을 기다리다 드디어 도착한 버스는 쾌적한 시설의 현대식 버스였다. 사람들은 모두 '토스카나의 태양'을 향한 기대를 품고 들뜬 여정에 올랐다. 버스는 한동안 평범한 도로를 직진으로 달리다가 곧 지그재그로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토스카나의 드넓은 평야와 사이프러스 나무가 늘어선 전원의 풍경이 펼쳐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드디어 영화 같은 여행을 시작한다.
2003년에 발표된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아래서>는 '다이안 레인'이 주연을 맡은 이탈리아 배경의 영화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발음이고 '투스카니'는 영어 발음이다. 한국어 영화명에는 '투스카니'를 사용했는데, 이 글에서는 영화명 외에는 모두 '토스카나'로 표기했다.) 여행은 가고 싶은데 떠나지는 못하던 수많은 날들 중 하나였던 어느 날, 나는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여행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토스카나의 감성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유혹했고, 여행 중에 반했다고 타국에 집을 사버리는 주인공의 즉흥적인 행동이 나를 꿈꾸게 했다.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다 싶었다. 그래 영화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영화는 미국의 소설가, 프랜시스 메이예스(Frances Mayes, 1940 ~ )의 자전적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것이었다.
그녀의 원작 에세이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 Under the tuscan sun, 1996>는 그동안 52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올해는 20주년 에디션까지 출간했다고 한다. 이쯤 되니 영화 속 프랜시스와 현실의 프랜시스, 어느 쪽을 부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영화 속의 로맨틱한 배경이자, 현실의 누군가가 인생을 걸만했던 장소. 그 운명적인 코르토나는 지금 눈 앞에 다가와 있고, 이제 내 인생에도 조금 들어오려 한다.
버스에서 내린 뒤 산 같은 언덕을 따라 중력을 거스르며 캐리어를 끌고 올라갔다. 코르토나 마을에 들어섰다는 설렘과 오르막을 오르며 후들거리는 다리, 점점 빨라지는 호흡이 뒤섞여 웃다가 짜증내다가를 반복하며 가까스로 호텔에 도착했다. 지도에 보이지 않았던 오르막은 찾아가는 길을 험난하게 만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호텔은 마을의 중심 광장과 아주 가까운 위치였고 무엇보다 잊을 수 없게 될 꿈같은 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와 얼른 문을 열었다. 이럴 수가, 예약할 때 본 객실 사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 방이 눈 앞에 나타났다. 부드러운 상아색의 회벽이 방안을 감싸고 심플한 다크체리색 앤틱 가구 몇 가지가 소박하게 놓여있다. 침대를 붙여놓은 오른쪽 벽에는 좁은 선반 위로 색연필 같은 막대가 꽂힌 공예 화병이 있고, 벽 중앙에는 커다란 녹색 액자 속에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인 추상화가 걸려있다. 예술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작은 방은 이미 모든 것이 조화롭다.
낯선 도시, 낯선 방에서 늘 그렇듯 기대를 품고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고 덧문을 밀어내자 일순간 천국이 펼쳐진다. 아, 태어나 처음 보는 풍경이다. 창밖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질렀댔을 소리의 높이만큼 가슴속이 벅차오른다. 폴짝폴짝 뛰며 마주쳤을 손바닥만큼이나 심장이 쿵쾅거린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토스카나의 오렌지빛 지붕들이 꽃밭처럼 앉아있고, 그 너머로 끝도 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초록의 평야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지평선엔 거대한 산들마저 나지막한 담장처럼 깔려있고, 그 위로는 우주를 꿈꾸게 하는 새파란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토스카나의 모든 들판을 정원으로 가진 듯한 손바닥만 한 이 방에 언제까지나 살아버리고 싶다.
머릿속에 이유나 목적을 굳이 정하지 않고 나서는, 이런 산책이 좋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서야 ‘무작정’이라는 흥분되는 낭만을 시도해 본다.
