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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Nov 27. 2022

젊은 신규 주무관들의 해맑은 고민

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로운 공직생활

그 티 없음에 잠깐 놀랐지만, 뒤돌아보니 내 마음에 따뜻한 난로가 들어와 있었다.



얼마 전, 2020년 이후 신규 입사자들을 대상으로 각 청별 워크숍이 있었다. 당일치기 행사라 참가하는 게 꽤 고민이 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오전 00역 , 집결시간이 9시 20분, 우리 집에서 그 장소, 그 시간까지 가려면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야 한다. 

그나마 기차역까지 남편이 데려다주는데도 저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전국을 크게 6개로 나눠 큰 청들을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청, 부산청, 중부청 이렇게 말이다. 특히 중부청의 경우는 경기도와 강원도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본청 근처에 살지 않는다면 나처럼 본청에 가려면 최소 2시간 전후는 기본 걸린다.


그래서 몇몇 우리 지청 동기들은 아예 신청을 안 하기도 했다. 나도 이런 이유로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 그래도 매일 똑같은 사무실에서 결재 버튼을 누르고, 사업장 조사를 하는 것보단 5프로 정도는 나을 거 같아서 가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브런치의 글감을 찾기 위해서 ㅎ)


내 기준으로는 산 넘고 물 건너 워크숍 장소에 도착했다. 좀 일찍 도착해서 편의점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고 있는데 큰 역 광장이라 그런지 청자켓을 입거나 후드티에 운동화만 신은 대학생들이 한 두 명씩 눈에 띄었다. 겨울인데 옷차림이 가을 운동회의 운동장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날도 워낙 따뜻했다.


딱히 우리 부(고용노동부) 직원처럼 보이는 행인들이 없었다. 내가 잘못 왔나? 생각할 때쯤 저쪽에 마이크와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 저분이 담당자인가 보다' 하고 바로 갔다. 인사를 하고 필요 물품들을 받았다. 그때 이런 모습을 보고 한 두 명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까 내가 스치며 대학생들이라 생각했던, 청자켓, 후드티, 운동화 등등 분들이 우르르 오셨다. 짧은 상고머리에 까만 안경테의 둥근 안경을 끼고 있는 분은 조금 과장을 하면 고3 수험생 같았다. 빠르게 각 조원들이 모여 본인 소개를 했다. 우리 조는 총 6명이었는데 모두 다른 지청에서 근무 중이었다.


업무도 다양했는데 두 분은 근로감독관, 두 분은 국민취업지원제도 심사와 접수, 한분은 직업능력개발팀에서 훈련기관 심사와 관리 그리고 나는 기업지원팀에서 모성 업무를 했다. 하지만 연령대는 나를 제외하고 모두 스물일곱, 스물여덟이었다.  


일하는 도시도 다르고 하는 업무도 달랐기에 서로에게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다. 눈이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게다가 워크숍 날짜가 월급 지급일이었다. 근무한 지 2년 미만인 신규 주무관들은 "금방 사라질 돈이지만 일단 핸드폰에 은행 알림을 보니 기분이 설렌다"며  모두 다 같이 웃었다. 그러자 옆에 주무관님이 "전 일부러 숫자는 자세히 안 봐요. 그래야 좋은 기분 더 오래 지속되는 것 같더라고요. 참고하세요"라고 하니 다른 몇몇 주무관님들도 "나도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하면서 또 웃었다.


이날 우리는 오랜만에 사무실을 나와 할아버지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어느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어느 유명한 시장의 역사를 좁은 골목길에서 다소곳하게 경청했다. 서서히 다리가 아파 올 정도로 긴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 다들 기분이 마냥 좋았다.


잠깐 쉬는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가 "카페에 갈까요?" 하는 말에 "네" 하고 우리 모두 그 분따라 이름도 모르는 커피숍 같은  빵집에 들어갔다. 우리 조원들은 현재 우리의 공통 관심사인 '각 지청과 센터의 분위기나 전설적인 선배 주무관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 순서는 없었지만 흐름은 동일한 이야기들을 했다 


근로감독관 업무를 하고 있는 신규 주무관님들은 조사도 어렵지만 보고서를 쓰는 게 힘들다고 하셨다. 대학생 때도 겨우 써냈는데 지금은 본인이 써낸 보고서가 한 사업주, 한 근로자의 손해와 이익에 직결되는 것을 알기에 한 글자 한 글자가 무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고용센터에서 심사 업무를 하는 주무관들도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 행정처분을 내려야 할 때 마지막까지 검토를 거듭해보지만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위에 팀장님, 과장님들이 내 서류를 '아직은' 검토해준다는 것이라고 했다.  


민원인을 겪으면서 사람에 대한 회의와 불신도 커져가고 있다고 했다. 본인이 저지른 각종 불법적인 행위들을 고해성사하듯 말하고 '당신이 어디까지 나를 고소 고발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는 황당한 고소 유발러들이 있는 가 하면 아무런 증거 없이 나를 도와달라는 근로자에게 증거 불충분을 통보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협박 전화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했다.


분위기가 가라앉을 뻔했으나 이때 주문한 음료들이 등장했다. 다 커피인 줄 알았는데 선명한 노란색 망고가 가득한 망고주스가 있었다. 망고주스를 주문한 주무관을 합리적으로 추론해보면서 다시 분위기는 활기를 되찾았다. 기세를 몰아 섬(육지와 다리는 연결됨)에 근무 중인 다른 한 분이 소속 지청에 내려오는 전설들을 푸셨다. 민원인이 일을 하고 돈을 못 받았다고 신고를 했는데 조사해보니 돈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 받기로 한 것이 조개 한 더미였다고 한다. 조개의 화폐의 가치에 대해 보고서를 어떻게 쓸지 담당 주무관이 엄청 고민했다고 한다. 이를 본 당시 팀장님이 조개를 주기로 한 사업주를 설득해 근로자에게 조개를 주면서 사건은 해결됐다고 한다. 다시 한참을 웃었다. 너무 오래 웃는 주무관님이 있었는데 그게 또 웃겨서 또 웃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중요한 것은 어디나 밥이었다. 각 지청의 구내식당밥 평가가 이어졌다. 다들 거기서 거기였는데 모지청은 이번에 구내식당 담당 업체가 바뀌었는데 밥맛이 환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정말 '일할 맛' 나겠다면서 부러워했다.  




우연히 들어간 소금 빵과 밤 크럼블 맛집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날 줄 몰랐다. 시간이 짧았다. 그래서 더는 못했는데 신기하게도 어떤 이야기를 해도 백 프로 공감이 갔고, 백 프로 슬펐다가 백 프로 웃겼다가 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모든 게 백 프로였다.


나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아직은 앳된 스물일곱, 스물여덟 젊은 신규들이  나의 동료들이라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애잔하면서도 기분이 뿌듯했다.


고용노동부에 오는 민원인들 특성상 젊은 주무관들이 다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생각하니 서글펐고, 구내식당의 맛있는 밥에 감동하여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말을 들으니 소박한 그 해맑음에는 내 마음도 덩달아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산 넘고 물 건너 간 나의 워크숍은 일을 하는 것보다 백 프로 더더 좋았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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