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아들의 위로 아닌 듯한 위로

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by 은반지

"점심을 매일 같이 먹던 동료가 휴직을 들어가서 혼자 밥을 먹고 있거든

많이 심심하고 회사 가는 게 재미없을 정도야"


고등학교 1학년인 T아들은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다.

이번에도 저녁밥을 먹다가 이런 푸념을 하자 5초 정도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게 원래 회사인의 모습인 거 같은데, 문제는 없어 보여.

그동안 엄마가 회사를 너무 가고 싶은 곳으로 생각했다면 이제 정상화 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특히 '정상화되어 가는' 그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던 거 같다.


"오늘 어떤 민원인이 '실업급여 신청하는 과정이 너무 어렵다

허락도 없이 고용보험은 떼더니만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하니 왜 이렇게 하는 게 많냐

맘대로 돈 가져갈 땐 언제고, 당신들은 거기 앉아서 뭐 하는 거냐'며 소리치고 화 내고 난리도 아니었거든"


그런데 2시간 후에 미안하다며 따뜻한 차를 사가지고 오신 거야. 화 내서 미안하다고 말이야.

황당하지 않아? 화낼 땐 언제고, 갑자기 차는 뭐야"


T아들은 이번에도 담담하게 말했다.

- 정말 미안했던 거 같은데, 미안해서 차를 가져다 준거지. 그것만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엄마.

미안하지 않았다면 일부러 따뜻한 차를 가지고 오지는 않았을 거 같아.


"그래 미안해서 그런 거지?"

그렇다. 미안하다는 마음만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따뜻한 차의 기운만 머리에 떠올랐다.

특히 그 차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의 겨울 시즌 음료였다. 오죽 미안했으면 가던 길에 카페를 들러 인기 있는 시즌음료를 사기까지 하셨을까.

잔뜩 화가 났던 내 마음은 아무렇지 않게 사라져 버렸다.


이렇듯 T아들은 숨어있는 의미나 감정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서 '보이는 마음'만 집중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가진 T아들과 대화는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보이지 않는 감정을 찾아 헤매는 F 인간 김주무관을 위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의 대화는 역시 T아들이었다는 것을 실감하며 T아들과의 대화가 항상 '위로'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2센티 키높이 운동화 신었는데 좀 커 보이지 않아?"

- 음, 키높이 운동화는 키가 커 보이고 싶은 심리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커'보이는 효과는 미미한 듯해.

"그렇군, 오케이 알겠어. 아주 T 적인 평가야"

이 아침의 출근길은 기분이 약간 나빴지만 다시 직장에서 험난한 전쟁을 치른 후, 나는 T아들에게 물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분명히 T아들의 답변에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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