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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Nov 15. 2022

신규의 욕심은 민원인에게 해롭다.

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로운(?) 공직생활


요즘 내 머릿속뿐만 아니라 마음속에서 브런치에 쓸 글감들을 만난다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처럼 돼버렸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땐 쓰고 싶은 글감들이 내 몸 안에서 넘치고 넘쳐 그 글감들이 작은 시내를 만들었고 시냇물에서 들려오는 졸졸졸 물줄기 소리에 항상 가슴이 뛰었다. 작가의 서랍에는 발행을 위해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완성 글들로 늘 떠들썩했다.


만난 지 2년 된 브런치와의 권태기?? 아직도 일이 서투른데 공무원 생활이 권태기?? 글쓰기에 권태기?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리얼한 공무원의 세계를 정글의 법칙처럼 민낯 그대로 옮길 수 없어서??


이 모든 것이 조금씩 원인을 제공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내가 글감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납득하기에는 그것들은 너무나도 성이 안 찼다. '저게 다 아니야 아니야 '라고 소리 없는 외침을 하는 사이 나는 중요한 것을 보물처럼 발견했다.


작가의 서랍에서 작년에 발행을 기다리다가 내가 깜빡하고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한 글이었다. 생각날 때마다 주욱주욱 써서 저장을 해놨는데 발행시기를 놓친 글이었다.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지금의 나의 글감이 사막의 오아시스가 돼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백 프로 알 거 같았다. 그래 이것이었어. 이 이유라면 충분하다.


지금 보니 이 글은 1년 후인 지금이, 발행 시기였다 보다.


  



(21년의 글)


욕심이 컸다.


21년 12월 31일 전까지 최대한 많은 민원인들에게 지원금이 지급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내가 너무 욕심을 냈다. 연말이 되면 용보험기금에서 나가는 각종 지원금들의 예산 종료일이 정해진다. 모성보호 급여들은 12 29일이 마지막 결재일이었다. 나는 12월에 신청하신 분들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올해가 가기 전에 지원금을 드리고 싶었다.


 주무관님들은  29 오전에 결재를 올리셨다. 오후가 되면 마지막 결재들이 몰리기 때문에 기금이 예상보다 빨리 종료가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었으나 나는 그래도 한 분이라도   검토를  하다가 오후를 넘기고 있었다. 결재 마감시간이 4 30분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욕심내지 말고 이분까지 결재를 올리자 했을 때 3시 30분이었다. 빛 같은 속도로 결재를 올렸다. 5분 뒤 팀장님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00 씨 결재 오늘  될  같네. 예산 끝난 거 같다. 내년에 다시 올려요.”

동시에 내부 인트라넷 메일로 본부 모성보호 담당자에게도 메일이 왔다. 더 많은 예산을 증액했으나 예산이 빠르게 소진되어 예산이 조기 마감됐다는 내용이었다. 더 많은 분들에게 지원금을 드리려다 애초에 받을 수 있었던 분들까지 뒤로 밀린 셈이었다.


내년 예산 집행은 22년 1 4 오후 2 이후였다. 우리 팀에서 결재를  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21년 신규자는 나밖에 없어서 그런지 나만 이렇게 된 것 같았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의도는 분명 선했는데 결과는 이롭지 못했다.


나도 예전에 근로자였을 때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해서 빨리 받으면 좋았고 늦어지면 짜증이 났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2020년 때 일이었으니 마음이 아직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래서 감정을 이입하여 욕심을 부리다 보니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


이렇게 한 개를 또 깨우치며 나의 11개월 차 공무원 생활은 흘러가고 있다.



그래

욕심이 컸다.

공무원 생활 + 고용노동부라는 특이성 + 늦깎이 + 신규 + 직업상담 직렬 + 기업지원팀 + 모성보호

이 모든 것을 곳곳에 잘 배치하여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 싶었다. 또 그 와중에 톤다운은 싫었고, 나를 제외한 다른 주무관들 이야기는 최소한, 부처 이야기는 최소한, 팀 내부 이야기도 최소한.......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다 최소한인데, 나는 사회적 동물이라 자화상 같은 글을 쓴다는 것에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있다고 믿는다. 자화상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도 그 누구도 다치지 않는 방향에서 여전히 생동감 있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위대해져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면 위대해진다고>

욕심을 내지 말자. 한 번에 다 그릴 수 없다. 한 번에 다 쓸 수 없다.


오늘도 나는 글감을 찾기 위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아본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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