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센터 김주무관이야기
교실에서 시험을 한참 보고 있는데 업무 전화가 왔다.
잠깐 받고 끊으려고 했는데 그 민원인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시험시간은 이제 10분만 남은 상황이었다.
시험을 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문의한 질의는 확인 후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민원인의 전화번호를 물었는데 그 민원인은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 알려주지 않았다.
식은땀이 났다. 혹시 옆에 다른 지인이 있다면 그분이라도 바꿔달라고 했다.
그분도 숫자 한 개 불러주는 데 한 세월이었다. 나는 그들의 태평스러움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전화를 끊었다.
심지어 책상에는 시험지도 없었다. 바로 손을 들어 시험지를 달라고 했다.
시험지를 뒤늦게 주는 선생님의 표정도 안타까움이 한가득이었다.
시험지는 놀랍게도 동그란 하얀 종이였다.
한 명의 선생님이 내게 힌트를 줬다.
"이렇게도 접어보고 저렇게도 접어봐요. 접다 보면 뭔가를 찾을 거예요"라고 속삭였다.
그래서 문득 종이배를 만들어볼까 하고 집모양으로 종이를 접자 하얀 종이는 화려하고 반짝이는 여성의 비단 두루마기로 변했다. 세련스러운 브로치도 달려 있었다.
보고 있던 선생님들도 금방 답을 찾은 나를 신기해하면서 "드디어 찾았네! 찾았어! 잘했어요"라고 진심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내 일처럼 기뻐해주셨다.
꿈이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꿈속의 선생님처럼 민원인들을 대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사장님이 '말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나가라'라고 해서 나왔다는 민원인.
딸아들뻘 되는 어린 상사 밑에서 온갖 폭언을 듣고 20년 이상 다녔던 회사를 스스로 나와야 했던 민원인.
유행 띠라 생겼다가 다른 유행에 밀려 사라져 버린 가게에서 나와야만 하는 민원인.
새파란 청년의 에너지를 다 빼앗긴 후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를 당한 민원인.
다들 사연들은 구슬프다.
하지만 나는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심사하는 담당자로서 민원인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것이 두렵다.
종종 실업급여 자격이 안 되는 민원인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위로를 하면 그들은 다음날 다른 동료에게 실업급여를 달라고 억지 주장을 하며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
최초 상담을 했던 나는 먼저 영문도 모른 채 민원인의 화를 다 받아내야 했던 동료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처음 상담받던 날은 조용히 슬퍼만 했던 민원인이 왜 돌변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들의 상황이 안타까워 건넨 나의 위로가 문제를 일으킨듯했다.
나는 '위로'라고 했던 말들이 그들에겐 '오늘은 실업급여가 안 되지만 내일은 된다'는 말처럼 들렸던 게 아닐까.
결국 실업급여를 간절하게 받고 싶었던 그들에게 나의 어설펐던 응원은 헛된 희망을 키운 작은 지푸라기가 돼버렸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나의 자리에서 쓸 수 있는 말의 한계가 느껴졌다. 그리고 민원업무 4년 차이지만 아직도 슬기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조금 화가 났다.
꿈속의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리 접어보고 저리 접어보면 찾을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고 생각해 보자. 답을 찾는 것은 내 몫이니.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