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아가씨, 이거 이렇게 쓰는 거 맞아요?"
"아가씨가 도와주면 안 되나, 나 좀 도와줘요."
"아가씨 참 설명을 친절하게 해 주네, 아가씨 고마워요."
"아가씨! 아가씨! "
처음에 내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겠지. 하지만 아니었다.
'아가씨'라는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내 눈을 정확히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부르셨다.
"아가씨"
처음에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뭔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공공기관에 와서 담당 공무원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을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두 분도 아니고 약속이라도 한 듯 '그분들'은 나를 '아가씨'라고 불렀다.
사실 그분들은 나뿐만 아니라 수급자격심사하는 모든 직원들을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그분들은 누구일까.
'그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드신 일용 근로자들이다. 대충 열에 여덟은 남성이고 두 명 정도는 여성이시다. 연령대는 대략 60대 초반에서 70대 초반정도 되신다.
우리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보게 되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 그분들이시다.
또는 가로수의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거나 시민공원의 잡초를 뽑거나 쓰레기를 정리하시는 분들이기도 하다.
그분들 중엔 글자를 쓰는 것도 어려워하신 분도 많다. 학력이 가끔 '무학'이지만 평생 '하루살이'일을 쉬지 않고 하신 분들도 있다. 손가락이 퉁퉁 부으시거나 손가락의 관절들이 이리저리 휘어진 분들도 많다.
대부분 사장 이름도 모르고, 본인이 어떤 세금을 내는지도 모르고, 일을 시킨 반장 이름도 모른 채 오로지 주어진 일만 묵묵하게 하신 분들이시다.
나는 요즘에서야 이분들이 담당공무원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은 이분들 입장에선 최선의 예의 표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분들의 단어를 이해하자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가씨'라는 말이 슬픈 단어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가씨'라는 단어는 단순한 호칭어가 아닌 것이다. 서류가 낯설었던 그분들이 세상에 건네는 도움의 단어인 것이다. 자신 없는 표정으로 내미신 신청서의 퇴사 사유란에는 '일이 업슴'이라고 적혀있다.
삐뚤빼뚤 글씨로 쓴 틀린 맞춤법의 단어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마디로 표현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들이 차오른다.
그분들의 고단한 날들에 슬퍼지다가도 고령의 나이에도 건강하게 일을 하시는 모습에 인간적으로 존경스럽다가 이내 또 '일을 주지 않아서' 풀이 죽은 모습에 딱해진다.
분명 젊은 층에선 일부 '계약만료'로 퇴사하여 바로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최소 행위만을 하며 제도를 편안하게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봤던 다수의 사람들은 소위 '사회적 약자'이며 그들의 아픔은 실업급여 신청서에도 묻어난다.
실업급여 업무를 하기 전까진 아예 몰랐던 '일용의 세계'(그분들의 언어로는 '노가대'라고 불린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단지 실업급여 수급자격 심사를 위해 던졌던 나의 무식한 질문들이 머릿속에 스쳐간다. "회사 이름이 뭐예요?, 이름을 모르신다고요? 월급을 받으셨을 건데 그걸 모르신다고요?"
그분들이 나에게 '아가씨'라고 했을 때 느꼈던 나의 당혹스러움과 내가 저 질문을 했을 때 그분들이 받았을 당혹스러움을 생각한다면 나의 무례함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역시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아직도 나는 초보딱지를 떼지 못한 운전자이다.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나의 굳어진 사고로 쉽게 질문하지 말자. 내가 알지 못하는 노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자. 그리고 그 어떤 노동의 시간도 가볍게 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