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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주아 Sep 23. 2016

평화가 흐르는 아시시

나는 기쁨과 희망을 밟으며 길을 걸었다




아시시를 향하여 


아시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오직 한 장의 사진이 주었던 감동. 그것만 믿고 이곳을 여행지에 넣게 되었다. 사진 속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처럼 고운 연둣빛 잔디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 끝에는 아름답고 순수해 보이는 하얀 성당이 서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성당 뒤로는 높고 광활한 하늘이 파랗게 차올랐고, 눈부시게 투명한 햇살이 그곳을 온통 감싸고 있었다. 어떤 곳에 이런 세상이 있단 말인가. 나는 몹시도 궁금하고 설렜다.


코르토나를 떠나 아시시 역에 도착한다.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산 중턱에 있는 아시시 마을로 향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달린다. 코르토나에서 한 번 경험해 본 덕분에 이제 시골 마을을 찾아가는 일도 제법 익숙해졌다. 차창 밖의 사이프러스 나무나 올리브 나무도 반갑고 구불구불 회전을 거듭하는 버스길도 즐겁다. 

   


코르토나에서는 버스에서 내린 뒤 숙소까지 오르막을 한참 올랐어야 했는데, 아시시 숙소의 위치는 성문 바로 옆이었다. 사실 숙소를 예약할 때만 해도 언덕 위 마을의 특성을 잘 몰라서 내부 시설과 가격만으로 결정을 했는데 그 결과, 높은 곳에 위치했던 코르토나의 숙소는 천국 같은 전망을 가지게 되었고, 성문 옆 아시시의 숙소는 체크인 후 분명 계단을 올라간 2층이었음에도 방안에서는 반지하인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감사하다. 아늑하고 깨끗한 방은 조식까지 포함하여 1박에 49유로라는 착한 가격이고, 화통한 아내와 깐깐한 남편이 소박하게 투닥거리며 지키고 있는 프런트 데스크는 정겹다. 주로 프런트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내가 호텔로 들어설 때마다 안경 너머로 '차오(Ciao)'하며 빼먹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그 작은 한마디에 나는, 하루 종일 혼자였다가도 순간 혼자가 아닌 사람이 되곤 했다. 


HOTEL BERTI, ASSISI




평화의 마을


숙소를 나왔다. 맑은 가을날 아시시의 하늘은 부드럽다. 숙소 옆 골목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에는 작은 기념품샵들이 늘어서있다. 묵주와 십자가, 성인과 천사들의 조각상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고 대성당의 풍경을 담은 자석과 액자, 엽서들도 빽빽하게 걸려있다. 저마다 아시시는 이런 곳이라며, 자기 사는 곳을 자랑한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긴 지 불과 5분, 몇 개의 상점들을 지나자 벌써 골목 끝으로는 대성당 광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점차 커다랗게 다가오는 하얀 성당의 옆모습. 그 앞에 서면 나는 또 무엇을 느끼게 될까. 



대성당 입구의 기다란 광장을 가로지르며 걷는다. 아이보리와 연핑크빛이 도는 광장의 돌벽과 바닥 위로 오후의 햇볕이 한가득 머무르고 있다. 양 옆으로 서 있는 수십 개의 기둥들과 둥근 아치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며 길을 안내한다. 아늑하고 고요하다. 이곳은 내게 아무런 유혹도 숙제도 건네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모든 걱정들이 빠져나가고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되는 것, 그저 하늘을 보고 기뻐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감사하는 것, 그런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곳이다. 

