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아무래도 이번에 발표했던 게 대상을 받고 지난번 기업수출건도 성과가 잘 나와서 국장님이 15번 공무원 추천을 해 주신다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차문을 열고 추운 바람과 함께 조수석에 탄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남편은 오늘따라 본인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원래는 퇴근길 토크박스 1번은 나의 실업급여 심사 업무였다.
실업급여 사무실은 가락시장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그들의 사연보다 센 주제는 없기 때문이다.
"15번 공무원으로 몇 명 추천된 거 같긴 한데, 내가 안 될 수도 있어."
나는 듣는 내내 궁금한 게 있었다.
"그럼 당신이 15번 공무원이 되면 16번 공무원은 누가 되는 건데??
그니까 순서대로 14번까진 정해진 거 같고 15번 다음 16번 공무원도 지금 추천 중이야?"
겨울의 정중앙이어서 그런지 퇴근길의 하늘은 새까맸다.
서둘러 집으로 가려는 차들끼리 예민한 차선 변경 공격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차 공격으로 차선을 변경하는 몸놀림이 빠른 차들의 뒷 꽁무니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몸놀림이 좀 느린 편이라 순식간에 밀고 들어오는 차들에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편의 15번 공무원 이야기는 흥미롭게 들려왔다.
진지하게 16번 공무원을 물었지만, 남편은 2초간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16번 공무원? 16번이라. 16번?????
아! 십오 번, 시모번, 시모번? 15번 공무원이라고 들은 거야?'
내가 천천히 말해줄게 잘 들어봐 '시''모''범' 공무원 이거든."
띠로리
" 아 '시'모''범' 공무원, 아 그런 상도 있는 거였어?"
2주일 후 남편은 쟁쟁한 경쟁자(대단하신 분들이었겠지)를 물리치고 '시''모''범' 공무원이 되었다.
남편은 공무원이 된 이후로 꾸준히 다양한 이름의 상들을 받아왔었다.
축하해 주면 남편의 대답은 늘 같았다.
"다들 열심히 하니까 돌아가면서 받는 거야, 대단한 거 아니야."
(그런데 나는 21년 입사 이후 한 번도 상을 못 타봤다. 남편의 말이 맞다면 이건 미스터리다. )
남편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공간 안에서 그냥 쳇바퀴만 돌린 적이 없었다. 오늘은 오른쪽발만? 내일은 왼쪽발로만 돌려볼까? 클래식을 들으며 쳇바퀴를 돌리면 효율성이 올라갈까? 영어를 배우는 다람쥐라면 어떻게 쳇바퀴를 돌릴까? 기술이 있는 다람쥐와 같이 토론을 하면서 쳇바퀴를 돌리는 건 어떤 효과를 낼까? 쳇바퀴의 디자인을 바꿔볼까? 바다를 보며 쳇바퀴를 돌린다면 다람쥐는 무엇이 달라질까?
남편은 바퀴가 돌아갈 때마다 질문을 했다. 질문을 한 그대로 실행해 보았고 결과를 기록했다. 신기할 정도로 그 어떤 곳보다도 관습적인 곳이고 단조로운 곳에서 남편은 한결같이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마침내 그 모습은 마흔이 넘은 아내에게 '공무원이 될 결심'을 만들어냈다.
비록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쳇바퀴를 돌릴 뿐, 이것이 어떤 효용성이 있는지 남편처럼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사는 8급 나부랭이지만
다시 한번 남편의 시모범 공무원으로 선정됨에 박수를 보낸다.
남편은 상을 못 타서 삐딱선을 탄 일개 8급의 귀가 멀어 15번이라고 들은 거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지만 확실히 이번만큼은 진정, 퇴근길 차선 변경에 온 집중을 다하고 있어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며 축하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해 본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00팀장님. ^^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