호텔을 나서니 왼편에는 좀 전에 캐리어를 질질 끌고 올라왔던 내리막이 있고 오른편엔 높다란 아치가 서있다. 몇 걸음을 옮겨 아치를 통과하자 곧바로 코르토나의 시계탑이 나타난다. 레푸블리카 광장이다.
아담한 시골 마을의 광장에는 사랑스러운 감성이 넘쳐난다. 광장 한켠의 수수한 시계탑 건축물 앞 돌계단에는 오후의 햇볕을 쬐는 사람들의 휴식이 있다. 두어 개의 노천카페에는 욕심 없는 사람들의 유쾌한 대화가 있고, 그 속의 환한 미소는 광장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번진다. 마을은 모두 한 가족 같고, 레푸블리카 광장은 화목한 분위기의 거실처럼 정겹다.
소박한 시계탑 건물은 코르토나 시청이었다. 계단 위쪽의 건물은 고대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인이 무려 BC 6세기경 이 도시를 세울 당시 건축한 것이고, 16세기에 이르러 왼편 건물과 중앙의 시계탑을 증축하고 계단도 만들었다고 한다.
거친 돌벽의 아름다운 연핑크빛이 순수하면서도 묘하게 아름답다. 세월의 때가 묻은 시계도 자그마한 종도 모두 마음에 든다. 미켈란젤로의 손길 같은 천재적인 정교함이나 보티첼리의 붓터치 같은 생생한 미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진 아름다움이다. 오래된 연애편지 같기도 하고, 오랫동안 잘 발효시킨 샴페인 같기도 하다. 처음 와 본 곳인데 추억의 장소에 있는 듯하고, 처음 본 순간부터 영영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 순간을 뚝 떼어 마음속 비밀 상자 안에 넣어둔다. 그 안에서 시공간을 넘어 살아있길 바라며.
하염없이 시계탑을 바라보다 오른편으로 난 길을 향해 걸었다. 사방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여유롭게 걷고 조용히 대화한다. 이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나만의 장소라 생각하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일수록 더욱 정이 간다. 그들이 나처럼 이 산꼭대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같은 취향을 증명하는 듯하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까닭으로 다 내 편인 것만 같다. 정말 오길 잘했지, 하고 혼자 말해 본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바랄 것이 없어져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나만의 것을 찾아 끝내 다다를 때면, 거기엔 언제나 감수해야 했던 어려움보다 더 큰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 끌리는 것에는 항상 -내가 다 알지 못해도- 나를 위한 이유가 숨어 있다.
작은 마을의 산책은 몇 발자국만으로도 장면을 바꾼다. MAEC박물관과 시뇨렐리 극장이 나타났다. 모두 영화 속에 등장했던 장소라 어느새 나는 프랜시스가 되어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분명 이 박물관 앞에 분수대가 있었는데 없는 걸 보니 세트였던 모양이다.
7개의 아치가 아름다운 2층 건물의 시뇨렐리 극장. 아무래도 코르토나에서 내 마음은 무엇이든 사랑하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이 소박한 극장에도 마음은 자꾸만 머무르자고 말한다. 이곳에서 영화든 연극이든 한 편 보아도 멋지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의 게으름 덕에 극장 앞 게시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시뇨렐리 극장 뒤편으로는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고 이어서 주택가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어느 가게 앞 유리에서 집을 판다는 게시물을 보고야 말았다. 여기가 부동산인가. 원 베드룸 아파트-한국식으로는 원룸 원거실-가 185,000유로. 사고 싶다, 라는 욕구가 성큼 마음으로 들어온다. 한국돈으로 2억 3천쯤, 이란 걸 계산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 돈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하고 물어보고 싶다. 아, 이쯤 되면 프랜시스병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코르토나에 오면 누구라도 집을 사고 싶어 지는 병. 아무래도 이 골목은 여기까지가 좋겠다.