위층의 대성당 입구 쪽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오니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광장의 기다란 아치 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진 초록의 움브리아 대평원도 드러난다. 바람은 잠잠하고 드넓은 세상은 한없이 풍요롭다. 이따금씩 이 거대하게 열린 하늘 위로 까만 점 같은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닌다. 나는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바라보는 것 밖에 다른 것은 모르겠다. 그것은 이미 바라는 것 없는 기도이고, 딱히 무엇에 대해서라고 말할 수 없는 감사이다. 그냥 '평화' 그 자체.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마치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당은 그 자태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원래 이 언덕은 죄인들이 처형되는 '지옥의 언덕'이었다고 한다. 비참하고 슬픈 장소였던 이 자리가 지금과 같이 아름다운 언덕으로 바뀌게 된 것은 프란치스코 성인 때문이었다. 1226년 10월 3일 죽음을 맞이한 프란치스코는 이 언덕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 언덕과 닮았다는 이유로 이곳에 묻히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228년, 프란치스코는 성인으로 시성 되었고 그가 묻힌 자리에 이 아름다운 대성당이 꽃피게 된 것이었다. 언덕 위의 무겁고 어두웠던 수많은 눈물들은 지금쯤 그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있을까. 이제 이 언덕에는 더 이상 처형되는 죄인의 눈물은 없을 것이다. 용서받는 죄인의 눈물만 있을 뿐.      



성당을 한눈에 담기 위해 잔디 위쪽까지 올라가 본다. 천천히 잔디를 밟으며 걸음을 옮긴다. 눈 닿는 곳마다 하늘이 있고 나무가 있다. 잔디 끝에 홀로 서있는 올리브 나무까지 가봐야겠다. 

올리브 나무는 평화의 상징으로 심겨있는 듯하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세상을 멸하는 물을 피해 방주 속에 있던 노아는 비가 그친 뒤 물이 좀 줄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를 내보낸다. 첫 번째는 실패였다. 비둘기는 발붙일 땅을 찾지 못하고 비행만 하다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온다. 노아는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다시 비둘기를 내보내고, 두 번째 비행에서 저녁쯤 돌아온 비둘기는 부리에 금방 딴 올리브 잎을 물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생명이 자라날 수 있는 평화의 신호였던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잔디의 올리브 나무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올리브 나무인지도 모르겠다. 그 평화의 그늘에 서서 나는 마침내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을 바라본다. 

연둣빛 잔디와 파란색 하늘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순백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정면에서 마주한 성당의 얼굴은 꾸밈없는 순결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정갈하게 손질되어 있는 푸른 잔디는 무슨 이야기라도 들어줄 것 같은 넓은 가슴으로 팔을 벌린다. 이토록 높은 언덕에서 하늘과 맞닿아 세상의 모든 소망의 목소리를 올려주고 땅의 온갖 풍요를 위해 축복을 내리고 있다. 어렴풋이 기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나에게 기대어 보라, 하는 듯하다. 의지하기보다는 홀로 서는 것이 필요한 날들이 많았지만 오늘만큼은 기대는 마음도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안심하고 기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감사한 일인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아시시는 그렇게 나의 마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순례의 길에 묻다


아시시에서는 담배 피우는 근심 어린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시시에서는 길에서 키스하는 불타는 연인도 보지 못했다. 무려 이탈리아에서 말이다. 아시시의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순례의 길 위에 있는 믿음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갔던 길을 따라 밟으며 자신들의 삶을 가꾸어보려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떨어뜨리고 간 웃음과 기쁨, 희망과 평안을 밟으며 나의 길을 걸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래 광장에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순례 여행을 온 사람들이 무리 지어 찬송가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다. 너무나도 간절히 오고 싶었던 성지에 도착한 설렘과 환희가 음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같은 것을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끈끈하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 온 것 마냥 줄을 서고 인원 점검을 하며 서로를 챙긴다. 이렇게 행복해하는 어른들을 본 기억이 있었던가, 싶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사제들은 목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온몸을 덮는 검은 사제복을 입고 하얀 허리끈을 늘어뜨린 채 순례자를 맞이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떤 사람이길래 이들이 그토록 존경하고 경배하며 삶을 바쳐 따르고자 하는 걸까.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 하면서도 그에 대한 호기심은 피할 수 없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d'Assisi1181~1226)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다. 하지만 청년 시절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뒤 상속권마저 포기하고 부친과 절연한 뒤 가난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는 낡고 해어진 옷에 맨발로 다니며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파한다. 그러자 그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동행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작은 형제회'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옛 나환자 수용소에서 어떠한 사유 재산도 갖지 않고 단순한 삶을 살아간다. 당시 그들의 진심 어린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작은 형제회는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되었고, 그가 평신도들을 위해 만든 생활 규범은 이탈리아를 너머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다. 그는 가난을 본질로 삼고 프란치스코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절대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사랑한 진심 어린 삶의 방식이 수백 년을 지나도록 온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놀라웠다.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도 이 성인의 이름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검소한 삶의 모습과 외면받는 이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겸손의 영성이 오늘도 세상에 사랑을 전하고 있으니, 그는 죽어서도 살아있는 것이리라.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은 악을 향해서도 질주하고 선을 향해서도 뻗어나간다. 어떤 사람은 권력과 이익을 좇아 전쟁을 일으키고, 어떤 사람은 가난과 희생을 좇아 평화를 일으킨다. 나는 그분의 발끝 아래 서서 묻는다. '저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아시시의 골목길을 걷다


