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실업급여 업무는 어때?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by 은반지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정말로 여름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보았던 여름의 뭉게구름은 마치 솜사탕 같아서 손으로 한입 떼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영을 좋아하는 나에게 여름은 보물 같은 계절이었다.

여름의 물은 따뜻하고 시원하다. 그런 물 안에서 수영을 하고 있노라면 모든 불안과 걱정은 녹아 사라졌다.


여름엔 살구가 저렴하다. 살구를 박스째 사서 냉장고에 쌓아놓고 먹을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의 사랑, 나의 콩국수가 청량하게 웃고 있는 계절 또한 여름이다.

얼음이 없는 걸쭉한 콩국수를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먹어봤다. 시험이 끝나고 놀러 간 친구 집에서 친구 엄마가 만들어주셨다. 콩국 한 숟가락을 삼켰을 때 느껴졌던 깨끗한 고소함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여름은 내게 행운의 여신이기도 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7월에 봤던 국가직 시험의 필기합격문자를 여름의 절정이었던 8월에 받았다. 뜨겁게 달궈진 운전석 인조시트에 살이 데일 것 같았던 그날의 퇴근길을 난 힘들 때마다 떠올린다.

김주무관 사진 (출처)

나는 이것이 합격문자인지도 몰랐다. 일반적인 안내문자라고 생각했다. 저녁밥을 먹은 후 혹시나 들어가 본 어느 공시카페에서 이 문자가 합격문자인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나는 남편에게 "이게 필기합격했다는 문자라는데"라고 말했었다.



이런 여름이 실업급여팀에서 수급자격심사 업무를 해보니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실업급여 업무 담당자 입장에서 7월은 제3차 미니전쟁의 달이다.


1차 대전쟁은 연도말 정년퇴직과 계약만료 근로자들이 하루 7백 명 이상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1월'이다.

2차 미니 전쟁은 2월 말 정년과 계약만료 퇴직자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3월'이다.

그리고 3차 미니전쟁은 상반기말 정년과 계약만료 근로자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7월'이다.


내가 일하는 고용센터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제조업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 있다. 신기하게도 기업별 정년퇴직자들의 특징이 있는데, 알고 보면 은근히 웃프다.


A기업과 B기업의 정년퇴직자들은 유난히 열댓 명의 친구들과 함께 신청하러 온다. 왜냐하면 그들의 업무는 집단으로 작업을 완성시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소위 라인마다 조장, 반장이 있는 시스템으로 30년 근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끈끈한 동료애가 형성된 것 같다.


C기업의 정년퇴직자들은 보통의 나이대 분들보다 심하게 새까만 피부를 가지고 계신다. 아마도 그들은 대부분의 작업을 실외에서 하기 때문인 거 같다. 그리고 시끄러운 작업현장 때문에 청력의 문제가 생기신 분도 많다.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나도 힘들지만 그 와중에도 열심히 듣기 위해 귀를 최대한 민원 가림막에 대시고 집중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울 때가 있다.


D기업의 정년퇴직자들은 손가락 피부가 많이 벗겨지신 분들이 많다. 그 역시 해당기업의 업무를 유추해 보면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D기업은 지역에서 연봉 1순위라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하지만 육체노동자로 30년 넘게 일을 하셔서 그런지 고단한 얼굴은 어느 기업의 퇴직자들과 다를 바는 없었다.

픽사베이 (출처)

한편, 이건 기업별 특징은 아닌데 유난히 부부동반으로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정년퇴직자분들이 있다. 이분들은 부부금실이 좋다는 게 특징이다.


심지어 신청인은 남편인데 아내분을 신청자 의자에 앉히시고 본인은 옆에 쪼그려 앉아 신청서를 쓰고 심사를 받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현실판 애숙이와 관식이를 직관하게 되면 조금 당황스럽긴 하다.



나에게 여름은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ost인 '썸머' 같기만 했었다.

하지만 다양한 노동의 역사를 가진 민원인들을 보면서, 여름이 쇼팽의 녹턴이 될 수도 있고, 베토벤의 비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일을 하고 있는 모든 민원인들의 여름이 행복하게 지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나의 여름도. 그리고 2023년 6월의 어느 날 하늘나라로 간 박 00주무관 나의 동기도.


<표지사진 출처 : 김주무관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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