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최근 어느 날부터 '봄동'에 대해 자주 물었다.
"엄마 봄동 알아? 봄동을 본 적이 있어? 맛은 어때?
예전에 강호동이 1박 2일 프로그램에서 '봄동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대.
그래서 나도 영상을 봤는데 너무 맛있어 보이는 거야.
사람들이 봄동을 말하는데 나는 하나도 모르겠더라고?"
(사실, 나도 봄동을 잘 모른다.
어릴 때 할머니가 나물로 해주셨던 거 같은데
집을 나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그보다 더 멀어진 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한참 동안 객지생활을 한 나는 '봄동' 같은 '고향'이 떠오르는 반찬을 먹어보지 못했다.)
"봄이 되면 마트에 나와있는데, 뭐랄까? 이파리가 넓게 펴진 작은 배추 같다고 할까?
맛의 차이는 정확히 모르겠어, '봄동'요리를 엄마도 최근에 먹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다음 날 중 3 아들은 조용하게 스치듯 말을 건넸다.
"엄마, 봄동 겉절이를 해서 비벼 먹으면 맛있다고 하더라고
나도 그 맛이 궁금하긴 하더라고, 어떻게 맛이 다를까? 무슨 맛이 날까?"
그다음 날 중3아들은 살며시 다가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엄마, 봄동 겉절이를 해 보는 건 어때?
엄마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 날 때 엄마 여유가 있을 때
그때 봄동 겉절이를 해 볼 수가 있을까?
반드시는 아니고 그냥 엄마 괜찮을 때 해 볼 수 있으면 한번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
매일 '봄동'을 물었던 중3 아들 덕분에 꽃샘추위로 어수선했던 3월의 첫 주,
'봄동 겉절이'는 내 온몸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민원인에게 '신분증과 신청서 주세요'라고 해야 하는데 '신분증과 봄동 주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어느새 내 정신세계는 '봄동'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밥을 같이 먹는 선배가 반찬으로 '봄동 겉절이'를 싸 오셨다.
"어떻게 만드셨어요?" 바로 질문이 나왔다.
그 선배는 "쉬워. “ 멸치액젓, 참치액젓, 매실청, 고추가, 참기름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부엌의 조미료박스를 생각해 보니 참치액젓과 매실청이 없었다.
주말이 되자, 나의 몸은 마트에 가서 참치액젓과 매실청을 찾고 있었다.
남편은 반찬가게에서 봄동 겉절이를 사는 게 더 가성비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중3 아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가성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남편도 알고 있었다.
이미 남편의 손은 1+1 참치액젓을 들고 있었다.
안타깝게 마트가 작아서 그런지 매실청은 없었다. 일단 이건 설탕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렇게 작은 배추가 모든 이파리를 꽃처럼 활짝 펼치고 있는 봄동을 사서 집에 갔다.
중3 아들은 너무 신기해했다.
"이게 봄동이라고?"
"지금 보기엔 맛있어 보이지 않는데 이게 어떻게 맛있어지지?"
"엄마 할 수 있겠어? 엄마 무리 안 해도 돼, 급한 건 아니야, 엄마 하고 싶을 때 해.
난 정말 괜찮아."
아들의 걱정 섞인 우려와 응원을 뒤로한 채 비장한 마음으로 조미료들을 숟가락으로 계량하기 시작했다.
선배에게 전수받은 레시피는 간단했다.
고춧가루 3, 멸치액젓 2, 참치액젓 1, 매실청 3, 다진 마늘 1, 참기름 1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숨을 멎은 채, 숟가락을 예리하게 쳐다보았다.
'저 비율대로 조미료들이 들어가야 한다. 집중해야 한다.' 마음속 다짐들도 속삭이듯 했다.
마침내 엄마가 '봄동 겉절이'를 만들었단 소식은 부엌을 거처 거실로 거실에서 복도로 그리고 복도 가운데방에 있었던 고2아들에게까지 전해졌다. 고2아들은 서둘러 부엌으로 왔다.
"엄마가 봄동 겉절이를 만들었어? 대박! 이게 가능한 거야?" 놀란 고2아들의 외침에 중3 아들이 정확하게 알려줬다. "내가 봤어, 엄마가 지금 만들었어."
이제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흑백요리사 열혈 시청자답게 아들들은 진지하게 '봄동 겉절이'를 입에 넣었다.
잠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한 다음, 중3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정말 맛있어. 와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엄마 정말 대단해.
배추 겉절이랑 확실히 맛이 달라. 엄마 너무 맛있어서 믿을 수가 없어.
너무 맛있어서 아껴먹어야 할 거 같은데, 엄마 양이 이게 전부 인 거지.
벌써 아쉬워, 내일까지 먹고 싶은데 안 되겠지.
엄마 다시 한번 정말 맛있어."
중3 아들의 극찬은 밥을 먹는 한 시간 내내 이어졌다.
참고로 중3 아들은 스페셜 F 다.
나의 첫 '봄동 겉절이'는 운 좋게 스페셜 F를 만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아마도 ‘나의 봄동‘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마트에 가서 '봄동'을 살 예정이다.
(사진출처: 김주무관의 투박한 봄동 겉절이의 실태)