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우리 가족은 최근 유행하는 오징어 mbti 테스트를 해보았다.>
테스트의 결과, 우리 집에는 1명의 어쩔징어, 2명의 순둥징어, 1명의 눈치징어가 살고 있었다.
순둥징어와 눈치징어는 전체적으로 결이 비슷했다. 하지만 어쩔징어는 그들과 상당히 달랐다.
일단 저지르는 노빠꾸 어쩔징어는 계획하지 않았지만 선택은 빨랐다.
20년을 살던 고향도 쉽게 떠날 수 있었고 10년의 청춘이 박제된 도시도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한결같았던 꿈도 졸업하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20대의 패기로 6년 동안 소화장기(위, 장 등)들을 괴롭히며 열정적으로 일했던 곳도 아쉬움 없이 추억도 탈탈 털어버리고 떠나왔다.
8년간 동료들과 온갖 수다를 떨며 그 도시의 모든 카페라테를 마시러 다니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곳도 어쩔징어의 공식대로 뜬금없이 작별을 고했다. 이별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후련한 것이라 생각하는 어쩔징어의 방식에 순둥징어와 눈치징어는 매번 놀랐었다.
새로움이 낯설기만 한 순둥징어와 눈치징어는 이러한 어쩔징어의 자세가 신기했다.
그나마 대문자 T 인 눈치징어가 이들을 대표해 어쩔징어에게 질문을 자주 했다.
"그래서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뭐예요?
겉으로 보기엔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데 자주 바꾸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쩔징어의 답은 한결같았다.
"나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 새로운 곳으로 가보고 싶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어.
나는 정말로 궁금했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다른 곳으로 계속 가보는 거야."
그 후로 순둥징어와 눈치징어는 어쩔징어의 잦은 이별에 질문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새로운 곳에서 좌충우돌하는 어쩔징어의 갖가지 에피소드를 매일 저녁을 먹으며 들어주었다.
그리고 개성 강한 주인공들이 개연성 없는 줄거리로 발연기를 하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에피소드가 끝나갈 무렵이면, 순둥징어와 눈치징어는 이렇게 말을 하며 어찔징어를 응원해 주었다.
"어쩔징어가 화날 만했네, 충분히 이해해, 그러면 안 되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네요.
어쩔징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 말해봐요. 저희가 들어드릴게요."
순간 한 명의 순둥징어가 일어서려 하자 다른 한 명의 순둥징어가 '그래선 안된다'는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맙게도 이야기의 끝까지 그들은 자리를 지켰다.
요리도 정해진 레시피가 없었기에 어쩔징어의 김치찌개 맛은 매번 달랐다.
순둥징어와 눈치징어는 정해진 맛을 원했지만 어쩔징어는 늘 새로운 맛을 탐구했다.
이번에도 대문자 T 눈치징어가 침착하게 질문했다.
"김치찌개의 맛이 달라진 이유를 알고 싶은데, 혹시 매번 조리법이 달라진 건가요?
매번 맛이 다르긴 해도 맛있거든요, 그냥 궁금해서 왜 맛이 달라지는 걸까?
기분 나쁜 건 아니죠? 정말 우리는 달라지는 원인을 알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잘 생각해 봐요.'
어쩔징어의 답은 간단했다.
"나의 조리법은 항상 같았지.
다만 내가 김치를 못 담으니까 친구집, 이모집, 할머니집에서 김치를 공수해 오는데 그들 김치의 맛이 달라서 그럴 거야."
이후로 순둥징어와 눈치징어는 매번 달라지는 김치찌개의 맛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동시에 정해진 대로, 변함없는 가치를 추구하는 그들은 항상 같은 맛을 내는 레시피를 찾기라도 한 듯 스스로 요리를 조금씩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어쩔징어의 김치찌개가 맛없는 건 절대 아니에요.
시간이 많아서 요리를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어쩔징어는 지금 쉬는 게 어때요, "
어쩔징어는 오늘도
어제는 없었던 것처럼, 아무도 밟지 않았던 첫눈이 내린 마을을 찾아 헤맨다.
반대로 순둥징어와 눈치징어는 켜켜이 쌓인 시간들이 존재하는 공간과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며 안정감을 찾는다.
이들이 함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어쩔징어에겐 순둥징어와 눈치징어와의 동행은 누구도 밟지 않는 첫눈 내린 마을이다.
반대로 순둥징어와 눈치징어에게 어쩔징어는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이며 공간이며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어 편안함을 준다.
놀랍도록 다르기 때문에 재미난 동행을 하고 있는 오징어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