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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hn Yoon Feb 26. 2024

마추픽추의 불가사의



인간의 이해나 사고의 수준을 넘어선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나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말들한다.


주전 2세기의 시인이었던

시돈의 안티파트로스(Antipatros)는 

고대의 경이롭고 놀라운 건축물 가운데

7개를 선정해서 7대 불가사의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느니

혹은 세계 7대 자연 경관이라는 등의 아류를 만들어냈다.


사실 안티파트로스가 의미했던 것은

불가사의가 아니라 경이, 혹은 놀라움에 가깝다.

영어로는 mystery가 아닌 wonder, 혹은 marvel의 뜻이다.  


그런데 인간의 건축물 가운데는

경이나 경탄을 넘어선 정말 놀랍고

불가사의한 두 개의 건축물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기원 전의 건축물인 피라미드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 후의 건축물인 마추픽추이다.



마추픽추는 누구나 다 아는대로

지금의 남미 여러 나라에 걸쳐있던 잉카 제국의 유산이다.


간혹 남미의 잉카 제국과

중미의 마야 문명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잉카는 단지 제국일 뿐 문명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마야 문명과 잉카 제국은 

일부 시대가 겹쳐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대와 지리적 위치는 서로 다르다.



마추픽추가 

불가사의한 건축물인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그 위치와 용도, 그리고 건축 기술 때문이다.



마추픽추는 

공중도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마추픽추가 해발 약 2,400m의 고지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잉카 제국의 중심지였던 쿠스코가 

해발 3,400m에 건설된 것과 비교하면

마추픽추의 위치가 낮은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지만


쿠스코는 안데스 산맥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건축물을 평지에서 짓는 것과 같았지만


마추픽추는 말 그대로

산꼭대기, 특히 험준한 산악 위에 짓는 것이었기에

당시의 건축 기술과 인력으로는 엄청나게 난해한 공사였을 것이다.



마추픽추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11년, 미국의 고고학자이자

후에 정치가가 된 하이럼 빙엄에 의해서였다.


빙엄 이전에

마추픽추를 발견하거나

방문한 서양인들도 있었지만


하이럼 빙엄에 의해

마추픽추가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오늘날 마추픽추의 발견자는 빙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러면 왜 마추픽추가

이처럼 건설하기 어려운

험준한 산악 지대에 지어졌을까?   


마추픽추는

교통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접근하기가 쉽지않은 험준한 지역에 있다.


그렇다면

교통과 이동 수단이

지금보다 훨씬 더 불편했던 과거에

어떻게 이런 산 속에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일부 사람들은

스페인 침략자들로부터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마추픽추가 이곳에 건축되었다고 주장한다.


만약 마추픽추가

스페인 군대가 침략하던 시절에 지어졌다면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사 결과

마추 픽추는 스페인 군대가 

침략하기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오늘날 남아있는 건축물 대다수도

스페인 군대가 침략하기 100년도 더 전인

1,450∼1,46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말하자면 마추픽추는 

스페인 군대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불가사의한 미스테리가 시작된다.



그럼 마추픽추의 용도는 무엇일까?

단순히 생활을 위해서 이곳에 집을 지었을까?


이곳에 집을 짓는 것은

평지나 아랫 동네에 집을 짓는 것보다

몇 배, 혹은 몇 십배 더 어려웠을 것이다.


바보가 아니고서는,

아니 바보라 할지라도

이런 곳에 집을 짓지는 않는다.


게다가 마추픽추에는

수백명이 먹고 지낼 수 있는

양식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마추픽추의 건물들이 생활을 위한 것이 아닌

신에게 제사하는 장소나 왕궁, 혹은 왕의 휴식처였다고 주장한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지상보다는 더 높은 곳에서 제사할 때

신이 더 잘 응답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이곳은 신에게 제사하는 장소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추픽추에 제사할 때 사용하는

제단들이 있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면

이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마추픽추 주변 뿐만 아니라

안데스 산맥에는 마추픽추보다 훨씬 더 높은 

건축하기 좋은 산들이 널려 있었는데 왜 하필 여기에 지었을까? 


이러한 반론에

그들은 납득할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마추픽추가 왕의 휴식처거나

왕궁이었다는 주장의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곳에서 살던 사람의 뼈에서 

당시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던 

기생충의 흔적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협소하고 무식한 주장인 이유는 이렇다.


당시에 잉카는 대제국이었기 때문에

이미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있어서

각자가 이미 서로 다른 기생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미스테리가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당시의 건축 기술로 

이런 놀라운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마추픽추는 상당수가 

크고 작은 바윗돌로 지어졌는데

그 가운데 어떤 것은 20톤이 넘는 것들도 있다.


잉카 제국 시대에

주로 사용된 무기나 도구는

철기 도구가 아닌 청동기 도구였다.

말하자면 잉카제국은 청동기 문화가 대세인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잉카제국엔 바퀴가 없었기 때문에

무거운 돌을 이동할 수 있는 운반 수단이 없었다.


그런데 철을 사용하지도 않고

어떻게 저렇게 큰 돌들을 자유자재로 자르고 

정교한 모양을 만들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돌들을 

어떻게 운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다.



마지막으로 마추픽추에 관한 

미스테리가 하나 더 남아 있는데

그것은 마추픽추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났다는 것이다.


북미에 거주하던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모든 식량과 거주지를 버려두고

갑자기 어디론가 멀리 떠났던 것처럼


마추픽추에 거주하던 잉카인들도 

그들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났던 것이다.

여기에는 그럴싸한 이유들이 있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어쨌든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마추픽추는 경이로운 곳인 동시에 불가사의한 곳이다.



마추픽추를 가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성계투어를 통해 친체로,

살리네라스, 오얀따이땀보까지 간 다음에

그곳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가서

거기서 하룻밤 숙박한 다음에 다음날 아침 마추픽추에 가는 것이다.



오얀따이땀보에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가는 기차는


평균 시속 약 40km의 속도로

두 시간 남짓 가는데 왕복 비용이 15만원을 넘는다.

시간 및 거리대비 요금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 비용은

터무니없이 비싸게 느껴지는데

페루 정부는 이를 통해 막대한 수입을 얻는다.


만약 비가 많이 와서

마추픽추로 가는 길이 끊긴다든지

혹은 다른 이유로 가는 길이 끊긴다든지 하면

정부는 기차비용으로만 하루에 수억원 이상의 수입이 줄어든다.  


그래서

페루 국민들은 

무슨 데모를 할 때마다

가장 먼저 마추픽추로 가는 길을 막아버린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정부를 향해 그들의 요구를 받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이유 때문에

페루에서 시위나 데모가 벌어지면

애꿎은 관광객만 피해를 보기 일쑤인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남미에 오기는 쉽지 않은 바


페루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모든 길과 교통편이 막히기 때문에 

스케줄은 순식간에 뒤듵리게 되고 모든 여행은 악몽이 되게된다.



한 때 영국 BBC의 영향 때문에

죽기 전에 꼭 가보야야 할 50 장소를 본따서


죽기 전에, 

어쩌고 저쩌고 하는 10장소,

혹은 어쩌고 저쩌고 100장소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마추픽추였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추픽추는 죽기 전에 정말로 

한 번 가 보아야할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미를 상징하는

단 하나의 건축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추픽추를 꼽을 것이다.


그리고 남미에서 가고싶은

단 하나의 장소가 어디냐는 질문을 묻는다면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마추픽추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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