레푸블리카 광장의 시계탑 맞은편에서 시작되는 내지오날레 거리는 코르토나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다. 그래 봤자 200m 조금 넘는 골목일 뿐이지만 '분명히' 활기가 넘치는 쇼핑 거리다. 골목과 하나가 된 작은 노천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만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젤라토 가게에서 달콤함을 한 스쿱 얹어 나오는 사람들이 있고, 옷가게에서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갈등에 빠진 사람이 있다. 기념품샵의 엽서 가판대는 뱅글뱅글 돌아가고, 갤러리의 그림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 문밖에 앉아 있다.
아무리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으로 유명하다 해도 이곳은 사람들의 기대를 관광상품으로 이용하지는 않았다. 이곳에 오기만 한다면 자신에게 반할 것임을 코르토나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붉은 양귀비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 노란 해바라기가 넘실대는 풍경, 연둣빛 언덕 위에 서있는 짙은 초록빛 사이프러스 나무의 행렬 등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자연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자부심인 듯 했다. 나는 갤러리로 들어가 마음에 드는 액자의 가격을 묻는다. 질문은 점점 작은 그림으로 옮겨가고 그러다 결국, 고맙다는 말만 하고 돌아선다. 이 그림이 서울 집에 걸려 있을 상상을 하니 혼자 동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코르토나에서 품는 모든 상상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듯 말이다. 코르토나는 그곳에 놓아두고 언제든 다시 찾아갈 꿈의 장소로 남겨두는 것이 낫다며, 그렇게 위로를 한 나는 겨우 욕심을 내려놓았다.
내지오날레 거리가 아쉽게 끝나자 멀리 소박한 성당이 하나 보인다. 오늘은 다리가 아픈 것도 아니지만 두 발은 본능적으로 성당을 향해 움직인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성당은 마치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처럼 반가운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성당을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분들의 호탕하고 유쾌한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길을 가다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보였다. 길을 강처럼 사이에 두고, 각자 발걸음을 멈춘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시시콜콜한 안부를 끝낼 줄 모르고 나눈다.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음에도 그것이 정말 사소하고 별 것 아닌 내용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 작은 것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도. 가령, 내가 만든 문짝의 문고리가 두 달만에 도착했다고, 그 문에는 꼭 그 문고리를 달아야 하는 거라고 한 쪽에서 말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건 정말 중요한 문제죠, 맞아요 그 문에는 그 문고리가 딱이에요. 어떻게 구했어요? 정말 잘됐네요!, 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시끌벅적하게 들뜬 수다를 나누고는 한참 만에 가던 발걸음을 잇는다. 그렇게 돌아서서도 몇 번이고 인사를 거듭한다. 그들의 정이 이 거리에 한없이 쏟아지는 토스카나의 햇볕보다도 따사롭게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산 도미니코 성당은 소박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기도를 하고 성가를 부르겠구나, 싶었다. 이 성당만큼은 예술이 아니라 생활의 장소로 느껴졌다. 성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이번엔 공원이 나타났다. 있는 줄도 몰랐던 뜻밖의 공원과 전망대가 무척이나 반갑다. 어떤 관광 정보에도 나오지 않는 그저 동네 공원일 뿐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여기에 있었다. 나무와 꽃, 햇살과 분수 그리고 그림자와 실루엣. 날씬한 나무 기둥과 섬세한 잎들 사이로 늦은 오후의 강렬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가득하지만 코르토나의 가을 공원은 처량하기보다는 운치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토스카나의 드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가만히 벅차오르는 감동을 휘저어 초록의 대지를 향해 비눗방울처럼 마음을 날려본다. 이름 모를 붉은 꽃들이 가득한 화단에서는 나뭇가지 사이로, 꽃잎 틈으로 햇살과 숨바꼭질을 하며 한참 동안 신이 나 사진을 찍었다. 숲을 이룬 나무들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자꾸만 나에게 안기려 했고, 해가 낮아질수록 더욱 깊이 스며들었다.
