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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Feb 25. 2023

2월에 우연히 발견한 나의 일몰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뜨거운 태양이 서쪽 산에 동그랗게 떠 있을 때가 있었다. 오후 5시 30분부터 5시 50분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사무실에 있는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보라! 뜨거운 태양장군님


한때 나는 저 창문 아래에서 용광로 같은 태양의 열기를 내 온 등으로 받아내며 일을 했었다. 누군가의 창의적 발상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손에서 나온 찰나의 위치 선정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활활 타는 참나무 장작들의 불꽃들이 튀어대는 바로 앞자리에 3대의 컴퓨터를 설치했다. 나는 그 자리 가운데 앉았다. 오후가 되면 등에서 땀이 흘렀고 컴퓨터 모니터는 반사되는 빛으로 눈을 날카롭게 찔렀다.


나와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유리창에 검은 부직포를 붙이는 것이었다. 이미 있었던 싸구려 투명빛 흰색 블라인드로는 역부족이었다. 누군가는 달력을 덕지덕지 붙였다. 죄 없는 a4 종이들도 끌려가서 영혼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지고 서쪽으로 가는 태양장군님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1년 10개월 동안 싸웠지만 우리는 패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졌잘싸'였다. 내가 태워지진 않았으니 말이다.


자리를 옮긴 후 창문에 붙어 태양장군님에 맞서 열심히 싸워 준 병사들을 다 떼어냈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검은색이 회색이 되고 흰색이 누런 색이 된 그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사무실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했다.


태양이 산 아래로


에너지 넘치는 골칫거리 태양장군님은 우리가 자리를 바꾸고 보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강렬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무엇이든 존재만으로 골칫거리는 없다. 나의 자리에서 또는 너의 자리에서 상대적으로 골칫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냥 보면 눈이 부시게 빛이 나는 거 뿐인데. 그 빛이 너무 가까운 사람에겐 시력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일몰 소문이 퍼지면서 일몰의 시간이 오면 직원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가장 말수가 적었던 50대 중반의 주무관님은 더 멋진 일몰 사진을 찍기 위해 옥상에 조용히 올라가셨다.


우리는 하루 종일 사업장에서 제출한 서류와 국가의 각종 시스템 속의 사실들과 틀린 그림 찾기를 한다. 그런 우리에게 일몰의 시간은 보이지 않았다. 이유 없이 어두움이 왔고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면 더욱 짙은 어두움만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2년 만에 만난 우리 사무실의 일몰, 나의 일몰, 우리의 일몰.


인사이동으로 어수선했던 2월의 나날들, 누군가는 새로운 업무를 배우느라 허덕이고 누군가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본인의 실수를 끝없이 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다시 어디론가 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소란했던 2월은 우리의 일몰과 함께 사라지고, 벚꽃이 피는 3월이 온다.


우리의 공간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만나는 다시 3월, 다시 벚꽃, 그리고 모성업무의 대란이 일어나는 봄을 이제는 알고 기다려본다.


첫해는 이게 뭐지? 두 번째 해는 온다 온다 헉, 그리고 올해는 음 올게 오겠군 하면서 여유로운 척 허세를 부려본다. ^^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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