이제 마을을 돌아볼 차례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을 뒤로하고 골목 속으로 들어간다. 마을 전체가 조용하다. 집들도 모두 소박하다. 코르토나가 아기자기하고 달콤한 분위기의 마을이었다면, 아시시는 차분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 마을이다. 이곳은 온통 종교적인 곳이라 느껴지지만 단순한 여행자에게는 위로와 휴식의 성지다. 

특별히 북적거리는 쇼핑의 거리는 없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은 성 프란치스코 성당인 셈이다. 코무네 광장도 10월의 비수기여서 그런지 한적하다. 커피를 마시며 관광객의 수다를 떠는 인파도, 쇼핑백을 몇 개씩이나 들고 신이 나서 걸어가는 사람들도 없다. 어째 뭔가 좀 심심한데, 싶다.  


코무네 광장의 분수대
미네르바 신전 안에서 바라본 코무네 광장의 거리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한다. 갈래길 앞에서 선택을 하고, 아치가 반겨주면 그곳으로 들어간다. 모퉁이가 나타나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보고 싶어 다가가고, 계단이 나타나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고 싶어 올라간다. 그렇게 골목은 자꾸만 자꾸만 따라오라 나를 이끌었다. 

그리 색채가 많지 않은 아시시의 골목길은 자극적이지 않다. 자극은 사라진다. 새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산책. 마음을 괴롭히던 찌꺼기들은 점차 가라앉고 내 안에는 맑은 것들만 차오른다. 사람은 없고 모르는 길 위에 홀로 서 있어도 길을 잃은 것이 아니어서 좋았다. 길을 잃는다고 해도 이곳의 어느 대문을 두드린들 차가운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 믿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순한 마음을 불러내 주는 곳이 아시시다. 



한참을 걷다 어느 골목 길가에 놓인 벤치를 발견했다. 등을 기대고 올려다본 하늘에는 부드러운 구름 뭉치들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너무 고요하여 구름들이 서로를 밀치는 소리가 들리려 한다. 햇살이 담벼락에 내려앉다가 들킬 것만 같다. 몸은 거의 눕다시피 흘러내린다. 마음껏 쉬자. 몸이 쉼조차 잊고 모든 것을 멈춘다. 영혼은 저 높은 하늘과 끝없이 눈맞춤을 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새파란 하늘이 고맙다. 구름들의 순례도 고맙다. 그들이 없었다면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구름들은 어디까지 흘러가게 되는 것일까. 이곳에서 가져간 평화의 공기를 다른 곳에도 전해주는 것일까. 이 하늘을 가져가고 싶단 생각에 사진을 찰칵, 찍는다. 나에게 한 장의 사진은 하나의 문이다. 그 문을 통해 내가 담아두었던 세상 속, 아니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라도 꼭 돌아오고 싶을 만큼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길은 나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그저 아시시의 어느 곳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정처 없이 걷다가 마주한 움브리아의 대평원. 이걸 보라고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라며, 길이 내심 뿌듯해하는 듯하다. 무릎만큼 낮은 담장 아래로 올리브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아시시의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뒤로는 아득히 먼 곳까지 뻗어있는 움브리아의 평야가 있고 그 위로 한눈에 다 담을 수 없는 하늘이 펼쳐진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마신다. 그 바람결이 온몸을 구석구석 부풀려 놓는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미소다.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올리브 나무를 이렇게 많이, 이토록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처음이다. 아시시의 올리브 나무는 잎새마다 평화를 머금고 열매마다 소망을 매달고 있는 듯하다. 아시시와 올리브 나무는 참 잘 어울린다. 이제 올리브유를 먹을 때마다 아시시 생각을 할 것 같다. 