오늘 이것으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받고 말았다.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고작 몇 시간의 산책이 전부였음에도 코르토나에 온 내 마음은 이미 충만하다. 무엇을 사지 않았어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나는 비행기 값을 치렀고, 호텔비를 지불했지만 여행을 산 것은 아니었다. 길 위에 서보니 여행은 친구처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를 만나러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를 닮고 나보다 조금 더 철이 든 그는 스크루지의 꿈처럼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인생을 가르쳐준다. 나는 아직 그 꿈 속에 있다.
붉은 해가 저물고 까만 밤이 시작되기 전, 그 한동안의 푸른 저녁이 코르토나에 찾아왔다. 산책을 마치고 다시 내지오날레 거리로 돌아가 레푸블리카 광장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 광장에 다다르기 몇 미터 전, 나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행복한 꿈이다. 짙고 푸른 바다 같은 하늘 아래 오렌지빛 조명이 모닥불처럼 빛난다. 가을저녁의 바람이 공기를 휘저으며 지휘를 하고, 노천카페에 앉아 있는 청중들은 너무나도 환하게 웃고 있다. 아무 걱정할 필요 없는 든든한 성벽의 평안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춤 추고 노래하는 이 없이도 축제가 벌어진다. 시계탑 계단에 앉아 껴안고 있는 연인도, 광장을 가로지르는 행인도, 가게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누군가조차도 이 순간엔 모두 마법처럼 신비로워진다.
마법에 걸린 나는 그 아름다운 아우라 속으로 들어가기가 차마 아까워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법은 짧게 공연을 마치고 사라졌다. 시리도록 파랗고 선명하던 하늘이 까만 어둠에게 자리를 내주고 나서야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았다.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려진 듯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7시다. 어제 오후부터 서머타임이 끝나서 한 시간 당겨진다고 했으니 어제 기준으로는 8시인 셈이다. 1시간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다.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걸쇠를 열고 유리 창문을 당긴 뒤 초록색 덧문을 활짝 밀었다. 하얀 세상, 안개의 숲. 차가운 공기 너머로 토스카나의 평야를 뒤덮은 아침 안개가 호수처럼 잔잔하게 깔린 채 숨을 쉬듯 들썩인다. 그것도 내 눈 밑에서라니, 천국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이런 기분일까?
맑은 하늘에 막 떠오른 해가 따스한 햇살을 비추자 낡은 벽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지붕 위로 울려퍼지는 아침 종소리도 하루를 불러낸다. 얼른 일어나 코르토나의 '오늘'을 시작해야겠다. 나는 이곳에 이틀 밤을 묵기로 했으므로 오늘은 하루 종일 온전히 코르토나에 있는 날이다. 내일 아침은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떠나기 위해 분주한 여행자의 아침일 테니까. 하지만 오늘 아침은 여유롭다. 오늘 나는 코르토나에서 산다. 코르토나만 생각해도 된다. 천천히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에 다녀오고 이 마을 사람들 사는 모습도 보고 또 무엇이든 평범한 일을 하며 보내고 싶다.
