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월 어김없이 인사이동은 시작됐다.
이제 3년 차인 나도 작년과는 다르게 니와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을 보내게 됐다.
나의 P주무관
2020년 10월 공시생들이 모여있던 한 인터넷 카페에서 만나 함께 면접 스터디를 하고, 고양시 킨텍스에 면접을 보러 가고, 같은 지청, 같은 고용센터에 발령받아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P 주무관이 타청으로 멀리 가게 됐다.
P주무관에겐 잘 된 일이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지만 송별회의 시간이 올수록 마음은 아려왔다. 팀은 달랐던 나와 P주무관은 종종 퇴근 후 치맥을 하면서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었던 힘든 속사정들을 얘기했었다. 편견 없이 들어주었고 서로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던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그런 말 대신에 구체적인 방법들을 논했었다. 둘 다 이겨내려 애썼고 그 애씀 들을 응원했었다.
P주무관은 나보다 10살이나 어렸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았었다. 감탄하며 본받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거리로 가버리니 마음이 허하다.
갈뻔했지만 가지 않게 된 나의 k주무관
나에게 기업지원팀의 고기와 소맥의 맛을 알려주신 분이다. K주무관은 2년 선배로 내가 겪고 있는 모든 헛발질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K주무관은 나와는 띠동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12살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나를 후배 동료로 편하게 챙겨주셨다. 특히 스트레스가 쌓인 날들은 반드시 고기와 소맥을 함께 했다. 그다음 날 우리는 항상 그랬듯이 다시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오늘을 이야기했다. 기분 나쁜 어제를 깔끔하게 끝내는 것에 합이 잘 맞는 동료였다.
얼마 전 속눈썸 펌을 해서 예뻐진 K주무관은 근로감독관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못 갔다. 예상과 다르게 k주무관은 인사 발령 나기 하루 전 현재 팀에 남는 걸로 결정 났다. 가지 않아 나는 좋은데 K주무관은 조금 섭섭해했다.
( 그날, 인사는 끝까지 최종 발령문 나올 때까지 알 수 없다는 교훈을 깨달으며 우린 닭껍질 꼬치가 맛있는 곳에 가서 하이볼을 마셨다. )
그리고 이제야 보내는 우리의 L주무관
1년 전에 갔는데 이제야 작별을 고합니다. 우리 팀 모두 L주무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순박하게 웃고 있었던 L주무관의 사진들을 우리는 그대로 저장해 놓았습니다. 어제 나는 L주무관님을 생각했습니다. 1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조용히 K주무관님도 오셔서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샘, 1년 전 오늘이었네요"
1년 정도 지나니 눈물보단 아쉬움이 앞섭니다. 우리 팀 똑똑이 L주무관님, 늘 그렇듯 담백하게 그만 짧게 '안녕' 합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