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의 마지막 주.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 라는 질문에 아빠는 고작 바다를 보고 싶다고, 오랜 만에 당일치기로 해운대에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빠가 폐암 말기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1년을 넘기고 있던 때였으므로 나는 세계의 끝까지라도 데려가 줄 수 있는 마음이었는데, 우리는 고작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해운대역에 내렸다.
짠내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해수욕장은 성수기가 지나 한산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여름이었다. 해변에 도착하자 아빠는 물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우리는 모래사장 위에서 알록달록한 파라솔도 빌렸고 급히 남자 수영복도 하나 샀다. 파도가 스러지는 얕은 물가에서 앙상한 몸에 조금씩 물을 끼얹고 점점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아빠를 나는 파라솔 그늘 아래 까슬한 돗자리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는 수영을 못하기에 나는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 한데 시간이 흐르자 이상하게도 억울한 감정이 몰려왔다. 반대였는데 반대여야 하는데……. 콩알만한 내가 부서지는 물거품에 까르르거리고 기둥처럼 커다란 아빠가 여기서 지켜봐야 하는데 어째서 두 사람이 바뀌었단 말인가. 한 아이의 거인이 어쩌면 이토록, 고작 나 정도가 지켜줘야할만큼 약하고 위태롭게 쪼그라들 수 있는가. 시간이 아빠에게 한 일이 폭력처럼 느껴졌다.
아지랑이처럼 눈자위를 어지럽히는 뜨거움 너머로 저기 멀리 제법 깊은 물속에서 파도를 타는 한 점의 몸짓이 마치 기쁨의 춤사위인듯 아른거렸다.
한참 후 바다에서 나온 아빠가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내게 말을 걸었고 신난 아이처럼 미소를 지었다. 세운 두 무릎 위로 팔을 걸치고 앉아 이따금 고개를 바다쪽으로 돌려 아빠만의 바다에 대해 말할때 나는 가만히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화는 짧았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으므로 아빠는 곧바로 나에게 등을 보였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빛나는 바다를 향해 푹푹 꺼지는 모래 위를 저벅저벅 걸어서 아빠는 점점 멀어져갔다. 여름의 끝자락이 무심히 나풀거리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