조식을 먹고 아침 산책을 나섰다. 동네 골목들을 돌아다니고 싶어 미로 찾기 하듯 아무 골목으로나 들어섰다. 오가는 사람들은 없고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을 혼자만 독차지한 기쁨으로 모퉁이를 돌고 계단을 올랐다. 문 앞에 내어놓은 아기자기한 화분들은 오래된 돌벽에 생명력을 더하고, 지나가는 여행자의 얼굴에 표정을 더한다. 가로등 하나, 벤치 하나마다 정성이 느껴지는 이곳. 나는 걸어가면서도 쉬고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아까는 없었던 플리 마켓이 펼쳐져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보다. 뜻밖의 이벤트에 신이 난 나는 광장을 돌며 구경을 시작했다. 오래된 책과 음반, 시계와 액세서리, 장식품과 액자, 그릇과 공구, 의류와 신발 그리고 정의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사소한 삶의 모든 조각들. 백화점 명품 매장의 신상보다 이탈리아 시골마을의 플리 마켓 물건들이 더욱 새롭다. 처음 보는 디자인과 신기한 아이디어가 넘쳐 난다. 이 작은 마을의 플리 마켓이 어찌나 알찬 지 사고 싶은 물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플리 마켓은 리퍼블리카 광장을 중심으로 우측을 따라 시뇨렐리 광장 너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언제 다시 이렇게 코르토나의 플리 마켓을 구경할까 싶어, 시간이 담긴 물건들 하나하나마다 나의 시간 하나씩을 더하여 주었다. 만지작거리다 놓았던 몇 개의 욕심들. 여행 경비가 빠듯하다, 여행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짐스럽다, 그런 핑계는 왜 꺼냈을까? 왜 고작 10유로짜리 시계 목걸이조차 망설이다 내려놓고 말았을까? 그것 하나쯤은 가져도 좋았을 텐데.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을 가겠다고 생각한 것은 꼭 그 성당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긴 산책을 위한 하나의 목적지가 필요했다. 목적지는 목적지일 뿐이다. 목적지를 정하면 방향이 정해지고, 방향이 정해지면 걸어갈 길이 생긴다. 길 앞에 서면 그때부터는 여정을 즐기면 된다. 그러니 애초부터 목적지는 여정을 위한 것이다.
정해진 길은 없다. 길은 돌아갈 수도 있고 쉬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여정이 등산이 될 줄은 몰랐다. 이런 언덕 위의 요새 같은 성곽 마을에서 오르막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나는 또 구글 지도의 평면에 내 생각도 평평하게 맞추고 말았다. 거리만 생각했지 높이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누구와 내기할 것도 아니고 서두르라 재촉하는 사람도 없으니 느릿느릿 나의 호흡에 맞추어 걸으면 그만이다.
이 마을에도 창가에 빨래를 널어놓았다. 그렇게 빨래와 인사를 하고, 이 집 덧문과 저 집 덧문이 뭐가 다른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오가는 사람도 없는데 어찌 이리 예쁜 화분들을 길가에 놓아두었는지 그 마음에 감동하다가 그렇게 기웃기웃 걷고 또 걸었다. 몸을 얼마간 앞으로 기울인 채 가끔씩 뒷짐도 져 가며 말이다.
이렇게 높은 꼭대기까지 집이 들어서 있고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편의점도 없고 세탁소도 안 보이는 이런 곳에선 인스턴트 음식 대신 직접 기른 채소를, 드라이클리닝 해야 하는 옷 대신 물빨래해서 빨랫줄에 척 널어놓을 수 있는 편안한 옷을 입는 거겠지. 이런 곳엔 이런 삶이 어울리고, 다른 곳엔 다른 삶이 어울린다. 다만, 이렇게도 살 수 있고 다르게도 살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음이 소중하다. 저벅저벅 걸음을 옮긴다. 얼마쯤 왔을까, 좀 쉬어갔으면 싶은 지점에서 작은 공원이 오아시스처럼 나타났다.
햇볕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아 두 다리를 뻗는다. 상쾌한 공기 속으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저 높이 날아다닌다. 참새와 비둘기는 아닌 것 같다. 무슨 새인지는 모르겠으니 그냥 코르토나의 새소리라고 해야겠다. 고개를 젖히고 등받이에 반쯤 누운 듯 기대어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을 가린 나뭇잎 사이로 느릿느릿 구름이 지나간다. 이곳에선 모든 것이 느리게 가라고 한다. 아니, 속도 같은 건 잊으라고 말한다. 시간은 둥글게 모여있거나 투명하게 사라진다. 스르르 졸음이 몰려온다. 한 잠 달콤하게 잤으면, 싶지만 잠시 눈만 감아본다.
