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나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
멀리서 들려오던 라디오의 음악 소리에 마음이 행복해졌다.
받아쓰기 점수가 70점 미만이면 '남아서 공부하기'를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 커트라인을 자주 넘기지 못했다.
국민학교 1학년 가을에 나는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나는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남아서 공부하기'는 재미있는 선생님이 나만 더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특혜를 받는 거 같았고 학교의 작은 도서관에 책들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엄마는 나에게 '공부를 왜 못하냐', '공부해라'라는 말 등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남아서 공부하기'는 나에겐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에 남았다.
라디오의 시그널 음악을 들으며 마당으로 들어서서 아침에 헤어졌던 엄마였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난 엄마처럼 반가웠던 엄마품에 안겼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조잘거렸었다.
그날은 해가 쨍쨍거렸지만 덥지는 않았으며 우리 집의 마루는 밝은 브라운이었으며, 집의 대문은 초록색이었으며, 마당의 한쪽 귀퉁이에 노란 수선화도 있었으며,
그날에는 아빠도 있었으며, 할머니도 있었다.
25년 9월 7일,
44살에 남편을 땅에 묻고 장애가 있는 몸으로 친정엄마와 둘이 9살, 11살, 16살, 19살 딸을 키워야만 했던 엄마는 하늘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35년간 어미의 어깨와 등을 밟고 사람구실할 수 있게 된 네 딸들은 이제 차가운 어미의 손과 얼굴을 만지며 울었지만, 굽어진 어미의 어깨와 등은 펴지지 않았다.
엄마가 하늘로 올라간 이 날은, 해가 쨍쨍거렸지만 덥지는 않았으며, 산속 나무들의 초록은 반짝거렸으며, 산들거리는 바람은 따뜻하고 시원했으며, 엄마를 품고 있는 도자기도 물방울처럼 영롱했으며,
하지만 이날에는 아빠도 없었으며, 할머니도 없었다.
우리 엄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안녕
여전히 부족한 딸이라 '남아서 공부하기' 즐겁게 하다가 다시 엄마 품으로 갈게요.
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나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 라디오가 켜져 있는 그 집에서 다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