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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Mar 17. 2023

드디어 나도 보이스피싱 문자가  왔다.

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 속지 않은 이야기-

보자마자 알았다. 보이스피싱 문자라는 것을.

풀기에 너무나 쉬운 문제를 내 준 거 같아 보이스피싱 쪽에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원래 이런 거 잘 속는 사람인데 이런 나마저도 속아주기에 무리가 있는 문자였다.


우리 애들은 신속하게 상황을 전달하는 스타일이 아니랍니다. 

우리는 도시 외곽에 살아서 휴대폰 서비스 센터를 가려면 자동차로 10분 이상은 가야 한다. 버스로 가려면 2번 이상은 환승을 해야 한다.


우리 집 중1, 초5 아들 둘은 혼자 버스를 타서 어디를 가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임시폰을 구해서 문자를 보낸다? 아들들은 임시폰을 모른다. 저 내용이 친구 핸드폰을 빌려서 하는 문자라 하더라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사생활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아들 둘은 함부로 남의 폰에 엄마 전화번호를 입력하지 않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며칠 전 아들 핸드폰 수리를 위해 반차를 내고 서비스 센터를 갔다가 왔다. 그것도 고장 난 지 2주 넘었는데도 고칠 필요 없다는 것을 겨우 설득해서 수리했다. 그리고 우리 아들 둘은 엄마 폰 번호를 정확히 모른다. 생각해 보니 수리를 스스로 맡길 수 없었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었다.


처음 만난 보이스 피싱 문자, 반가웠다.

다음에는 더 어려워져 있으면 어쩌나.

그때도 나이스하게 헤어지자. 지금처럼.



- 속은 이야기 -

26살 즈음에 은색 마티즈(경차)를 타고 사교육 현장을 달리던 때였다. 내 마티즈는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방향으로 가는 도로 위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갑자기 옆에 있던 냉장차의 운전자가 창문을 내려보라는 수신호를 했다. 그래서 마티즈 창문을 내렸다. 그 운전자는 "갤러리아 백화점에 옥돔을 납품하는데 오늘 납품 시간을 못 맞춰서 지금 냉장차에 옥돔이 그대로 있다"라고 했다.  "이대로 두기 아까워서 옥돔 한 상자 20만 원인데 5만 원에 파니깐 사라"고 했다.


잘 속는 김주무관은 바로 사겠다고 했다. 부천에 사는 언니들한테 줄 생각하니 이미 심장부터 덩실덩실 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냉장차 운전자가 "그럼 저기 보이는 정류장 쪽으로 차를 옮기고 그쪽에서 만나자"라고 했다. 내 마티즈는 5차선에 서 있었고 10미터 정도 앞에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몇 분 사이에 4개의 차선을 옮겨야 하는데 하필이면 나는 그때 초보운전자였다.


냉장차는 바로 휙휙 차선을 옮겨 정류장 쪽으로 갔다. 그런데 나는 차선을 한 개 겨우 옮기는 사이 정류장을 지나쳐버렸다. 그 운전자의 허망한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때 참 미안했다. 운전도 못하면서 너무 쉽게 약속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쉬움도 컸다. 내가 운전만 잘했더라면 저 20만 원 옥돔을 5만 원에 사서 언니들한테 가져다줄 수 있었는데.





26살 김주무관은 속았는데 운전 실력이 미숙해서 결국 속지를 못했고.

44살 김주무관은 속으려 했으나 아는 게 많아서 결국 속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 속을 일이 있을 때, 속고 싶지 않았는데 속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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