아직 길이 남아 있다. 달달한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여정을 이어간다. 성당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이는 걸 보니 다 와 가는 것 같다. 그러다 제법 우거진 사이프러스 숲길을 지나자 정말 산꼭대기에 단아한 자태의 성당이 나타났다. 일요일이라 성당 앞 잔디에서 주일학교 학생들이 모여 무언가 즐거운 활동을 하고 있다. 성당 앞마당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나머지 몇 명만 보인다.
성당 안을 잠시 둘러본 뒤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이 성당은 안이나 밖이나 모두 고요하고 평화롭다. 토스카나의 초록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저 아래 세상을 바라보며 대지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을 마신다. 산 정상에서 보던 풍경은 건너편 산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한없이 아득한 지평선과 열려있는 세상을 보니 마음이 어찌할 줄을 모른다. 마음이 달려가기에는 너무나 높았고, 마음은 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더 오래 보았다. 조금이라도 익숙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작은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작을 대로 작아져서 돌아가는 기분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정적의 소리를 들으며, 그림자의 카펫을 밟으며, 햇볕에 마른 가을 낙엽들이 또르르 굴러가는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잊었다. 나는 그냥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제야 사는 것 같았다.
코르토나에 막 도착해서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점심 무렵에 한 레스토랑 앞에 섰다. 이 지역 특산품인 포르치니 버섯 메뉴가 있다길래 들어가 보았다. 일단 '포르치니 버섯'을 주문했다. 조리 방식 같은 건 별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뭐든 괜찮았으니까. 그리고 너무나 좋아하는 마을에 온 기념으로 '믹스드 애피타이저'도 추가. 뭐 여러 가지 나오겠지, 하며 침을 삼키고 기다렸다.
조용하던 레스토랑에 테이블이 차기 시작했다. 빈 가게에 내가 들어오고 난 뒤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은 다들 행복하고 여유롭다. 코르토나 같은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자연의 아름다움과 오래된 마을의 소박함을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즐거워질수록 나는 외로워졌지만 그런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은 좋았다.
포르치니 버섯 메뉴는 튀김이었다. 감칠맛이 도는 튀김옷 안에 씹히는 신선한 버섯은 입 속을 온통 숲의 향기로 가득 채운다. 쫀득쫀득한 포르치니의 식감은 고기를 씹는 것 같고, 기름을 잘 빼서 느끼함도 없이 담백하게 넘어간다. 그렇긴 해도 버섯만, 오직 버섯만 먹고 있기엔 좀 허전했다. 기다리던 '믹스드 애피타이저'가 뒤늦게 나왔다. 접시 위에는 -내 예상과 달리- 여러 가지 소시지와 햄이 가지런히 포개져 있다. 붉은 종이 같은 고기 조각들만 덩그러니. 이런 순간을 두고 '뭘 먹을 줄 모른다'라고 하는 건가 보다. 한 접시에 다양한 재료가 골고루 들어있는 메뉴, 가 여긴 없는 것인가. 누군가는 군침을 흘리며 맛있게 먹었을 살라미를 대충 잘라 입에 넣으며 '윽, 짜.' 그러고만 있었다.
코르토나에서는 마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카페테리아나 시장 같은 선택지는 없다. 심지어 빵집을 본 기억도 없다. 레스토랑의 디너 타임은 보통 7시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이 날 저녁에 난 7시에 딱 맞춰서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식사되느냐고 물었더니, 되긴 되는데 8시 반에 단체 예약이 있는데 괜찮냐고 한다. 난 혼자이고 충분히 그전에 식사를 마칠 것이라고 했더니 그럼 들어오란다.
이번엔 리조토를 주문하겠다는 생각으로 메뉴를 살폈다. '키안티 클래시코 와인 소스 리조토'. 그래, 너로 하자. 난 리조토와 함께 하우스 와인도 한 잔 주문했다.
주방으로 주문이 들어가고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내 테이블 근처에 서 있었다. 통째로 세를 낸 듯 텅 빈 레스토랑에 혼자 앉아 있는데 문이 빼꼼 열리더니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들어오려 했다. 아저씨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몇 번이고 손님들을 돌려보냈고 그렇게 나는 본의 아니게 특별한 손님이 되었다.
