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주무관과 스탠리 텀블러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by 은반지

E주무관의 의원면직 문서가 6급이하 인사공지란에 올라왔다.

정확히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심장의 어떤 부분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댔다.

E주무관은 24년 8월부터 25년 7월까지 실업급여 수급자격심사 업무를 함께 하던 동료였다.


E주무관은 입사 2년 차 공무원이었다. E주무관은 아침마다 실업급여 탕비실에서 핑크색 스탠리 텀블러를 반려견 목욕시키듯 세심하게 닦았었다. 그 청결함은 보고 있는 나의 기분도 닦이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또한 E주무관은 까탈스러웠던 민원인을 심사할 때도 차분했으며 복잡한 상황에 놓인 민원인의 서류에도 당황하지 않았었다.


어느 주말, 함께 초과근로를 한 적이 있었다. E주무관은 정황과 심증상 거짓으로 보이는 민원인의 주장을 뒤집을만한 증거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E주무관의 조사과정을 보면서 "E주무관이 근로감독관으로 발령받으면 거기서도 재미나게 일을 잘 해낼 거 같다'라고 말했었다.


이랬던 E주무관은 25년 8월 근로감독관으로 발령받아 실업급여팀을 떠나게 됐다.

그리고 25년 12월 스스로의 원에 의하며 직을 면했다.

E주무관에게 실업급여 업무 초반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나는 갚을 길 없는 부채감에 마음이 천근만근 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응원의 카톡'을 남기는 것뿐이었다.


'일을 참 잘했던 동료였는데'라는 말만 내 입에서 맴돌았다.

며칠 동안 아쉽고 안타까웠다. '연락이라도 자주 해볼걸,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렵게 공부해서 들어왔는데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더 연락해 볼걸.'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안한 마음들이 여기저기서 밀려왔다.


하지만 난 확신한다. E주무관은 불에 탄 전소된 차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았다는 전설의 스탠리 텀블러처럼 어디에서나 강력하게 본인만의 강점을 잃지 않은 채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것임을 말이다.


E주무관 잘 가요. 그동안 멋진 모습 보여줘서 감사했습니다. E주무관 앞에 놓인 그 길은 원하는 대로 알차게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건강해요. 다음에 인연이 된다면 다시 볼 수 있기를, 꼭 볼 수 있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