아이처럼 순수하게


꼬무네 광장에서 산타 키아라 성당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내 앞을 가로막는 한 소년이 나타났다. 일부러 가로막으려 했던 것은 아니고 소년은 그저 자신의 길을 가느라 열심일 뿐이었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였던 소년은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서 무슨 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겁게 걷고 있었다. 나는 소년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박자를 맞추며 뒤따라 걸었다. 소년은 이곳이 어디든 상관없어 보였다. 아이는 내면 속 자신만의 어떤 상상 속 세상 위를 걸어가며 신이 나 있었다. 아니다. 그렇게 신이 난 걸 보면 걷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 그랬다. 우리는 세계를 만들 줄 알았으며, 그 안에서 신나게 놀 줄 아는 존재들이었다. 모래로 성을 쌓고 성주가 되어도, 그 성이 자신의 소유인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설사 그 성이 허물어진다 해도 상관없었다. 다시 만들면 되니까, 내일 또 놀면 되니까. 우리는 사라질 줄 알면서도 늘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곤 했다. 

어른이 된 나는 나의 만족을 바깥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바깥이 내 마음대로 되어 지기를 바라는 욕심과 그렇게 될 리 없는 세상 속에서 끙끙거리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나보다도 뒤에 있던 소년의 아버지는 넘어지고 다친다며 연신 잔소리를 보내지만 소년은 자신만의 여행에 빠져 다른 목소리를 듣는 중이다. 아름다운 멜로디의 낯선 노래를 부르는 소년. 그의 노래가 내게 말한다. 마음으로 즐거워지는 법, 그걸 되찾아야 한다고. 



소년과 헤어지고 키아라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문 앞에는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2시가 되어야 다시 문이 열린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난감한 그때 눈에 들어온 성당 앞 젤라토 가게. 젤라토를 먹으며 기다려야겠다 생각한 나는 가게로 발길을 향했다. 가게 앞에는 '한 스쿱에 2유로'라고 쓰여 있다. 안으로 들어가 젤라토가 진열되어 있는 유리 속을 들여다본다. 딸기색, 레몬색, 초콜릿색 젤라토들을 향해 눈을 굴리자 침이 스르르 고인다. '피스타치오로 주세요'하는 내 말에 여자 점원은 대뜸 하나 더 골라보라고 한다. 하나만 고르는 것 아니냐고 하니 한 가지 더 주겠다고 한다. 아시시의 인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럼 추천을 해달라고 했고, 그렇게 나의 콘 위로 쌓인 피스타치오 위에는 다시 티라미수 한 스쿱이 더 얹히게 되었다. 젤라토의 맛은 고소하고 달콤하다. 이탈리아에서 먹어본 젤라토는 실패한 적이 없다.   



부드러운 젤라토를 한입 한입 베어 물며 키아라 성당 앞 분수대에 앉는다. 모두들 2시가 되길 기다리며 아름다운 아시시의 풍경을 즐기거나 넋 놓고 앉아 쉬고 있다. 그 사이를 한 소녀만이 바쁘게 움직이며 왔다 갔다 한다. 여섯 살쯤 되었을까. 당차 보이는 어린 소녀는 성당 앞마당에 모여든 비둘기들을 진두지휘 한다. 모이를 뿌려주고 잘 먹는지 살펴본다. 뭔가 부족하다 싶은 쪽은 보살펴주고 싸움이라도 날 것 같으면 중재도 한다. 매우 진지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소녀의 얼굴에 쓰여 있다. 소녀가 만드는 공평한 질서 아래 비둘기들은 열심히 먹을 것을 챙긴다. 