은은한 재즈가 흐르는 아늑한 공간에서 분위기를 즐기며 기다리고 있던 내게 주문하지 않은 접시가 하나 도착한다. 올리브 오일 소스가 뿌려진 구운 바게트 한 조각. "올해 수확한 걸로 만든 올리브 오일이야" 하는 말 끝에, 자랑스러움이 한 스푼 담겨있다. 스테이크 썰 듯 나이프로 잘라 한 입 먹어보니 바삭한 바게트와 새콤하고 촉촉한 소스의 맛이 기분을 즐겁게 한다.
여전히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아저씨. 어디에서 왔냐고 질문을 던지시더니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 듯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네가 시킨 거 말이야, 이따가 그거 혹시 이상하면 나한테 말해도 돼. 내가 바꿔 줄게."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아저씨의 배려 깊은 마음이 느껴져서 어떤 것이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얼마 후 요리가 나왔다. 볼이 아니라 하얀 접시 위에 얇게 깔린 붉은 리조토. 한마디로 '와인 죽'이 나온 것이다. 게다가 곁들일 와인잔까지 대기하고 있는 상황. 민망한 비주얼의 접시를 본 나는 아저씨를 보았고, 이제야 공감할 수 있게 된 그 상황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접시 둘레에 붉은 가루로 데코레이션까지 신경 쓴 '키안티 클래시코 와인 소스 리조토'는 한 입 먹어봤더니 또 맛이 없는 건 아니다. 좀 웃기긴 해도 그냥 먹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쌀만' 먹을 수는 없어서 사이드 메뉴로 야채 볶음 요리를 하나 더 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폭망한 나의 식사가 안쓰러운 듯한 아저씨가 잠시 있으라고 한다. 소주잔 크기의 작은 잔을 내밀길래 디저트려니 하고 받아 마셨다. 순간 '으악'하며 내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런 날 보며 아저씨가 웃으며 하는 말, "레몬첼로야!" 안 그래도 와인 한 잔 다 마셔서 취기가 오르는데 40도의 레몬첼로까지 더해진 것이다. 어질어질하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나는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다. 그럼 된 것 아닐까.
해질 무렵 방으로 돌아와 나만의 창을 열었다. 우주처럼 멀어 보이는 하늘 끝에서 토스카나의 태양이 지고 있다. 이제 다들 평화로운 하루를 마감하고 풍성한 식탁 앞에서 가족들과 긴 수다를 나누며 밤을 맞이할 것이다. 혼자이고 여행자인 나는 내일은 보지 못할 코르토나의 하늘을 실컷 바라보는 것으로 밤을 맞이한다.
이런 여행이 무얼 위한 것인지 다 알지는 못해도,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낀다. 지금 당장 하루라는 시간을 써버리는 것 같을지라도, 평생을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여행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시작하는 이유이다. 그로 인한 여행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남들은 우연이라 부를- 어떤 기회를 부르게 될 것만 알 뿐이다.
코르토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코르토나이지만 나는 2박 3일을 머물렀다. 어떤 이에겐 그저 그런 작은 마을 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살고 싶은 장소였다. 누군가는 반나절만 둘러보고도 전부를 알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코르토나가 궁금하다. 코르토나 사람들은 어디서 장을 보는지, 시뇨렐리 극장에선 무얼 상영하는지 알고 싶다. 양귀비나 해바라기는 언제 활짝 피는지, 그 꽃들의 파도는 어디서 볼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맛있는 식사를 주문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기차가 아니라 자동차를 타고 토스카나 대평원을 넘어 오랫동안 달려와야 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푸른 저녁에 노천카페에 앉아 인간적인 대화 속에 묻히고 싶다. 사소한 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배우고 싶다. 시간의 속도를 잊어버리는 감각을 익히고 싶다. 코르토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