소녀는 하나의 의식을 마치듯 일을 마무리하더니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당당히 걸어온다. 소녀가 사랑스러우면서도 뭐라 먼저 말을 걸 용기도 없는 나의 눈빛을 보았는지, '차오'하며 근엄하면서도 순수하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차오.' 난 수줍게 답한다. 아무래도 난 이 아이를 따라다니며 좀 배워야 할 듯싶다.  


아시시의 가을이 깊어간다


좁은 골목에 딱 어울리는 귀여운 피아트 자동차


앤틱한 중세 분위기의 왁스 씰


어느 레스토랑 앞에서 햇볕을 쬐는 의자 둘



아름다운 움브리아 평야의 소박한 농가들




해가 저무는 아시시 


피렌체의 두오모처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몇 번이고 다시 보아도 감동적이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 골목을 내려와 다시 성당 앞에 도착한다. 사람들은 낮은 난간에 걸터앉아 다리를 건들거리며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한다. 마지막 햇볕의 온기를 받으며 오직 그것만을 위해 앉아 있기도 한다. 나는 성당의 정면이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또 본다. 



성당 앞 잔디 위에는 누군가 말을 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성당을,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하는 것 같고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세상을 향하는 것 같다. 그는 왜 고개를 숙이고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잔디 한켠에서 동판을 발견한다. 동판에는 조각상의 이름과 함께 이런 글귀가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적혀 있다.  


IL RITORNO DI FRANCESCO 

"Lord, what do you want me to do?" 
"Go back to your city and you will be told what you must do" 
At the break of day, Francis, with his reformed inner self,
desired only to conform to the will of God.

프란치스코의 귀환

"주여, 제가 무엇을 하길 바라시나이까?"
"너의 도시로 돌아가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듣게 될 것이다"
동이 틀 무렵, 프란시스는 내면을 새롭게 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초기 청년 시절에 군대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떠난 길에서 환시를 체험하고 아시시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귀환이 한 성인의 탄생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러한 거룩한 체험과는 거리가 멀지만, 프란치스코의 순종의 어깨 위에서 자신을 버릴 수 있었던 희생과 용기를 본다. 그의 모습을 보며 내가 이렇게도 움켜잡고 있는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는 나보다 약한 이들을 위한 마음이 자라날 수 있기를. 





아시시를 떠나며


아시시는 내가 좀 더 아름다운 것을
바랄 수 있게 해주었다.


아시시는 평화의 마을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시시로 들어왔다가 평화의 세례를 흠뻑 받고 떠나게 되었다. 소박한 중세 건물들과 탁 트인 움브리아 대평원, 고즈넉한 골목들만으로도 여행의 이유는 충분했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으로부터 와 닿는 감동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었다. 마음속에 바라는 것들이 이런 평화, 이런 희생, 이런 순수이면 좋으련만 언젠가부터 위시 리스트는 모두 좋은 집, 좋은 직장, 좋은 옷, 좋은 가방이었던 것 같다.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좁은 시야로 주어지는 유혹을 향해 소망을 키웠을 것이다. 이렇게 여행을 하며 하나씩 깨달을 때마다 나는 점점 더 믿게 된다. 여행보다 강력하게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어떤 곳으로의 여행은 반드시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킨다는 것을. 

아시시는 내가 좀 더 아름다운 것을 바랄 수 있게 해주었다. 마음으로 즐거워지는 법도 회복하라 해주었다. 그리고 온몸과 영혼에 평화를 불어넣어 주었다. 아시시는 그렇게 세상을 축복하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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